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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휴 Jul 19. 2024

콩을 심어야 진짜 여름이다

최 회장님이 콩을 심었냐고 몇 차례 전화를 하셨다. 하도 바빠서 콩 심을 시간이 나지 않았다.



감자를 캐낸 두둑을 조금만 골라서 군데군데 콩을 심고 포장을 덮기만 하면 되는데 그걸 못하냐고 물으신다. 마치, 콩을 심지 않으면 여름이 시작되지 않는 것처럼 걱정을 하신다. 콩알을 꼭 세 개씩 심으라는 말과 함께 콩을 심은 다음에는 나락을 널 때 쓰는 검정 포장을 덮어 놓아야 새가 파먹지 않는다는 말도 잊지 않으신다.



블루베리 하우스와 복숭아나무를 돌보고 농원과 주변의 풀 뽑기도 어려웠다. 시간이 어찌 가는지도 모르게 정신없이 살고 있는 내 사정을 누구보다 상세하게 아시면서도 콩 심을 때라고 한사코 성화셨다.



풀들은 우리가 바쁜 틈에 쾌재를 부르며 맘껏 자라고 있어서 열다섯 평 감자밭의 어엿한 주인이 되었다. 이제는 내 손을 떠났다. 예초기가 아니면 어려울 것 같아 콩 심을 엄두가 안 난다. 앞으로도 10일 이상 비가 예보되어 있어서 언제나 가능할지 모르겠다.



콩은 우리 가족에게 유용한 식품이다. 밥에 넣어 먹고, 미숫가루를 만들고, 콩물을 만들어 먹는다. 최 회장님도 콩을 좋아하는 우리의 식성을 잘 아시기 때문에 콩 심을 때라는 것을 몇 번이나 강조하시는 것이리라.



여름을 이기기 위한 음식은 다양하다. 이열치열로 삼복더위에는 삼계탕을 먹기도 하고, 시원한 수박이나 참외,  복숭아, 옥수수 등 계절음식을 꼽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우리 가족 최애 음식은 콩물국수다. 직접 기른 콩으로 국물을 만들고, 직접 기른 오이를 채 썰어 고명으로 올려서 먹는 콩물국수는 식당에서 사서 먹는 맛과는 비교불가다.





작년에 수확해 냉동실에 보관 중인 콩을 물에 한나절 정도 불린다. 솥에 넣고 삶는다. 너무 오래 삶으면 비린내가 나고, 너무 짧은 시간 삶으면 잘 갈아지지 않는다. 나는 끓기 시작하고 10분 정도 삶는다.



삶아진 콩을 잘 헹궈서 식힌다. 삶은 콩은 물과 함께 냉장고에 이삼일 보관했다가 갈아도 괜찮다. 정수기에서 물을 받아 믹서에 콩을 간다. 곱게 갈아서 채에 걸러 껍질을 제거한다. 콩을 갈 때 견과류나 참깨도 함께 갈아 넣으면 맛이 더 고소해지고 영양도 풍부해진다. 소금과 설탕으로 간을 맞춘다. 삶은 계란과 토마토까지 올리면 금상첨화다.



남편은 한 그릇으로는 부족하다고 더 달라고 한다. 정말 맛있다고 한다.



"도저히 맛이 없을 수가 없지요. 정성이..."



목이 멘다. 솟구친 땀방울이 흘러내린다. 달달하고 시원한 콩물이 나를 위로해 준다. 내년에도 이 맛을 보려면 서둘러 콩을 심어야 하는데 콩 심을 시간은 어디에서 훔쳐야 하나?



우리는 너무 바쁘고, 풀은 시간이 많아서 제 땅을 넓혀가고 있어서 풀을 이기기에는 역부족인 여름날이다. 콩밭이 될 곳의 풀 걱정을 하도 했더니 남편이 예초기를 잡았다.




나무처럼 굵고 커 버린 풀들이 베어 다. 감자밭을 찾아보기 어렵게 점령했던 것들이 드디어 쓰러졌다. 콩을 심어야 여름이고, 여름에 제격인 콩물국수를 포기하기엔 너무 아쉽다. 이러다 가을이 금방 오고야 말겠다. 이 주에는 꼭! 저 풀들을 헤치고 여름을 심듯이 콩을 심어야겠다. 더 늦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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