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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현실에서 살아남기를 응원해

― 염승숙 소설집 『그리고 남겨진 것들』(문학동네, 2014)을 읽고

by 민휴

“윤고은의 EBS 북카페” 목요일 프로그램 「북클럽」에서 최동민 작가와 함께 소설을 읽어주는 소설가 염승숙 작가를 알게 되었다. 그는 아주 매력적이고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는 타고 난 이야기꾼이다. 소설을 요약하여 소개해 준다. 자신이 뛰어난 소설가이며 일정의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고, 라디오에서도 청취자들의 반응으로 인기가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다소 재미난 얼굴을 상상했었는데 검색해 본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은 또 한 번 반하게 했다. 그런 그녀는 너무나도 겸손하고 수줍음이 많은 사람이다. 가정의 일상을 소중히 생각한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 그녀의 소설을 개인적인 애정을 듬뿍 담아 설레며 펼쳐 들었다.




‘작가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기 때문에 좋은 책은 독자에게 질문을 하고 생각할 거리를 만들어 줘야 한다’는 말을 라디오에서 했던 작가의 말을 기억하고 있다. 그가 쓴 소설들도 역시나 우리 삶에 직면하게 되는 주제들을 다루며 다양한 생각할 거리를 넘치도록 만들고 있다.




소설은 2012년부터 2014년까지 문학지에 발표한 작품 열 편의 단편 소설로 이뤄져 있다. 이야기마다 중요문장이 앞 페이지에 적혀 있어서 옮겨 볼까 한다.


「습」 물기 묻은 손을 들어 바싹 마른 수건의 표면을 매만질 때마다 잊히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니, 하던 아버지의 목소리가 생생히 맴돌았으므로, 그래서 그는 ‘잊히다’라는 것에 대해 자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남겨진 것들」 벽돌이 된 것도 그렇지만, 여기일 거라곤 생각 못했어요. 돌아온다네. 그리운 곳으로. 위 편이 입을 뗐다. 그런 건가, 하고 나는 속으로 되뇌었다. 외로운 이는 그리운 곳으로 돌아오게 돼 있는 걸까.




「노래하는 밤 아무도」 평생 단 한 곡의 노래만을 반복해 귀를 열고 들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결국엔 많은 것이 지나간다. 지나가 버리고야 만다. 인생은 불가해한 것이니.


「나라의 오후」 그리고, 쓰나미는 누구에게나 온다. 그걸 피할 재주 있는 인간은 없지. 안 그래. 라고는 탄이 낮은 어조로 말했을 때, 나는 뜻밖에도 그의 말에서 오롯한 상처를 감지해야 했다.




「완전한 불면」 허겁지겁 잠이 몰려옴을 인지하며 정인은, 영원히 내 것으로 소유할 수만은 없는 이 잠이라는 것에 대해, 자신이 곧 깨어나 세상 위에 놓아지고 말리라는 것에 대해 마음 깊이 허망함을 느꼈다.


「눈물이 서 있다」 나의 이명을 듣지 못하고, 너의 이명을 나는 들을 수 없다. 이명은 제각기 다르고, 공유할 수 없기에 외롭다. 우리는 저마다의 이명으로 비명을 내지르고 있다.




「호우」 인생이 쉽지가 않아서, 이따금 거대한 불화로나 새까맣고 촘촘한 진흙탕, 깊고 차디찬 바닷물 따위를 무심코 떠올리곤 했다. 도무지 어찌해도, 결코 그 속을 들여다볼 수 없는 항아리 따위를 품에 묻은 기분으로.


「양의 얼굴」 한때 인생에서 가장 친밀한 사이였던 어떤 이들은 이렇게 잊고 잊히는구나, 양이 제 얼굴을 잃어버렸대도 달리 할 말이 없네, 하고 생각했다.




「시절의 폭」 하지만 방류된 모든 범고래에게 거센 물살을 가르고 대양으로 헤엄쳐가는 시간이 허락되는 건 아니야, 그런 걸까. 세계란 결국, 그런 것일까.


「청색시대」 산다는 건 도무지 해독 불가능한 편지를 손에 들 것과 같다. 빛바래 미처 보이지 않는 글자를 더듬다, 하루는 하루가 아니게 지나간다. 봐, 이게 어른의 시간이야, 라고 우쭐거리듯 하루는 부지불식간에 끝나버린다.




소설가는 상상해서 그대로 쓰면 되는 것일까? 현실의 이야기도 그것을 뛰어넘는 이야기도 다양한 소재들이 있다. 인터넷 개인 계정을 찾아서 삭제해주는 사이버 장례식(「습」), 죽어서 벽돌이 되어 사람들을 지켜보기도 한다.(「그리고 남겨진 것들」), 고병원성 AI로 전 국민이 방역시스템에 돌입하는 이야기(「호우」), 지하철역 판매 부스 이야기 (「나라의 오후」), 양이 등장해 사람과 대화를 나눈다든지(「양의 얼굴」) 등의 이야기가 나온다. 다소 젊은 풍이고 공감이 덜 가는 부분도 있지만, 나쁘다는 생각보다는 낯설지만 신선한 느낌이었다.




현대인들이 내적 외적 환경에 의해 얻게 될 수밖에 없는 고질병들을 고쳐주고 싶어서 방편들을 만들어 낸다. 불면증에는 만능수면제 ‘잠’을 개발하고, 이명에는 ‘귀’도 만들어 준다. 그런 것들에도 가격에 따라 성능이 달라지고 사재기, 암 매상, 적금, 할인판매 등의 다양한 수법들도 등장한다. 병의 고저에 따라 사는 지역이 달라지기도 한다. 현실 속 인간군상들의 이야기를 다른 소재로 비틀어서 새롭게 만들어내는 재기 발랄한 이야기들이 흥미로웠다.




모두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지만, 현실에 치여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뇌와 현실과 아픔들을 애잔하게 생각하는 작가의 시선을 알 수 있었다. 삶에서 어쩔 수 없이 맞닥뜨려야 하는 거대한 ‘쓰나미’ 같은 것들에 밀려서 쓰러지지 말고 타고 넘으라고 말하는 것 같은 소설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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