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책임지죠?"라는 질문에 팀장이 입을 닫았다.

비겁한 침묵과 내게 건네진 독이 든 성배

by Motivator

그날 팀장님의 표정은 유독 어두웠다.

임원실에서 나온 그의 어깨는 한껏 위축되어 있었고, 책상 앞에 앉아 머리를 감싸 쥔 채 연신 한숨만 내뱉고 있었다. 모니터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지만, 그의 눈동자는 초점을 잃은 지 오래였다.


임원의 "왜 아직도 진행이 안 돼?"라는 불호령이 복도까지 들렸던 터라, 팀원들 모두가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 정적 속에서 팀장님은 결심한 듯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그 눈빛은 결연함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자신이 살 수 있을까라는 비겁한 생존 본능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팀장님이 나를 불렀다.

"과장님, 잠깐 회의실에서 이야기 좀 할까요?."


이전 그렇게 권위적이고 나를 찍어 누르려고만 했던 팀장님의 모습과는 조금 달라 보였다.

"별건 아니고, 예전에 이 프로젝트 진행해 본 적 있다고 했지?"

"네 예전부터 우리도 진행이 필요하다고 몇 번 말씀드렸던 부분입니다"


그는 그동안 절대로 나에게 허락하지 않았던 본인만이 쥐고 흔들던 성역(聖域)을 너무나 쉽게 내밀었다.

" 이 프로젝트 김 과장이 한번 진행해 보는 거 어때? 이전부터 관심 있었던 분야이기도 하고, 예전부터 반드시 필요하다고 매번 회의 때마다 이야기했었잖아. 이번 기회에 김 과장이 제대로 한번 진행해 바. 필요하다면 컨설팅도 함께 받으면서 제대로 지원해 줄 수 있을 것 같아서. "


순간 나는 움찔했다. 그토록 나에게 넘겨주지 않으려고 했었던 그 영역의 문이 이렇게 쉽게 열릴 수 있다고?

"아 네 팀장님 제가 진행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문제는 없는데, 어떤 방향으로 진행을 해야 하는지가 제일 중요하기에 이 부분에 있어서 팀장님의 도움이 많이 필요할 듯합니다."

"그래 뭐 그런 부분이야 내가 도와줄 테니까 잘 맡아서 진행해 바 지금까지 잘 해왔잖아. 어려움 없을 거야 "


그렇게 난 팀장님과의 대화를 마친 후 자리에 돌아왔다. 주변의 팀원들은 놀라는 눈치였다.

절대 다른 사람에 맡기지 않을 영역인데 과장님에게 진행을 맡기다니... 뭔가 속셈이 있을 것이라는 의견들이었다.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에게 건네진 것은 기회가 아니라,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었다.


중간보고는 늘 순조로웠다.

팀장은 내 보고서를 훑어보며 '그렇게 하면 된다', '잘하고 있다'라며 가벼운 피드백을 던졌다.

모든 진행이 매끄러웠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곳에서 변수가 발생했다.

임원과의 미팅 자리, 진행 상황을 듣던 임원의 미간이 서서히 찌푸려졌다. 그가 생각한 방향과 우리의 결과물이 어긋나기 시작한 것이다.

회의실의 온도가 급격히 떨어졌다. 임원은 서류 뭉치를 툭 던지며 우리 쪽을 쏘아보았다.

"이 프로젝트, 예전부터 우리에게 꼭 필요했던 부분인 것 잘 알고 있죠?. 만약 잘못되면, 이거 누가 책임지는

건가요"


질문은 날카로운 화살이 되어 날아왔다. 당연히 그 화살을 막아내야 할 방패는 내 옆에 앉은 팀장이었다.

하지만 팀장은 약속이라도 한 듯 입을 굳게 다물었다.

1초, 2초... 회의실에는 잔인한 정적이 흘렀다. 팀장은 임원의 시선을 피하며 애꿎은 노트북 화면만 응시했다.


그 정적의 시간 동안 나는 깨달았다. 그는 나를 믿어준 것이 아니라,
나를 버릴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참을 수 없는 모멸감이 차올랐다. 나는 그 비겁한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네 제가 담당이니 제가 책임져야죠."


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팀장님의 표정이 묘하게 풀렸다.

"그래요, 담당 PM인 과장님이 책임 지시는 거니까 사안을 더 철저히 체크하세요. 지금까지 진행된 내용들 전부 재검토해서 다시 보고합시다."


회의는 그렇게 끝났다. 팀장은 회의실을 나가는 순간까지도 나에게 단 한마디의 사과나 위로도 건네지 않았다. 오히려 짐을 덜었다는 듯한 홀가분한 뒷모습뿐이었다. 그날 나는 알았다. 이곳에서 나의 열정은 결코 보호받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이후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실무진 쪽과 팀장의 의견은 평행선을 달렸다.

프로젝트의 성패를 가를 결정적인 지점에서 긴 줄다리기가 이어졌다. 나는 소모적인 논쟁을 끝내고 싶었다. 리더가 저토록 강경하게 본인의 방향을 고집한다면, 일단 그 방향을 믿어주는 것이 조직원으로서의 마지막 도리라고 생각했다.

마음은 내키지 않았지만, 다음 미팅에서 나는 결국 팀장의 손을 들어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팀장님 말씀대로 그 방향으로 가는 것이 맞겠습니다. 이렇게 마무리하시죠."

그런데 그 순간,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내가 본인의 의견에 동조하자마자 팀장의 눈빛이 흔들리더니 돌연 나를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과장님, 정말 이 판단이 맞다고 생각해요? 내가 보기엔 여기서 그런 판단은 좀 아닌 것 같은데."

귀를 의심했다. 방금 전까지 그 방향이 아니면 안 된다고 우기던 사람이 아니었나.

그는 내가 자신의 의견을 전적으로 수용하는 순간, '이 결정이 실패했을 때의 책임'이 오롯이 자신에게 돌아올 것을 직감한 모양이었다. 결국 그는 내가 자신의 손을 들어준 사실마저 꼬투리를 잡으며 나를 비난했다. 화살은 다시 나에게 돌아왔다.


맞춰줘도 욕을 먹고, 안 맞춰줘도 욕을 먹는 상황.

그때 깨달았다. 이 사람은 지금 프로젝트의 성공을 고민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실패했을 때 '내 탓이 아니었다'라고 말할 알리바이를 만들고 있을 뿐이었다. 그 비겁한 행동 앞에서 나는 더 이상 할 말을 잃었다.

그날, 회의실을 나오며 나는 리더십 오답 노트의 가장 아픈 페이지를 넘겼다.


"나쁜 리더는 팀원의 동의조차 자신의 방패로 활용한다."



1. 리더의 품격은 '성과'가 아니라 '책임'의 무게에서 결정된다.

리더가 팀원보다 높은 연봉과 직함을 갖는 이유는 더 유능해서만이 아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팀원을 보호하고 그 결과에 책임을 지기 위해 지불되는 '위험수당'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책임 앞에서 입을 닫는 리더는 스스로 그 자격이 없음을 증명하는 것과 같다. 권위는 부리는 것이 아니라, 책임을 지는 뒷모습에서 나온다.


2. 나쁜 리더는 팀원의 '충성심'을 '방패'로 활용한다.

조직을 위해 기꺼이 "내가 책임지겠다"라고 나서는 팀원의 헌신은 리더가 가장 소중히 보호해야 할 자산이다. 하지만 비겁한 리더는 그 헌신을 자신의 실수를 덮는 방패로 삼는다. 팀원의 동의조차 자신의 알리바이로 이용하는 리더 곁에서 유능한 인재들이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은 '열정'이 아니라 '침묵'과 '방어'이다.


3. 주파수가 맞지 않는 곳에서 '맞춰주는 노력'은 무의미하다.

리더의 방향에 맞춰주려 애써도 결국 비난의 화살이 돌아온다면, 그것은 업무의 문제가 아니라 리더의 심리적 불안 때문입니다. 실패가 두려워 끊임없이 도돌이표를 그리는 상사에게 주파수를 맞추는 것은 정답이 없는 미로를 헤매는 것과 같다. 때로는 상대의 주파수에 맞추는 노력을 멈추고 나만의 채널을 찾아 떠날 준비를 해야 한다.



그날 나는 뼈저리게 배웠다.

비겁한 리더 밑에서 열정은 사치이고, 책임감은 독이 된다는 것을. 팀장은 내 동의를 얻어 자신의 성을 쌓았다고 믿었겠지만 동시에 나라는 가장 든든한 아군을 잃었다는 사실은 끝내 알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 나는 더 이상 그의 주파수에 나를 맞추지 않기로 했다. 나만의 오답노트에 적힌 이 쓰라린 기록은 오늘날 나에게 수많은 질문을 던진다.


리더의 자리에 서면 때론 날아오는 화살을 피하고 싶을 때가 있다. 조금 비겁하더라도 당장은 살고 싶다는 유혹이 발끝까지 차오를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그날의 공기를 그리고 지금 내 곁에 있는 팀원들의 얼굴을 차례로 떠올린다. 그러면 거짓말처럼 정신이 번쩍 든다.


'단 한 번의 비겁한 행동으로 내가 쌓아온 모든 리더십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것'


그날의 상처가 남긴 이 엄중한 교훈을 나는 결코 잊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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