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꽃피는 순간

by 민휴

지극한 삶이 꽃으로 핀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마을 어귀까지 고소한 기름 냄새가 마중 나왔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10리 길의 지친 발걸음을 재촉했다. 아침에 학교 갈 준비를 하며 엄마께 물었다.

“엄마, 몇 시에 하실 거예요?”

“작은집 아주머니랑 시간을 맞춰 봐야지!”

“그래도 오후에 하실 거죠?”

“그럼, 많아서 시간 많이 걸리니까, 걱정하지 말고 학교 갔다 와.”

산자를 이루는 날이다. 유과라고 하면 더 잘 알 수 있겠지만, 내가 열 살 무렵이던 때는 산자라고 불렀다. 그래야 더 적확하고 맛있는 이름인 것 같다. 추석에는 조청이 녹기 때문에 설날에만 만들었다.



손바닥만 한 조각을 기름에 넣자 ‘부시식’ 소리를 내며 연노란색으로 빠르게 부풀어 올랐다. 원래 모양보다 서너 배쯤 커졌는데 그 모습은 마치, 산자가 뜨거운 기름에 놀라 몸을 바르르 떠는 것 같았다. 바로 그 순간, 꽃처럼 부풀어 오르는 모습은 아름다운 환상이었다. 작년에 처음 보았을 때, 너무 예쁘고 신기해서 올해도 그 모습을 보려고 기대했었다. 잘 마른 산자에게는 약간 미안했지만, 마냥 좋은 일들이 꽃처럼 몽글몽글 피어날 것만 같았다.

명절을 앞두고 보름 전부터 찹쌀을 반죽해 모양을 만들 때도 힘들지 않았다. 방바닥에 펴 널어 잠잘 곳이 좁아졌어도 괜찮았다. 산자를 이루는 날을 기다리며 며칠을 견뎠다. 드디어 오늘 산자를 이루고 있다. 내 손으로도 몇십 개는 만들었고, 뒤집으며 말렸을 산자가 자꾸만 꽃으로 살아나고 있다.

할머니께서는 튀겨진 산자에 솔로 조심스레 조청을 바르셨다. 그 위에 하얀 쌀 튀밥 가루를 솔솔 뿌리면 산자는 다시 한번 꽃처럼 피어나며 완성된다. 모양이 온전한 것은 차곡차곡 석작에 담고 부서진 것은 맛을 볼 수 있었다. 입안 가득 산자를 베어 물면 달콤함이 혀를 감싼다. 조심스레 깨물면 ‘바삭’ 소리를 내며 천천히 녹는 그 맛을 잊을 수가 없다.



우리 집은 종갓집이라 명절날은 종일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손님상에 정성들여 만든 음식들을 차려 내는 것은 종부인 엄마의 자존심이셨다. 산자, 약과, 다식, 강정, 정과, 조청, 식혜, 술빚기 등은 특히 손이 많이 가서 보통은 한 달 전부터 준비하셨다.

끝없는 농사일과 층층시하 어른들 수발, 올망졸망 오 남매를 키우시면서 열두 식구의 입성과 먹성을 맞춰 내셔야 했다. 어떻게 그 많은 일들을 해내셨는지 지금도 상상하기 어렵다. 어린 시절에는 엄마가 주무시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농한기라는 겨울철에도 엄마의 일이 끝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털실로 스웨터, 장갑, 양말 등 온갖 것들을 뜨개질하셨다. 대바늘을 양손에 쥐고 무늬를 만들어가며 완성해낸 옷을 입는 것은 자랑이었다. 할머니의 목덜미까지 덮는 모자, 아빠의 목 스웨터, 오 남매에게 소용되는 것을 뜨개질하셨다. 나는 꽈배기 모양이 양쪽으로 내려오던 분홍색 스웨터를 좋아했다.

어느 날엔 밤늦도록 듣기 좋은 다듬이소리가 났다. 손잡이가 달린 다리미에 벌건 숯덩이를 올려 엄마가 직접 만든 모시옷들을 다렸다. 엄마는 음식이면 음식, 손 솜씨면 솜씨 등 어느 것 하나 빠진 것이 없었다.

아빠는 집안일에 도통 관심이 없으셨고, 혼자서 늘 동동거리며 바쁘기만 한 엄마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가난한 살림의 종가에서 손에 물 마를 날 없는 굴곡진 삶을 지극하게 살아 내신 엄마는 올해 팔순이 되셨다.



몇 해 전부터는 "지금이 제일 좋다"고 말씀하신다. 삶의 버팀목이었던 오 남매가 탄탄한 삶의 자리를 찾아 잘 살고, 우애 좋게 지내는 모습이 그렇게 행복할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친정과 승용차로 40분 거리로 오 남매 중 가장 가까이 살아서 자주 가는 편이다. 좋아하시는 먹거리를 사 가거나 반찬을 만들어 가기도 한다.

“어쩌다가 내가 너를 낳아서 이렇게 호강하냐!”

오 남매 모두에게 하셨을 넉넉한 덕담이시다.

“엄마! 저번에 막내한테도 그 말씀 하시지 않으셨어요?”

“내가 그랬냐? 맞지야! 오 남매 모두 내 복이지야!”

“엄마 덕분에 오 남매가 복 받은 거지요!”

엄마는 자식들이나 손주들 이야기를 할 때면 참을 수 없다는 듯 웃음을 지으신다.



어린 시절 산자를 이루던 날을 생각한다. 정성과 시간을 들여 산자를 빚고, 말리고, 이루어 꽃처럼 피어나게 했던 과정이 엄마가 살아오신 삶의 모습을 닮았다. 엄마의 헌신과 희생이 밑거름되는 삶을 전적으로 찬성할 수는 없지만, 정성스럽고 지극한 삶은 노년에 행복한 꽃으로 피어났다. 내 삶 속에도 꽃으로 피어날 수 있는 지극함이 있을까?

삶이 꽃피는 순간.jpg

[엄마가 키우신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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