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베리 화분의 풀을 뽑으며EBS 라디오 이승렬의 세계음악기행을 들었다. 패널로 나온 가수 정밀아의 '서술'이라는 노래가 들렸다.
처음에는 한강 작가님의 목소리와 너무 닮아서 한강 작가님인 줄 알았다. 그가 소개하는 노래들도 모두 좋아서 풀뽑는 수고로움도 잊고 정신없이 시간이 흘러갔다.
한 음 한 음 마음을 꾹꾹 담아서 꼭 불러야 할 음으로 편안하게 부르는 정밀아의 진심이 다가와서 그의 노래전곡듣기를 찾아서 들었다.
편안하게 자기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았다. 그도 한 발 한 발 정성을 다해 살아가고 있는 참신한 사람이라는 느낌이라 마음에 꼭 들었다.
얼마 전, 브런치 작가님의 소개로 알게 된 최유리 가수의 노래를 만났을 때와, 한강 작가님의 노래를 알게 되었을 때처럼 내 마음이 마구마구 행복해 졌다.
"우린 진짜 농부인데, 농부가 위대하다고 하네요!"
"손에 흙 묻히는 고된 일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지!"
농원의 나무들이 커 갈수록 나무들이 우리를 부른다는 생각이 든다. 집에 있으면, 농원이 궁금해져서 왠지 맘이 편하지 않다. 그냥, 몸이 더 아픈 것 같고, 무엇을 해도 손에 잘 잡히지 않는다.
농원에 가 있어야 맘이 편하다.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것 같다. 그 증상은 나보다 남편이 더 심해서 집에서는 침대랑 한몸이 되어 유튜브에 푹 빠져 있다. 늘 힘들다고, 기운없다고 하다가도 농원에 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힘찬 사람이 된다.
거침없이,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일을 한다. 점심엔 꼭 막걸리 한 잔... 내가 하는 타박에는 "막걸리 먹으려고 일을 한다"고 너스레를 떤다. 덩달아 한 잔씩 받아 먹는 막걸리에 내 몸무게가 계속 오름새다.
복숭아나무의 유인작업을 마치고, 블루베리 화분의 풀도 한바퀴 모두 뽑았다. 지난 주말에는 언니랑, 동생이랑 세자매가 부부동반으로 고흥 연홍도로 여행을 다녀왔다. 모두 다 바다가 보고 싶었었나 보다.
"너무 좋다! 여기 너무 좋다!"
언니도 동생도 좋아해 줘서 내가 더 고마웠다. 모두들 해외 여행도 자주가고, 예쁜 제주도에서 한 달 살이도 할만큼 여행을 좋아하는 분들이라 우리가 추천한 장소를 좋아해 주실까 걱정했었는데 기우였다.
밤낚시, 숯불, 잔불에 고구마를 굽고, 싱싱한 회를 준비해 주신 주인장님 덕분에 더없이 행복한 여행이었다. 반달이었지만, 바다에 비친 달빛, 까만 밤하늘에 촘촘하게 박혀 반짝이던 별, 잔잔한 파도소리, 마춤한 밤바람 등 잠들기 아까운 밤이었다. 잦아드는 숯불에 손을 모으고, 자그마한 불씨의 따스함도 함께 품으며 참 좋았다.
여행에서의 풍경들은 또 추억으로 가슴 한 켠을 채웠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농원으로 몸과 마음이 향한다. 벌써, 나무들은 내년을 위해 말없이 일을 하고 있다. 꽃눈과 잎눈이 올라왔다. 내년에 열매가 맺힐 가지들이 튼실히 자라도록 올 겨울에는 거름도 뿌리고, 가지치기를 해 줘야 한다. 우리도 벌써, 내년을 위한 발걸음을 나무들의 생장에 맞춰 함께 해야 한다.
농부의 마음으로 나무들을 본다. 겨울 동안 휴면에 들기 위해 열심히 영양을 모으고 있을 나무들이다. 올해는 이파리가 늦게까지 떨어지지 않는 기현상이 일어나서 복숭아를 키우는 농가들은 걱정하고 있다. 늦게까지 달려있는 잎들이 나무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지 내년이 되어봐야 알 일이다.
노랗게 변해가는 은행나무 사이로 초록빛 강물이 느리게 흐르고, 빠르지 않은 기차가 지나간다. 이 가을도 천천히 흘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