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오르는 불꽃같던

by 민휴

우리는 때때로 중요한 것을 잊고 살기도 한다. 예를 들면, 내가 받았던 용서에 대해 또는 너그러운 생각을 품었던 순간들을 말이다.


열 살 무렵 겨울은 언제나 추웠다. 산골이라 눈이 많이 내렸다. 솔가지와 장작으로 온돌을 덥히던 시절이었다. 겨울밤은 새벽으로 갈수록 방의 온도를 낮추었다. 숯불 화로가 차가워진 방의 온기를 붙잡았고, 찬바람도 문풍지를 때리며 방으로 들어오고 싶어 했다.


어느 날 아침, 오랜 병석에 계신 할머니가 요에 큰 실수를 하셨다. 가끔 있는 일이라 엄마는 할머니를 보살펴 드리고 젖은 빨랫감들을 챙겨 동네 샘으로 가셨다. 골목에는 친구들과 내 형제들의 왁자지껄한 놀이가 시작되었고, 전부터 엄마의 심부름 담당이던 나는 화로를 비우고 아침 설거지까지 마친 후 샘으로 갔다.


엄마를 도와 빨래를 하고 있는데 다급한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광곡 양반집에 불이 났으니 양동이를 가지고 모여주시기를 바랍니다.”

연속되는 안내방송에 빨래를 멈추고 귀를 기울이시던 엄마가 튀듯이 집을 향해 달려가셨다. 소에게 겨울 동안 먹일 짚다발을 쌓아 놓은 짚벼늘에 불이 붙은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샘까지 양동이를 들고 줄을 서서 물을 퍼 날랐다. 온 힘을 다해 물을 날랐지만, 가을부터 쌓아서 잘 마른 볏짚은 불타기 좋은 것이라 불의 세력을 이길 수는 없었다. 짚벼늘은 집채와 조금 떨어진 언덕에 있었다. 사람들은 불이 집채로 달려들지 못하도록 집채를 향해 물을 뿌렸다. 기세 좋은 불은 저절로 사그라지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뻘건 혀를 내두르는 불기둥과 하늘을 덮어가는 연기는 짐작해 보지 못한 것이어서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들게 했다.


‘도대체 저 불은 어디서 왔을까? 내가 비운 화로엔 불씨가 보이지 않았는데? 두엄자리와 짚 벼들이 이렇게 먼데 어떻게 불씨가 옮겨갔을까? 아버지가 오시면 난 어떻게 하나?’ 이런 생각들이 코에 붙었다는 소시지처럼 줄줄이 따라 올라왔다. 활활 타오르는 불기둥보다 더 무서운 아버지의 불호령이 걱정되어 공포로 몸이 굳어가는 것 같았다. 불은 탈대로 다 타서 사그라들었다. 그렇게 바람의 불장난도 끝이 났다. 듬직하게 언덕을 지켜주던 짚벼늘은 새까만 재만 남기고 사라졌다.

“집에 불이 안 붙은 것만도 천만다행이다.”

“서둘러 짚을 구해야 하겠다.”

동네 사람들은 위로와 당부를 남기고 돌아갔다. 고마움을 전하는 엄마도 놀란 가슴을 진정하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아버지께 혼날 것이 걱정되어 밥을 먹을 수도, 친구들과 어울려 놀 수도 없었다. 외출하신 아버지가 차라리 돌아오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날 저녁 오빠와 동생들은 잠이 들었고, 나는 자는 척하고 있었다.

“어린것이 얼마나 놀랐겠어요. 낮에 잘 타일렀으니 당신은 아무 말씀 마세요.”

엄마는 간곡히 아버지를 설득하고 계셨다.


다음 날 아침, 아버지는 짚 바늘이 사라진 자리를 보시고 ‘흠, 흠’ 헛기침을 몇 번 하셨다. 크고 작은 일들에 늘 목소리를 높이셨던 아버지는 아무런 꾸지람을 하지 않으셨다.

그 일을 겪고 나서 아버지를 향해 맹랑한 다짐을 했다.

‘아버지가 앞으로 나에게 어떤 잘못을 해도 용서하겠다’고 그렇지만 나는 수없이 아버지를 원망하며 살았다. 딸은 대부분 엄마 편이라 엄마를 힘들게 하는 아버지는 환영받지 못하기도 한다. 아버지는 그 대표 격이다. 급한 성격으로 온 가족을 쥐락펴락하셨다. 가정일은 나 몰라라 하시고, 온갖 사회활동에만 힘을 내셨다. 나의 필력으로 다할 수 없는 엄마의 피나는 헌신으로 세상만사 큰 어려움 없이 사셨다.

며칠 전, 아버지의 팔순을 앞두고 내게 시를 써서 낭독하는 시간을 주려는 형제들의 배려가 있었다.


직계가족들만 모여 팔순 행사를 했다. 부모님이 건강한 모습으로 나란히 차림 상 앞에 앉아계신 것만으로도 너무나 감사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의 팔순 인생을 돌아보며 잊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어렸을 때 했던 다짐처럼 아버지를 용서해 드리기로 했다. 무섭게 타오르는 불꽃같던 아버지가 사그라들고 있다.


다시 한 번 미래를 향한 용서를 생각한다. 내가 받았으면서도 잘 기억하지 못하는, 잊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배려와 용서에 대한 갚음이라고 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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