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광자 동시조집 『선녀와 나무꾼』(반딧불, 2025)을 읽고
고광자 작가는 제주시 애월읍 출생, 건국대 행정대학원 석사, 詩명예문학박사, 시인, 아동문학가, 문학평론가, 수필가 正歌 시조창 명인 - 작가소개에서
전통 시조의 형태를 표방한 동시조집을 만났다. 짤막하고 정해진 형식 아래 내 생각을 맞춘다는 것이 억지스러운 것은 아닐지 걱정되었는데, 『선녀와 나무꾼』을 읽으며, 내가 오해한 것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동시조는 짧고 정해진 형식이지만, 그 속에 넓고 유연한 세계관을 담을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동시조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청산이
스승이라
만고에 청아한 빛.
개울물
돌돌 돌아
수도길 찾아간다.
자연의
참 고운 모습
예의범절이지요.
― 「청산은」전문 (p27)
자연의 고운 모습이 예의범절이라는 생각을 못해보았다. 순하고 평화로운 자연을 보면 저절로 마음이 편안해진다. 작가는 청아한 빛에서 마음을 정화하며 그런 자연이야말로 사람이 배워야 할 예의범절이라고 생각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찬찬하고 맑은 관계 맺기가 예의라고 생각하는 작가의 올곧은 심성이 느껴진다.
태어나
부지런히
촌을을 아끼어라!
크나큰
가르침은
자연이 스승이다.
귀담아
듣는 우리들
소중함을 배운다.
― 「자연 공부」 전문 (p43)
자연은 말이 없다. 부지런한 사람만이 자연이 들려주는 큰 가르침을 알아챌 수 있다. 자연의 이치를 깨닫는다는 것, 그것을 삶에 적용해서 생각하고 실천해 살아가는 것은 인생의 큰 화두일 것이다. 자연은 결코 멈추는 법이 없다는 것을 알고, 열심히 살아가라는 것을 깨달은 작가는 또 얼마나 쉼 없이 부지런히 살아왔을까를 생각해 본다.
아, 글쎄
그렇단다
7학년 6반 이지.
하늘을
올려 봐도
겁나는 게 없단다.
뚱뚱 배
달마 스님인양
자연에서 산단다.
― 「할머니는 7학년 6반」 전문 (p53)
제주로 서울로 바쁘게 오가던 할머니는 자연 품으로 돌아와 편한 시간을 갖는다. 하늘도 바다도 푸근한 품성으로 한껏 끌어 안아 친구가 되버린 것 같다. 꽃밭에서 즐거워하는 삽화가 할머니의 정다운 삶을 보여주고 있어서 시가 더 돋보인다.
한강을
바라보다
발걸음 뚜벅뚜벅
화들짝
놀란 가슴
보조개 피었어요.
나팔꽃
붉은 웃음은
수줍어 발갛지요.
― 「나팔꽃」 전문 (p72)
고광자 작가는 부지런한 발걸음을 한강으로 향한다. 부지런한 새가 먹이를 잡는다는 말처럼 이른 아침에 피어나는 나팔꽃을 만난다. 꽃을 만나면 꽃처럼 가슴에 보조개가 피어나는 것. 이런 마음이야말로 진정한 동심이 아닐까. 어른이 되어도 동심을 잃지 않고 아이처럼 맑고 순수한 마음을 간직한 사람들이 있다. 이 시를 보면 알 수 있다. 작가가 품은 동심을.
푸른 잎
커다란 귀
웃는다 대 여름날.
풀벌레
쓰르라미
폭포수 영혼 모아
사랑가
플라타너스
공실 없는 하늘 공연.
― 「하늘 공연」 전문 (p76)
하늘을 배경 삼아 우뚝 선 플라타너스에 불벌레랑 쓰르라미가 모였다. 여름, 대낮 공연이 펼쳐진다. 관객들로 꽉 찬 대성황의 공연이다. 작가는 넉넉한 품으로 대자연을, 하늘을 온몸으로 안았다. 자연과 한마음 되어 함께 공연을 펼치는 주인공이 된다. 작가는 자기가 무대 중앙에 있다는 것을 뽐내지도 않는다.
동시조집을 읽으며, 서울로 제주도로 몇 바퀴 돌다 나왔다. 고향 제주도의 자연을 있는 그대로 아끼는 작가의 태도 또한 고향을 향한 예의는 아닐지 생각해 본다. 동시조와 함께 예쁜 그림으로, 사진으로 펼치는 페이지마다 새로운 세상으로 초대받은 듯한 인상을 준다.
자연에서 얻은 순리를 인간 삶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모습과 마주하는 매사를 공부와 배움의 순간으로 생각하고 쉼 없이 마음을 담는 자세를 배우고 싶다.
동시조라는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고, 어린이들에게 우리 고유의 가락으로 아름다움을 전해 주려는 의지가 감사하다. 正歌 시조창 명인인 고광자 작가의 동시조집 출간은 너무도 당연한 수순인지도 모른다. 작가의 사명감이 빛나는 동시조집 『선녀와 나무꾼』 출간을 축하드리며 건강하시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