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떴더니 핸드폰에 낯선 알람이 와있었다. 'We approved your case and sent you an approval notice..' 순간 잠이 확 달아났다. 이민 수속 Process를 Tracking 해주는 어플을 찾아 실행하였다. NIW 신청서가 승인되었다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작년 11월 말에 신청하였으니 110일이 경과된 시점이었다. 아, 정말 되었구나. 이제 진짜 시작이구나..
여느 영주권 신청이 다 그렇겠지만, NIW도 상당히 복잡하고 긴 Process를 거쳐야 한다. 우린 대략 10단계 중 2단계에 왔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중요한 단계임은 분명했다. 이민청원서 I-140의 승인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5개월이나 걸려서 서류를 준비했다. 실제로 많은 청원인들이 NIW가 추구하는 요건에 부합하지 못하여, 청원을 거절당하거나, 까다로운 수정 요청서를 받는다고 하였다. 우리도 그 부분을 우려하여 이민 변호사님을 신중히 선정하였던 것이고, 내 커리어를 잘 정리하여 타당한 스토리를 만들기 위하여 상당히 긴 시간을 소요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I-140의 승인은 우리 부부에게 미국 이민을 위한 큰 Turning Point와 같았다. 작년만 해도미국 이민은 여전히 먼 일만 같았는데, 이제는 가시권에 들어왔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이민국(USCIS)에서 이민 청원서 (I-140)을 승인하게 되면, 이제 케이스는 국무부 내 NVC (National Visa Center)로 이관된다. 이후 이민 비자 신청서 (DS-260)을 작성하여 제출하고, 이에 대한 리뷰가 완료되면 절반은 온 셈이다. 여기서부터 문제가 되는 것은 Visa Bulltin이라 불리는 이민문호이다. 매달 국부부에서 발표하는 이민문호는 미국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이민인의 숫자를 제한한다. 코로나 이전에는 NIW는 이민문호에서 자유로웠다. DS-260 리뷰만 완료되면, 바로 비자 인터뷰를 보고, 빠르면 수개월 이내에 영주권 카드를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코로나가 끝난 22년부터 미국으로의 NIW 신청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현재는 NIW도 이민문호에 의하여 막혀있다. 정확한 표현으로는 이민문호에서 통지한 우선일자 (현재는 23년 2월) 이전에 NIW 신청서를 제출한 사람들만 인터뷰 대상자라고 한다. 내가 NIW 신청서를 제출한 일자는 23년 11월이니 아직 9개월의 갭이 존재한다. 이민 문호가 언제 어떻게 열릴지는 아무도 예상할 수 없지만, 현재까지의 추세를 역산해 보면 DS-260 승인 후 약 10개월 안으로는 인터뷰 날짜가 확정된다고 보인다.
I-140 승인 후 며칠 뒤, 한통의 메일이 더 날아왔다. 내 Case가 이민국에서 국무부 NVC로 이관되었으나, DS-260 신청을 위한 Visa Fee를 납부하라는 내용이었다. 앞선 사람들 케이스를 살펴보았을 때, 국무부 이관이 3개월에서 길게는 8개월까지 걸릴 것이라 예상하였기 때문에 전혀 예상치 못한 메일이었다. 덕분에 우리 부부의 예상 타임라인이 반년은 당겨졌고, 이제는 내년 상반기에 비자 인터뷰를 예상할 수도 있게 되었다. 변호사 사무실로부터 DS-260 작성을 위한 여러 가지 서류를 안내받았다. 나를 포함한 네 가족의 가족관계증명서, 주민등록초본, 기본증명서는 물론, 혼인관계증명서, 병적증명서, 범죄수사경력회보서, 출입국 사실 증명서 등등.. 그뿐 아니라 이민비자 신청서에는 부모님의 출생지부터, 16세 이후 내가 거주한 곳의 상세 주소까지.. 엄청나게 세세하고 사적인 정보들을 기입해야 했다. 대한민국이 아닌 다른 나라의 영주권을 신청하고 있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실감이 났다.
DS-260 접수까지 진행을 하고 나니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무엇 보다 회사 생활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많이 바뀌게 되었다. 물론 회사에서 봉급을 받으며 일하고 있는 이상 업무를 소홀히 하지는 않겠지만, 그동안의 내가 회사에서 내 능력을 증명 (Prove) 하기 위해 힘썼다면, 요즘에는 커리어를 향상 (Improve) 하는데 신경을 더 쓰게 되었다. 즉, 지금의 회사 밖에서의 나를 상상했을 때, 필요한 강점은 더욱 강화하고, 가려야 하는 약점은 보완하기 위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동료들과의 크고 작은 마찰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크게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지금 보다는 더 큰 플랜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마치 마음속 비밀 병기처럼 자리 잡아서, 나를 좀 더 단단하게 만들어 주는 느낌이다.
와이프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갖게 된 것 같다. 연초에 회사에서 안 좋은 일이 많이 생겨 힘들어했었는데, 시기적절하게 좋은 소식을 받게 되어 기운을 많이 내게 되었다고 한다. I-140이 승인된 이후로 부모님과 아이들에게도 영주권 신청 사실을 알렸고, 이해를 구하였다. 자식 내외와 손주들이 물리적으로 너무도 먼 곳으로 떠난다는 사실은 납득하기 상당히 어려운 이야기였겠지만, 부모님 모두가 우리들의 결정을 지지해 주셔서 너무도 감사했다. 아이들도 새로운 환경에서의 적응에 걱정은 많이 하고 있지만 엄마 아빠의 결정을 믿고 따르기로 하였다.
일 년 뒤에인생에서 가장 큰 변화를 도모해야 한다고 생각을 하니, 부담감도 크고 마음이 무거워진다. 내게 언어의 장벽은 아직도 너무도 높고 부담스럽다.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으로 미국이라는 미지의 땅에서 과연 돈을 벌 수 있을까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아직' 일 년이라는 시간이 남아있고, 많은 것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려 한다. 나년 이맘때쯤 부족한 내 자신에 좌절하지 않도록, 필요한 것들을 최대한 준비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