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모든 순간을 그림으로 만나는

―장혜숙 『삶의 미술관』(제이 엔 제이제이, 2022)을 읽고

by 민휴

그림에 대한 작가의 이야기, 작가 알기, 미술사 맛보기로 짜였다. 명화들을 모아서 삶의 시간 순서로 배치하고 “생의 모든 순간”이라는 부재에 맞게 구성한 책이다.


삶과 그림과 화가의 삶에 대해 며칠 만에 속성으로 배운 것 같다. 한편 한편 시간을 내서 배워도 할 이야기가 넘칠 것 같은 내용들이었다. 명화 한 편만 보는 것도 마음이 풍요로워질 텐데 28명의 화가와 명화를 한꺼번에 만나는 일은 과식한 느낌이지만 미술의 양식으로 찌는 살은 두 팔 벌려 환영한다.


그림마다 자세한 설명이 덧붙여져 있어서 그림을 이해하고 감상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이 책은 한 번 읽고 끝나는 책이 아니다 손을 뻗으면 닿을 위치에 두고 손쉽게 다시 볼 수 있도록 해야겠다. 내 삶의 가까이에 『삶의 미술관』을 두고 살면 좋겠다.


EBS 윤고은의 북카페에서 26주 동안 김찬용 도슨트가 이끌었던 “미술애호가를 위한 최소한의 미술사”를 두 번씩 다시 듣고 『김찬용의 아트 내비게이션』을 통해 미술사조와 그림, 화가들에 애정이 깊어졌었다. 위의 내용들이 전체적으로 훑어보고 듣는 기초과정이었다면, 장혜숙 선생님의 『그림으로 만나는 삶의 미술관 생의 모든 순간』은 심화 과정쯤으로 생각되었다. 제목과 표지 그림인 고흐의 “첫걸음, 밀레 이후”라는 작품부터 마음에 들었다.




목차

탄생과 유년 〡 태어나고 사랑받고 놀고 배우고

교육 〡 공부하고 꿈을 꾸고

사랑 〡 사랑하고 가정을 꾸리고

삶의 기쁨 〡인생을 알아가며 세상을 이해하고

죽음과 장례 〡늙어 생을 마감하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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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에서(10P)

“감상鑑賞은 객관적인 사실이다. 작가 자신이 작가 노트와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작품에 대한 해설을 덧붙였고, 전문 지식을 갖춘 여러 명의 비평가나 학자들이 다양한 연구를 통해 작품에 대한 사실들을 발표한 것이다. 예술가는 시대의 눈이요, 예술작품은 시대의 거울이라고 할 정도로 작품의 시대적 배경은 감상鑑賞에 큰 몫을 한다. 미술작품에 대한 해설을 보면 그 내용이 여기저기 거의 비슷한 이유가 바로 객관적인 감상鑑賞이기 때문이다.”라고 적혀 있다. 그 많은 미술사를 다 외울 수는 없지만, 여러 권의 책들을 두루 읽다 보면 미술에 대한 애정도 깊어질 수 있을 것 같다.


「태초의 달큰한 기억」에서(21P)

“베르트는 가족, 친척, 친구를 모델로 삼았고, 가정의 풍경에 집중했다. 풍경 작품은 강 외에 정원과 같은 다양한 장소로 설정되었지만, 가족 생활의 즐거움이라는 일관된 주제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라고 남성이라는 기득권 사회에서 ‘그녀의 재능과 기술은 남성 동료들에게서도 존경을 받았는데 이는 당시로서는 매우 드문 성과’였다고 하면서도 그녀의 사망 증명서의 직업란에 ‘직업 없음’이라고 적혔다는 말이 충격적이었다.


「네가 걷기 시작할 때」에서(30P)

“픽션이든 논픽션이든 우리는 책을 읽으며 간접경험을 하고, 그 경험이 일생을 꾸려나가는데 큰 도움이 된다. 타인이 쓴 기록, 타인의 이야기가 내 삶에 영향을 끼친다. 그림도 마찬가지이다. 눈앞에 펼쳐진 화면에서 나와 연관되는 그 무엇인가를 발견한다면, 서랍 깊은 곳에 숨어들어간 나의 옛 기억을 되찾는다면, 그림 한 점 감상한 보람이 클 것이다. 나와 무관한 남의 그림에서도 나의 인생은 그렇게 타인과 연결된다.”라는 말을 발견했다. 내가 가장 큰 공감을 받았던 내용이다.


「아이들이 사회생활」에서(61P)

“모여 있는 소년들 틈에 함께 어울리지 않고 화면 밖으로 걸어나가는 듯한 이 소녀가 남녀의 사회 통합에 대한 열망을 상징한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바시키르체프는 그 시대의 페미니스트 투쟁에 참여했고 여성 혐오 사회를 비난하기도 했는데 그로부터 이런 해석이 나온 것이다.”라고 쓰여 있다. 여섯 명의 당당한 무리 틈에 끼지 못하고 한 소녀가 저 멀리 걸어가고 있는 뒷모습이 쓸쓸해 보였다.


“결핵에 걸린 후 자신이 죽음에 이를 것을 예감한 25세의 여성 화가, 바시키르체프는 잊혀지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녀가 남긴 일기가 더욱 그녀를 유명하게 했는데, 사후 1887년에 출판된 일기는 그 시대 여성의 컬트 책이 되었다.”라고 적었다. 바시키르체프의 일기는 1887년에 처음 출간되었으며 당시 프랑스에서 출판된 여성의 첫 번째 일기였다고 한다. 그는 음악적 재능도 뛰어난 음악 개인 교육까지 받고 있었는데 질병으로 목소리가 망가져 그림을 공부했다고 한다. 재능이 뛰어난 사람의 단명은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크나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지식의 샘에서」에서(70P)

“〈아테네 학당〉에는 고대 그리스와 헬레니즘 시대를 대표하는 학자들 54명이 등장한다. 철학자 뿐 아니라 산술, 문법, 음악, 기하학, 천문학, 수사학, 변증법 등 모든 학문을 대표하는 상징적 인물들이다. 이성을 통해 얻은 자연의 진실을 표현하는 뜻으로 인문학 위주의 학자들은 상단에, 자연과학 학자들은 하단에 배치했다.라고 해설을 썼다.


500*770cm의 프레스코 벽화다. 유명 학자들이 한 장소에 모여 있으니 그야말로 지식의 샘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오른쪽 구석에 자기 얼굴을 그려 넣은 라파엘로는 스스로 존재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다. 원근법을 이용해 감상자를 그림 속으로 불러들이는 듯한 기법이나 생생한 움직임이 돋보여 손을 들고 무언가를 질문하면 누구라도 서슴없는 대답이 돌아올 것만 같아서 감히, 최고의 그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노동의 고통과 숭고」에서(194P)에서

그림 〈괭이를 든 남자〉에 대하여 “프랑수아 밀레가 가장 좋아하는 주제인 농부에 대한 그림이다. 죽어가는 어머니를 방문할 돈이 없는 상황에서 그는 평소의 객관성을 벗어나 절망의 쓰라린 마음을 괭이를 든 사나이로 표현했다. 들판에서 고된 일을 하고 잠시 멈춰서 굳어진 허리를 펴려고 애쓰는 모습이 이 그림은 거센 비난과 찬사를 동시에 받았다. 미화된 고전주의 표현에 익숙했던 비평가들은 이 작품의 고통스러운 리얼리즘에 모서리를 치며 격분했다”라고 한다. 밀레는 농민 주제 그림으로 유명한 사실주의 화가다.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들판과 농민을 보고 자랐다고 한다.〈만종〉, 〈이삭 줍기〉를 기억하자.


「작가 알기」 - 장 프랑수아 밀레(201P)

“1850년대 초부터 밀레의 주요 관심사는 농민과 농촌이었고 그의 그림은 노동의 세계를 찬양하는 그림들이었다. 그림들은 19세기의 위대한 풍속화를 대표하는 쿠르베의 작품과 함께 회화에서 현대 미술의 첫 등장을 알렸다. 고흐와 쇠라 같은 동료 예술가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그이 그림 솜씨와 그가 평범한 사람들에게 쏟은 관심이었다. 그의 스타일은 자연주의와 종교적 사실주의로 나눌 수 있다. 생존의 문제, 삶과 죽음의 문제가 땅에 의해 결정되는 농민들의 일상적인 풍경을 주요 작업 소재로 삼았다.”라고 적었다. 밀레가 노동의 가치와 소중함을 알고 그이 주된 목적은 ‘고된 노동의 슬픔 속에서 삶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한다.



흥미 위주의 책은 아니지만, 미술에 관심과 애정을 갖고 집중하여 조용히 공부하는 마음으로 설명을 읽으면 술술 잘 읽히는 책이었다. 그런 후에 그림을 다시 보면 처음에 보았던 느낌과는 다른 감상이 찾아왔다. 내력을 알고 보니 느낌이 달라진 것이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낀다.”라는 유홍준 선생님의 말씀이 실감이 났다.


화가와 그림들 대부분이 어디에서나 몇 번쯤은 들었었고, 그림도 보았던 것들이지만, 유려한 문체로 설명해 나가며 작가 자신의 인생 경험을 풀어내며 설명하는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모든 내용이 중요하고 좋았지만, 개인적으로는 라파엘로와 밀레의 삶과 그림들이 기억에 남는다. 또한,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여성으로서 그림을 배우고 훌륭한 그림을 그려서 당당하게 사회활동에 뛰어들었던 화가 ‘베르트 모리조’와 ‘마리 바시키르체프’에 대한 부분을 가장 인상 깊게 읽었다. 28명의 화가 중에 여성 화가가 2명뿐이라는 것은 서운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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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은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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