사랑의 힘으로

준형이 이야기

by 민휴

끝날 것 같지 않던 긴 겨울을 지나 봄이 왔다. 강둑의 풀과 잔돌을 치우고 만들었던 텃밭의 쪽파가 실하게 자랐다. 선주는 큰아들 준형이가 좋아하는 파김치를 담갔다. 특유의 매콤하고 쌉싸름한 냄새가 콧속으로 파고들었다. 텃밭에서 직접 기른 채소와 엄마표 파김치와 밑반찬들을 택배로 보낼 준비를 했다.

쪽파는 예로부터 항암 효과가 있어, 우리 몸속 면역 기능을 강화시키는 식품으로 알려져 있다. 동의보감에도 "쪽파는 성질이 따뜻하고 비장과 신장을 좋게 하며 기운을 북돋아 피로를 이기게 한다"라고 적혀있다. 쪽파는 몸속 장기를 보호하고 음식의 독을 없애 소화를 돕는다고 한다.


준형이는 다섯 살 무렵부터 나이보다 빨리 철이 들었다. 동생 원희가 발달장애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선주는 아픈 원희에게 더 신경을 써야 했고, 몸이 불편한 팔순이 넘으신 시어머님까지 모시고 살았기에 늘 바빴다.

큰 아들 준형이가 3학년 때, 다니던 성당에서 여름 성경학교 프로그램으로 야외수영장으로 물놀이를 갔다. 함께 가는 엄마들도 있었다. 선주는 시어머님을 보살펴 드려야 해서 아이들만 보냈다. 돌아올 시간에 성당으로 아이들을 데리러 갔다. 수녀님이 선주를 조용히 부르셨다.

“준형이가 정말 착해요. 동생을 돌보느라고 잘 놀지 못하더라고요."

"평소에도 준형이가 원희를 잘 챙기더라고요."

"우리들이 동생을 봐주겠다고 편하게 놀라고 했어요.”

"수녀님..."

선주는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목젖부터 밀려오는 무언가를 억지로 삼키느라 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큰아들 준형이는 그런 속 깊은 아이다. 학교에 가는 길에도 차가 다니는 쪽은 자기가 걷고, 동생은 안쪽 길로 걷게 하며 동생 손을 꼭 잡고 걸었다.


엄마가 길을 걸을 때 하던 습관을 몸의 익히는 따뜻한 아이였다. 자라면서도 동생 지킴이처럼, 부모가 없으면 부모 대신인 듯 보호자 역할을 했다. 동생 원희가 아프지 않았다면 친구처럼 서로를 감싸며 다정한 형제가 되었을 터였다. 선주는 준형이에게 속내를 나눌 형제가 없다는 것이 미안했다. 둘째는 아팠고, 병환의 노모님까지 계셔서 자식 욕심이 많은 선주로서도 셋째는 엄두를 내지 못했다.

준형이가 6학년 때, 선주의 남편이 대도시로 발령받았다. 일 년 일찍 친구들과 적응한 후에 중학교에 입학하면 생활이나 학습에도 좋을 것 같았고, 작은아들 원희의 치료 병원도 그곳에 있어서 모두에게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준형이는 전학 간 학교에 처음에는 적응을 잘하는 것 같았는데 말수가 점점 줄기 시작했다. 선주는 벌써 사춘기에 접어들었나? 전학 후유증인가? 내심 걱정이 되었다. 전학하고 한 달쯤 지났을까.

“엄마! 우리 집에 친구들 데려와도 돼요?”

“그럼, 데려와도 되지, 언제든지 환영이야, 엄마가 맛있는 간식 해 줄게.”

다음날, 준형이는 친구 세 명을 데리고 집에 왔다. 맛있게 먹고 즐겁게 놀았다. 친구들이 명랑하고 착해 보여서 좋았다. 그중에 한 친구가 웃으면서 말했다.

“친구들이 준형이 동생 이상하다고 놀렸어요.”

“그랬구나! 준형이 동생은 엄청 순하고 착해. 너희가 봐도 이상하니?”

“아니요! 괜찮아요.”

준형이 친구들은 웃으면서 대답했다.


선주는 아파트 단지 옆에 학교가 있어서 준형이에게 등교할 때 동생 원희를 교실에 데려다주라고 했었다. 친구들이 동생의 모습을 보고 이상하다고 놀렸던 것이다. 엄마가 마음 아플까 봐 말하지 않았다는 준형이의 말이 더 아팠다.


선주가 원희를 등교시키려면, 시어머님이 혼자 계셔야 했기에 준형이 생각은 미처 하지 못하고 집 옆의 가까운 학교니까 함께 보내도 되려니 생각했던 것이 후회되었다. 그 후로 시어머니께 잘 말씀드리고 원희의 등교는 선주가 직접 시켰고, 준형이와 친구들은 서로의 집을 오가며 가까워졌다. 준형이는 말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다정한 성품으로 엄마와 이야기를 곧잘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엄마 아빠는 네 편이다. 어떤 문제도 상의할 수 있다. 우리 아들! 세상에서 최고야!”

선주는 말 수 적은 준형이에게 철없이 수다를 떤다.


형제자매 중에 장애가 있는 사람은 장애를 가진 아이를 둔 부모와 비슷한 강도의 아픔과 상처를 갖는다고 한다. 말로 표현하지 않는 준형이의 속마음이 자기와 비슷하려니 생각하면 애처롭다.


준형이가 다니는 직장이 다른 도시에 있어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택배 상자에 엄마의 사랑을 듬뿍 담아 보낸다. 선주는 텃밭의 쪽파가 매콤함을 간직하고도 푸르고 싱싱하게 자라듯이 준형이도 아픔을 이겨 내고 사랑의 힘으로 푸른 꿈을 키우며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도 꾹꾹 눌러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