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휴 Apr 08. 2024

혐오와 차별을 반대하는 동화집

임어진/윤혜숙/김일옥/송아주/장세정 공저 『내가 없으면 좋겠어?』(현북스, 2018)을 읽고  

        


사회현상이 글에 나타나는 것은 작가가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과 직결된다. 작가가 향한 관심이 글이 되는데, 시대성을 갖고 사명감으로 동화를 쓴 정의로운 작가들의 공저를 읽었다. "혐오와 차별에 반대하는 동화집"이라는 기획 동화집이다.



8 횡단보도- 임어진 작가님     


어릴 때 사고로 다리가 불편한 민우는 일부 친구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반 회장이 된다. 장애인 특수학교 설립 문제로 주민들은 갈등을 빚는다. 엄마는 학교에 명예 교사로 왔다가 친구들에게 놀림받는 민우를 보게 되어 속상하다. 집요하게 놀리는 친구들을 보며     


“사람한테… 어떻게 그런 말을 하니?”(p22)   

  

라고 되묻는다. 불편한 다리로 8차선 횡단보도의 신호는 짧고 길은 멀다. 하지만, 휠체어를 탄 형 옆에서 힘을 낸다.   

   

(세상은 8차선 도로인데, 민우는 여전히 불편한 다리로 거북이가 된 느낌이다. 똑같은 나이의 친구들이지만, 배려는 없고 차별과 혐오를 거침없이 쏟아내는 아이들. 그에 뒤질세라 집값이 어쩌고 하면서 장애인 특수학교가 들어서는 것을 반대하는 어른들의 황금만능을 질타하는 울림이 큰 동화였다. 님비현상의 실체를 보여주고 있어서 한 글자 한 글자 아프게 다가왔다.)      

  



어쩌다 보니 할아버지- 윤혜숙 작가님     


어느 날 아침, 동네 할아버지와 몸이 바꿔 버린 은석. 엄마에게도 친구에게도 말할 수 없다. 몸이 바뀐 은석과 째보 할아버지 두 사람만 알 뿐이다. 축구공이 할아버지네 집으로 굴러가면 죄다 뺏어서 돌려주지 않는 고약하기로 소문난 할아버지다. 할아버지로 살아보니 몸도 아프고 기운 없는 사정을 할 것 같은 은석. 할아버지도 종일 책상에 앉아 공부하고 뛰어다니며 축구하려니 너무 힘들어 서로 되돌아오기를 바란다.    

  

“네가 돼 보니 알겠더라. 그 사이 오해한 것도 미워한 것도 죄 미안하다.”(p73)    

 

은석은 평소에 노인 냄새난다고 가까이 가는 것도 꺼렸던 것이 후회된다. 할아버지의 자식 걱정, 틀니, 허리통증 등 할아버지의 고통, 아이들이 다칠까 봐 축구공을 돌려주지 않았던 것들을 알게 되는 심리 등이 너무도 섬세해서 고개가 끄덕여진다. 두 사람은 공원에서 별똥별을 보다 몸이 바뀌었다는 것을 알고 유성 쇼가 예고된 장소로 향한다.

     

(아이와 할아버지가 몸이 바뀐다면 얼마나 기가 막힐 노릇인가. 그 상황을 너무도 절묘하고 실감 나게 표현해서 웃다가 애타다가 혀를 차면서 읽었다. 역지사지가 되어 서로의 입장을 헤아려보며 실제 체험을 통해서 느끼게 된다. 말로만 해서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아이가 할아버지의 몸이 되어 체험하는 무력감과 어쩔 수 없는 상황들. 좋기만 할 것 같은 아이가 된 할아버지도 괴롭기는 마찬가지다. 결국, 자신의 정신에 맞는 몸이 딱 맞는 것이라는 것을 받아들인다. 아이들의 심리를 동화로 잘 쓰기로 정평이 나 있는 윤혜숙 작가님의 재미있는 동화를 좋아한다. 노인의 심리도 실감 나게 잘 쓰실 정도로 연구하시는 분이라는 것이 놀라웠다.)    



      

인기투표- 김일옥 작가님     


반 남자아이들은 제현의 생일파티에서 여자아이들을 대상으로 인기투표를 한다. 외모, 성격, 두뇌를 A, B, C 등급으로 나눠서 1등, 2등을 가르고 말끝마다 ABC, BAA 등 알 수 없는 비아냥 섞인 말들로 여자 아이들을 속상하게 한다. 제현은 투표 결과에서 꼴찌 한 세아를 AAA라고 생각한다. 제현의 입장과 세아의 입장에서 분리되어 서술하고 있어서 두 주인공의 심리를 자세하게 잘 표현하고 있다. 서로 좋아하는 마음이 드러난다.


“공기 중에 날카로운 가시들이 둥둥 떠다니다 서로를 찔러 대는 듯했다.”(p87)    

 

싸늘한 반 분위기를 다분히 문학적으로 표현한 이 문장이 백미였다. 선생님의 중재로 두 편의 싸움이 멈추는 듯했지만, 마음까지 치유된 것은 아니었다.     

 

(티브이 프로그램 인기투표로 촉발된 친구를 대상으로 한 인기투표가 마음을 아프게 했다. 항목이 겉으로 드러난 부분들로만 구성된 것도 문제였다. 근본적인 물음은 누가 누구를 평가하고 등급을 매길 수 있냐는 것이다. 성적으로 평가가 매겨지고 있는 당사자들의 억눌린 심리가 표현되고 있는 동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세계에나 약자 위에 군림하는 무소불위, 안하무인의 무리가 있다는 사실이 아팠다. 그들은 어떤 잣대로 평가받고 벌을 받아야 마땅할까? 정말 우리들 이대로 좋은가?)    



      

오 모둠 냄새- 송아주 작가님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학교에 모둠을 정한다. 살고 있는 평수대로 자연스럽게 분리되어 앉게 된다. 오 모둠은 가난한 아이들 즉, 적은 평수와 작고 허름한 집에 사는 친구들끼리 모이게 된다. 오 모둠에서는 이상한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친구들은 오 모둠 친구들을 멀리하고 놀리는 일이 계속된다. 아파트에는 어린이 놀이터를 가난한 동네 아이들이 사용하지 말라는 공고문이 붙는다. 공고문을 본 아빠가 기영에게 친구들과의 관계를 묻는다.      


“친구면 그냥 친구지, 뭐가 어때?”(p115)   

  

임대아파트인 5단지에 사는 기영은 오 모둠이다. 아빠한테는 차마 친구들 이야기를 하지 못한다. 신기하게도 오 모둠에서는 이상한 냄새가 계속 난다. 교실에 퍼지고 복도까지 퍼지게 되고 원인을 찾아 교실 전체를 수색하던 중, 오 모둠 뒤의 잠긴 사물함을 열게 된다. 사물함에서 쥐의 사체가 나온다. 그동안 놀림을 받던 오 모둠의 현아가 청소도구함에서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꺼내 들고 평소에 심하게 놀렸던 학철에게 건네주며 직접 치우고 사과하라고 한다.     


(친구들인데도 사는 평수에 따라 모둠이 나눠지는 현상이 무척 불편했다. 빈부의 차이가 친구들 사이에는 크게 작용하지 않을 것 같은데 황금만능주의, 자본주의의 끝판왕인 우리의 현실은 친구를 그냥 친구이게 놓아두지 않는다. 부자 아이와 가난한 아이로 나뉜다. 놀이터마저 공고문을 붙여서 분리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어른들의 이기가 눈꼴시다. 있는 그대로의 사람으로, 친구로 받아들일 수는 없는지… 친구를 놀렸던 아이에게 문제를 해결하게 하는 결말이 좋았다.)   



        

불법 사람- 장세정 작가님     


불법체류자인 키란은 축구를 잘한다. 친구들은 축구 시합에서 인원이 모자라 그냥 세워 둘 요량으로 키란을 끼워 준다. 네팔이라고 무시당하던 키란은 축구 결승전에서 골을 넣는다. 세찬은 키란과 축구를 매개로 친구가 된다. 키란을 통해 네팔과 키란 가족의 어려운 실정에 대해 알게 된다. 축구에서 진 윤수 일행은 키란을 때려서 다리를 다치게 한다. 화장실에서 말리지도 못하고 숨어 있었던 세찬은 키란의 모습을 보고 치료를 위해 병원에 가자고 한다. 불법 사람이라서 병원 카드가 없는 키란을 데리고 자신의 이름으로 접수하여 치료를 부탁하지만, 의사는 안된다고 돌려보낸다.



형이 공사장에서 독가스에 중독되어 위험해진다. 병원 입구에는 경찰들이 지키고 있어서 형의 임종도 지키지 못하고 도망간다.  중간중간 네팔어로 썼다는 점점 한국어를 배우면서 한글로 쓴 키란의 일기가 마음을 아프게 한다. 세찬을 친구로 생각하며 고마워하고 형과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그려진다.      


‘잘못을 해서 법을 어기는 건 알겠는데, 사람 자체도 불법이 될 수 있는 걸까?’(p149)    

 

(‘불법 사람’이라는 제목에서부터 목이 멘다. 타국에서 어렵게 살아가는 아이와 아빠의 모습이 마음 아프게 그려진다. 어떤 친구는 그 어려움에 부닥친 친구를 놀리고, 어떤 친구는 그를 돕기 위해 애를 쓴다. 키란은 말로 표현하지 못하지만, 누가 진정한 친구인지 느끼고 고마움을 알고 있다. 노동자로 살고 있는 아빠와 형. 그들을 걱정하는 어린 키란의 마음도 친구를 걱정하는 마음도 짠하고 뜨거워진다.)     



     



내가 없으면 좋겠어?     


다섯 작품에는 약자라고 생각되는 대상이 있다. 그들을 차별해서 놀리는 무리가 있고, 그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아이들도 있다. 다른 사람의 처지를 공감하고 배려하는 능력은 어떻게 형성되는 것일까.


똑같은 상황의 아이들이 상반된 생각과 태도를 가지고 성장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뼛속까지 선민의식에 차서 다른 사람을 낮게 보는 족속들이 있다. 타고난 기질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진짜 중요한 인간을 향한 존엄을 배제한 채 발전, 개발 등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것에 문제는 없을까? 우리의 소중한 미래를 이끌어 갈 자산인 아이들의 올바른 성장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게 한다.


약자를 향한 혐오와 차별을 반대하며 사회적 현상을 동화로 써서 바른 소리를 외치고 있는 임어진, 윤혜숙, 김일옥, 송아주, 장세정 작가님께 진심으로 존경과 감사를 드린다. 작가님들의 바람대로 바르고 행복한 아이들이 넘치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전 20화 애매모호함으로 빚은 언어의 연금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