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팀장님이 이야기해 주셨던 대로요. 팀원하고 이야기를 나눠봤어요.”
그는 말을 하다 잠시 멈췄다. 마치 어디까지 말해도 괜찮을지 가늠하는 사람처럼.
“처음엔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가 팀장인데, 이렇게까지 이야기해야 하나? 솔직해지면 혹시 나를 무시하지 않을까… 그런 걱정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 정말 힘드셨겠어요. 마음이 많이 어려우셨겠어요.”
그 말에 그는 작게 웃었다.
“네. 그래도요, 용기 내서 제 부족함부터 이야기했어요.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팀원들이 먼저 자기 이야기를 꺼내더라고요. 그동안 쌓였던 오해들도 하나씩 풀렸고요.”
팀원들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애썼던 한 팀장이 그간의 과정을 조심스럽게 들려주었다.
완벽해야 한다는 생각을 내려놓는 일이 얼마나 두려웠는지, 그리고 그 솔직함이 오히려 신뢰의 시작이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처음 이 대화를 시작했을 때 나는 그에게 한 가지를 분명히 말했다.
'팀장은 완벽해서 신뢰받는 자리가 아니라 불완전해도 대화할 수 있어서 신뢰받는 자리'라고.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도망치지 않았고 팀원들과의 솔직한 대화를 통해 관계의 방향을 다시 잡아가고 있었다.
“팀장님 덕분에요.”
그가 말했다.
“팀 분위기도 많이 달라졌고, 대화가 훨씬 자연스러워졌어요.”
그러다 문득, 그가 나를 보며 물었다.
“근데요… 어떻게 팀원들 마음을 그렇게 잘 아세요?”
나는 잠시 웃다가 말했다.
“뭐… 겪어본 사람이 안다고 하잖아요.”
그렇게 대화는 가볍게 끝이 났다.
사무실을 나오며 문득 예전의 한 사람이 떠올랐다.
회의실에서 늘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하던 팀장, 질문보다는 지시를 대화보다는 통제를 선택하던 사람, 팀원의 침묵을 동의라고 믿던 사람.
그때의 나는 왜 그렇게 조용해졌을까?
왜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았고 왜 설득을 멈췄을까?
이제 와서야 알겠다. 그건 포기가 아니었다.
그 세계에서는 말이 닿지 않는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람은 말해도 되는 곳에서만 말하게 된다. 솔직해도 안전한 공간에서만 자신을 꺼낸다.
그 사실을 나는 너무 늦게 그리고 너무 깊게 배웠다.
예전의 나는 리더십이란 더 많이 아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더 정확한 답을 내놓는 것, 더 강한 논리로 상대를 설득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알고 있다.
리더십은 답을 말하는 능력이 아니라
말이 나오게 만드는 능력이라는 것을.
누군가가 ‘이 말을 해도 괜찮을까’를 먼저 계산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
그것이 팀이 건강하다는 신호라는 것을.
나는 더 이상 조용해질 필요가 없는 사람이 되었다.
말해도 괜찮은 곳에서는 말하고, 말이 닿지 않는 곳에서는 스스로를 지킨다.
나는 그를 이기려 하지 않았고 설득하려 하지도 않았다. 그의 세계에서 조용히 걸어 나왔을 뿐이다.
이 이야기는 누군가를 고발하기 위한 기록도 나의 선택을 증명하기 위한 변명도 아니다.
이것만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침묵은 성격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환경에 대한 가장 정직한 반응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침묵의 시간을 통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지 어떤 사람이 될 수 있는지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말을 아끼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이 이야기가 작은 기준이 되었으면 한다.
말해도 되는 사람이 되는 것, 혹은 말하지 않아도 나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그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면 당신은 이미 충분히 단단한 사람이다.
나에게 그 시절은 가장 지독한 오답노트였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오답들 덕분에 나는 지금 꽤 괜찮은 정답을 써 내려가고 있다.
그러니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덕분에 많이 배웠습니다. 하지만 같은 방식으로는, 다시는 배우고 싶지 않습니다."
이것으로 팀장님과의 기록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