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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글 Aug 26. 2023

연민의 메커니즘에 대한 단상 (2)

미움을 모두 지워버리는 강력한 무기

연민에는 미움을 무력화하는 힘이 있다. 


최근 계속 신경이 쓰이는 사람이 있다. 그다지 좋아하지도, 크게 싫어하지도 않는 '아는 사람'에 범주에 속하는 이가 줄곧 신경이 쓰인다라는 것을 인지하니 그것이 썩 달갑지는 않아서 마음 한구석이 불편하다.


불편한 느낌의 원인을 찾아 헤매다가, 과거 어느 시점에 우뚝 멈춰 서서 현재 느끼는 감정의 근삿값을 찾아본다. 그리고 내가 미워하던 이가 나에게 양해를 구하지 않고 제멋대로 드러내버린 자신의 취약성으로 인해 나는 그를 더 이상 미워할 수 없었던 경험을 떠올린다. 




용서하고 싶지 않았던 사람이다. 만일 용서를 하더라도 내가 용서에 대한 권한을 가지고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형태의 용서를 해야 했다. 상대가 반복적으로 미안하다고 했다는 사실은 용서의 이유가 될 수 없었다. 용서는 나의 정신건강과 더 나은 나를 위해서라는 명목으로만 가능했으며, 내가 원하는 시점과 방식을 선택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렇지만 H는 끝까지 이기적이었다. 늘 그랬듯 H는 갑작스레 내게 다가와 다시 또 말을 걸기 시작했다. 


일련의 대화 과정을 형상화해 본다면 그렇게 우스꽝스러울 수가 없다. 마치 이런 거다. 불현듯 H는 한밤중에 나의 집을 찾아와 초인종을 누른다. 초인종 벨 소리를 듣고 누가 왔는지 미리 인터폰으로 확인한 나는, 손님이 아니라 불청객이 찾아왔음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피어오르는 약간의 당혹감을 애써 외면한 채 나는 H의 존재를 무시하려고 성실히 노력한다. 그러자 H는 누가 이기는지 보겠다는 듯 시끄럽게 노크를 하고 목소리를 높여 나를 부르기 시작한다. 쾅쾅쾅. 할 이야기가 있다고, 문 좀 열어 보라고. 그렇게 소란을 피우기 시작한 지 십 분이나 지났을까, 이웃집에 누가 될까 갑자기 찾아온 용건 정도는 물어봐 주겠다고 생각한다. 


나와 H 사이의 거리감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싶다. 내가 문을 열어 주었다고 해서 우리가 다시 화해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관계는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그런 유치한 생각을 실천하기로 결심한 나는 어이없게도 갑자기 잠옷을 벗고 최대한 포멀한 정장을 고르기 시작한다. 입사 면접을 볼 때 입었던 정장을 찾았다. 이건 내가 가진 것 중에 가장 포멀하고, 가장 불편한 정장이다. H는 밖에서 계속 시끄럽다. 순간 확 짜증이 난다. 그렇지만 나는 서두르지 않고 느긋하게 환복을 마친 후 잘 끼지 않던 액세서리를 여러 개 착용하고, 스타킹까지 신는다. 문을 열기 전 모종의 의식을 마친 내가 드디어 문을 열자 H는 흰색 목욕가운 차림으로 또 노크를 하려는 것처럼 주먹을 허공에 든 채 나를 우두커니 응시하고 있다. 신발도 제대로 신지 않은 채 욕실 슬리퍼를 신고 왔다. 그 꼴로 여기를 온 거야? 나는 황당한 표정으로 H를 본다. 그리고 문이 열린 것을 확인한 그는 벙쪄 있는 나를 재빠르게 지나쳐서 나의 집 안으로 당황스러우리만치 자연스럽게 들어온다. 마치 초대를 받고 온 사람처럼. 거실을 한 바퀴 돌고 나서 소파에 앉은 H는 마실 건 있어?라고 묻는다. 떨떠름하게 너 줄 건 없어,라고 대답한 이후 우리는 각자 정장과 목욕가운을 입은 채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야기가 30분 정도 진행되자 H는 답답하다며 입고 있던 목욕 가운마저 벗으려 한다. 나는 벗지 못하도록 필사적으로 막는다. 더 이상 듣고 싶지도, 알고 싶지 않다. 이제는 제발 그냥 집에 가 줬으면 좋겠다. H는 아직 할 이야기가 남았다며 가운을 벗으려고 하지만 나에게 제지당한다. 그렇게 우리는 한동안 육탄전을 벌인다. 그러던 중 언뜻 비친 가운 사이에 군데군데 들어있는 피멍과 피가 흐르다 못해 딱지가 앉아있는 것을 나는 목격하고야 말았고, 그것을 본 순간 나는 H가 가운을 벗으려는 것을 더 이상 막을 수 없었다. 


가운을 벗은 H는 피투성이였다. 처음에는 이렇게 피투성이가 된 자신을 사람들에게 보여줄 용기도 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다 간신히 용기 내어 가족과 가까운 친구들에게 자신을 노출시켰으나, 돌아오는 싸늘한 반응에 큰 상처를 입었단다. 그렇게 그는 이해받기를 포기하고 스스로의 섬에 자기 자신을 고립시켜 버린다. 외롭다고 했다.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자신은 언제나 어디에서나 영속적인 이방인일 뿐이라고. 근데 왜 나야? 나에겐 왜 또 보여주려고 하는 건데? 내가 애써 날을 세우며 되묻는다. 따라오는 답변은, 왜인지 본인도 모르겠지만 나라면 본연의 자신을 이해해 줄 수 있을 것 같아서 꼭 대화를 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렇게라도 나에게 찾아올 수밖에 없었음을 고백한다. 그리고 앞으로 이렇게 종종 속을 터놓아도 되겠냐고, 다음번에는 만나서 이야기할 수 있겠느냐고, 처음 집에 들어올 때의 뻔뻔함은 온데간데 사라진 채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바닥을 응시하며 내게 묻는다.   


H를 여전히 미워하고 싶어서 그의 상처를 애써 외면하려고 노력한다. 아니, 없어. 늦었어. 이만 돌아가 줘. H는 말없이 일어나서 다시 가운을 입고, 고마웠다며 집을 나선다. H가 떠나고 남은 자리에는 원망과 연민, 분노와 애틋함이 한데 뒤섞인 채 혼란스러운 마음만이 남아있다. 그리고 채 하루가 지나지 않아 그 모든 감정의 소용돌이는 연민을 이기지 못하고 모두 스러진다. 그리고 그동안 용서하고 싶지 않았고 용서할 수 없었던 H에게 단숨에 내 마음속 한 구석에 있는 어떤 방을 내어줘 버린다. 건강한 애정과는 다른 그 어떤 지하실 같은 방을. 


그렇게 결국 나는 H를 끝까지 미워하기를 실패했다. 그리고 그의 친구가 다시 되어 줄 수밖에 없었다. 이 관계의 회복은 나의 자유의지라기보다는 어떠한 불가항력적인 힘에 가까웠다. 그렇게 자신의 취약성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카드패를 내보이는 것은 그 무엇보다 강력했다. H가 그것을 알고 영리하게 이용한 것인지, 그것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기에 의도한 바는 아니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다시 나는 최근에 내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일련의 순간들로 돌아와 나에게 두 번째로 연민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하는 존재에 대해 생각한다. D는 사회적으로 일컫는 성공이라는 것에 어린 나이에 꽤나 가까워진 사람이다.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일 정도로 참 많은 것을 가졌음에도, D는 늘 약자를 자처한다. 배려의 차원에서 약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외부로부터 받는 공격이나 조롱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려 하지 않고, 그저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맞고만 있다. 옆에서 지켜보는 이는 답답해 미칠 지경인데, 속도 없는지 그저 사람 좋은 웃음을 하며 허허허 웃는다. 친하지 않은 나도 이렇게 갑갑한데, 가까이 있는 사람들은 오죽하겠나. 


직접적으로 그 이유에 대해 터놓고 이야기해 본 적은 없으니 정확한 이유는 알 길이 없다. 자존감의 문제인지, 스스로 세워 둔 너무 높은 기준의 문제인지, 아니면 D가 좋아하는 그녀로부터 받은 반복되는 무시의 단어들 때문인지. 그런데 D의 사람 좋은 웃음 사이사이 숨어 있는 괜찮지 않음의 반증은 분명 주위를 잘 살피는 사람들의 눈에는 현현히 드러난다. 본인을 향한 어떤 조롱의 말 이후 잠시 흔들려 버린 눈빛, 떨린 목소리, 또는 잠깐 표정 관리에 실패하고 굳어버린 표정. 그리고 몇 초 되지 않아 D는 다시 사람 좋은 모양새로 돌아온다. 그렇게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가 웃어넘기니 그를 막 대해도 괜찮다고 여기는 듯하다. 모르고 싶었지만 나는 읽어버린 그의 찰나의 취약성이 자꾸만 눈에 밟힌다. 


연민의 감정이 정당하지 않다는 생각도 든다. 선 넘는 감정이라는 뜻이다. 내가 무엇이라고 그에게 연민을 느낄 수가 있겠는가. 나보다도 훨씬 많은 것을 가진 D이다. 그리고 H와는 달리 D는 나에게 힘듦을 내색한 적도, 도움을 직접적으로 요청한 적도 없다. 또한 연민이라는 것이 일종의 '우위'가 있는 감정일 수 있기 때문에 더욱 경계해 본다. 단면만 바라본 채 함부로 D라는 사람에 대해 단정지은 것이 있을까 봐 섣불리 재단하지 않으려 애써본다. 그렇게 조금씩 새어 나오는 연민을 애써 밀어 넣고 무신경함으로 봉합하려고 노력을 한다.


그렇지만 그렇게 한없이 당하고만 있는 D를 보면, 스스로 무슨 정의의 사도라도 된 것 마냥 분노가 차오르는 것이다. 왜 누군가가 당신을 해치게 그냥 두는 거냐고. 왜 당신의 허락 없이 누군가가 당신을 하대하고 무시해서 또 다른 누군가는 당신에게 연민을 느끼도록 만드는 거냐고. 왜 제지하지 않냐고. 이런 스스로가 우습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저 견딜 수가 없다. 대화 속에서 당신이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고, 그렇게 사람들이 당신에게 함부로 하지 못하게 하라고 말해주고 싶고, 또 사람들 속에서 참 외로워 보이는 그에게 가끔씩은 최근의 생각과 고민을 나누는 친구가 되어주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물론 그 주위에 사람은 이미 여럿 있고, 이 또한 참 오지랖이다 싶어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면 헛웃음을 짓고 고개를 젓고 만다. 


연민은 그만의 기묘한 힘으로 내 사람이 아닌 타인에게 그토록 무관심한 나를 변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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