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휴 Jul 26. 2024

스카우트하고 싶은 그들

[블루베리]


블루베리 화분에 풀들을 뽑아도 언제 자랐는지 모르게 쑤~욱 올라온 기다란 풀이 있다. 보통은 무 곁에  붙어서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자라난 녀석들이다. 나무를 이겨 보겠다고 씩씩하게 크고 있다.



"참 잘 컸다. 네가 블루베리 할래? 너, 스카우트하고 싶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손으로는 몰래 큰 풀들을 사정없이 뽑고 있다.



복숭아 밭 일과 겹쳐 바쁠 때는 화분의 풀들이 보이는 대로 뽑기는 하지만, 줄 잡아 차례대로 뽑지 못해서 가끔 커다란 풀들이 보인다.



"~매 단풍 들것네"가 아니라

"오~풀 좀 봐!"라며



놀라기 일쑤다. 명아주는 위로, 괭이밥은 바닥으로 번지며 풀들은 나름의 생존 방식을 터득해 끈질기게 살아나며 나를 힘들게 한다.



그들은 보이는 대로 다가가 뽑아 버리는 내 손아귀를 얼마나 미워할까? 나도 너희를 사랑할 수 없으니 어쩔꺼나. 난 블루베리 편이란다.




[복숭아]


조생종 복숭아 수확이 끝나고, 7월 중순에 수확하는 품종이 없어서 수확 잠재기다.



며칠 전, 비가 오면서 바람이 세게 불어 떨어진 복숭아가 있었다. 봉지를 뜯을 만큼, 크기도 좋고, 색깔도 빨간빛이 돌아서 예쁘다. 말짱한 것들의 낙과가 너무 아까웠다. 팔 수도 없어서 매일 먹고 있다. 연일 비가 와서 며칠이라도 햇볕을 받아 당도가 올라갈 것 같다.



마침, 이번 주에 비가 오지 않아 잘 되었다. 오늘수확날로 정했다.



[농원 주변]



농원 진입로에 심었던 매화나무를 풀들이 덮어서 보이지 않게 자랐다. 풀을 뽑아 줘야겠다고 농원에 드나들 때마다 생각했지만, 다른 일이 바빠서 차일피일 미뤄졌다.



비가 온 다음날, 매화나무를 살려 줘야겠다 싶어서 단단히 무장하고 출동했다. 두 시간 넘게 땀범벅이 되고 나니, 매화나무 주변이 깨끗해졌다.



어릴 적 골목에서 땅따먹기 놀이를 할 때처럼, 풀이 난 곳은 풀의 땅이고, 내가 풀을 뽑아내면 내 땅이 되는 것처럼 정신없이 풀을 뽑았다.



톨스토이 소설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에서 처럼, 해지기 전에 돌아올 수 있는 곳 까지는 아니더라도 해지기 전에 풀을 뽑는 곳까지 내 땅이라도 된다는 듯이~~



이 계절엔 그야말로 농원도 주변도 풀과의 전쟁 중이다~ 해지기 전까지가 내게 주어진 시간이다. 낮에 일하고 나는 뛰지 못하는 경주에서 풀은 잠도 안자며 자라서 항상 내가 지고 만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많은 것들에 지며 살아가고 있겠지만, 내 영역을 침범해 오는 풀들에게 시도 때도 없이 도전장을 내미는 여름날이다.


이전 03화 콩을 심어야 진짜 여름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