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준 장편소설 『여름과 루비』(은행나무, 2022)를 읽고
시인이 소설을 쓰는 것을 좋게 보지 않는 시선들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런데도 박연준 시인이 쓴 소설은 정말 좋다고 했다. 얼마 전에 그의 산문집 『쓰는 기분』을 읽고 글쓰기에 대해 배웠고, 좋은 글귀들이 많아 밑줄을 그으며 열심히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의 첫 장편소설 『여름과 루비』를 읽고 ‘최고 중에 최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마디 한 마디가 감각적인 문장으로 ‘어떻게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까?’ 또는 ‘맞아! 이럴 땐 이런 느낌이었지!’라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읽었다. 책의 거의 모든 페이지에 밑줄이 그어질 만큼 특별한 표현들이 많아 마치 시집을 읽고 있다는 착각이 들었다. 이 소설은 문장력을 기르는 데도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읽어야 할 책들이 쌓여있지만 않다면 나는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이 책을 더 읽고 싶었다.
38개의 짤막한 이야기들이 이어지면서 장편소설이 된다. 작가는 자신이 시와 산문을 여러 권 쓴 것이 소설을 쓰기 위한 과정이었다고 말한다. 문학평론가 전승민은 소설의 해설에서 “시인 스스로가 문학의 몸을 가졌다는 말과 같다. 시이자 음악이자 노래이자 그저, 다시, 목소리. 그래서 『여름과 루비』는 소설이면서 시이기도 하고 다시 소설이다. 시이자 소설이자 목소리이자, 노래다, 이야기다. 시인에게 언어는 음표와 같거나 혹은 훨씬 먼저 배운 모어다.”라고 적었다. 책을 읽으며 자유롭게 펼쳐지는 이야기를 따라 나도 유년으로 자꾸 돌아가고 있었다.
이야기는 주인공 ‘여름’이 일곱 살 때를 회상하며 시작된다. ‘여름’은 엄마가 없는 아이로 고모 집에서 산다. 아빠는 특별한 직업은 없고 오르간 연주자라고 소개한다. 가끔 들르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여름’을 아낀다. 아무 눈치 안 보고 쉽게 말하는 새엄마를 데려와 ‘여름’을 힘들게 한다. 고모는 완벽한 사람이기를 바라는 성격이라 ‘여름’은 고모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고모가 시킨 책 읽기나 좋은 글 베껴 쓰기 등을 열심히 한다. 그때를 회상하며 자신이 마치 ‘작은 회사원’ 같았다고 쓰고 있다.
“할머니가 자기 안의 분노를 의자에 앉아 ‘기화’시키는 타입이었다면 고모는 분노를 ‘응고’시키는 타입이었다. 단단하게 뭉치게 한 다음 보이지 않는 곳에 우르르 쏟아버리거나 누군가 보라고 세워놓거나 포탄처럼 던지기도 했다.” 할머니와 고모를 소개하고 있다.
‘루비’는 학교에 입학한 후, 같은 반 친구인데 ‘여름’의 단짝이 된다. ‘루비’의 등장을 이렇게 쓰고 있다.
“내 삶을 지배하려고 작정한 게 분명한 루비. 내 마음을 옴짝달싹 못 하게 붙들어두려고 촌스럽고 번잡한 변두리인 M 동에 온 루비. 루비는 거슬리는 아이였다. 무시할 수가 없었다. 하던 생각을 멈추게 하고, 다른 행동을 하게 만들었다. 루비의 눈빛, 단박에 카메라로 찍듯이 나를 바라보는 눈빛엔 힘이 있었다. 보는 힘, 볼 줄 아는 힘이었다.”(「단테와 침대 중에서)
작가는 마음을 감각적이면서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루비’는 아버지가 없다. 서로에게 의지가 된다. 학교에 입학하여 만난 ‘루비’와 친구가 되어 ‘루비’의 집에 놀러 갔을 때, ‘루비’의 엄마가 단테의 『신곡』을 ‘루비’에게 주면서 “이런 걸 읽는 여자가 되어야 해”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여름’은 그때의 심정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그때, 회충이 내 뱃속에서 똬리를 풀고, 기다랗게 기지개를 켜는 것 같았다. 얼굴에 소름이 돋고 피부가 서늘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아무 잘못 없이 한 칸 아래로 밀려난 느낌, 갑자기 쓸쓸해졌다. 복도에 홀로 서 있는 기분이었다.”(「단테와 침대」중에서)
‘여름’의 ‘심한 부러움과 질투’의 감정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작가는 마음이나 감정을 표현할 때, 사물이나 현상에 빗대어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소설이 ‘시적’이라고 느껴진다. 서로는 비밀을 나누고 생각을 나누고 교류하며 성장했다. 그런 어느 날 ‘루비’가 재혼한 엄마를 따라 떠나면서 서로 헤어지게 된다.
‘여름’을 진정으로 사랑해주던 할머니가 미국으로 이민을 가던 날의 마음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할머니를 배신자라고 생각하며 온 가족들을 향해 할머니가 쓰던 의자 속으로 파고들며 항의할 때의 마음을 적고 있다.
“문장의 효용이나 단어의 의미를 고를 여유가 없었다. 슬픔과 슬픔 사이, 새로운 슬픔이 태어나 말을 밀어냈다. 밀려난 말은 밀려나는 속도에 되밀려 일어서지 못했다. 태어나지 못한 말은 태어날 기력이 없었던 거다. 긴 문장도 짧은 문장도 슬픔 앞에선 어렵다는 걸 그때 알았다.”(「가구사용법」 중에서)
소설을 읽으면서도 서사에 대한 것을 염두에 두면서 읽기보다는 문장의 표현에 집중해서 읽었던 것 같다. 주인공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마치 동화를 읽는 느낌이었다. 아이이면서도 어른처럼 행동하고 생각하고 말하는 특별한 주인공이 너무도 안쓰럽고 또한, 사랑스럽다. 나도 유년으로 돌아가 자매처럼 붙어 다녔던 오래 만나지 못한 친구가 떠올랐다. 그 시절이 깊은 그리움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