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일기장을 보다가, 18년도에 쓴 글일 있어 옮겨 적어본다. 큰 애가 열 살이 되면서 나와 트러블이 많이 났었다. 아동 상담 센터에서 검사를 할 일이 있었는데, 큰 애가 생각보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때부터 아이를 대하는 나의 태도에 조심을 기하고자 노력을 많이 했다. 그즈음에 쓴 글인 것 같다.
큰 아이가 어느덧 열 살이 되었다. 자기 의견이 눈에 띄게 강해졌고 부모의 결점에 대해서도 쉽게 넘어가지 못하는 10대가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외부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아직 잘 소화하거나 표현하지 못한다. 화를 잘 내고, 감정 표현이 매우 거칠다.
이런 아이와 지낸지도 역시 10년이 되었다. 까칠한 아이 성격을 탓하며 매번 실망하고, 화내고, 지쳐하며 살아왔다. 이 모든 것의 원인을 내게서 찾아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우리 부부가 너무 엄격한 환경 안에 아이를 가둬놓은 건 아닐까? 내 변덕스러운 기분이 아이에게도 전염된 것은 아닐까? 사랑을 쏟아부었다 생각했지만, 아이에게는 마냥 어려운 부모였을까?
최근 몇 번의 사건 속에서 나 스스로 이성의 끈을 놓아버렸다고 고백한다. 아이에게 모진 말을 하였고, 손찌검을 하였고, 방치했었다. 내 인생을 이리도 힘들게 만드는 아이가 원망스러웠다. 놓을 수 없음을 알면서도 모두 놓아버리고 싶었고, 마음대로 행동하고 싶었다.
내 어리고 이기적인 행동 때문에 아이는 더욱 코너에 몰렸고, 두려움에 쌓여 방황하였다. 괘도에 올려주려 그리도 노력했건만, 다시 멀리 튕겨져 나가 버렸다.
나는 좋지 못한 부모였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겠다. 좋은 음식을 해주고, 좋은 친구가 되어 신나게 놀아주었을지는 몰라도, 아이가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은 되지 못하였다. 그릇이 작았고, 조금 모난 아이라 하더라도, 그런 아이를 품어주지 못하였다. 그리고 이제, 돌이키고 치유해 줄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인생이 힘든 것은 아이 탓이 아니다.
10대는 부주의하다. 때로는 잔인하고, 때로는 부주의하다. 부모는 10대들의 이러한 행동이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알리고 싶다. 그러나, 인생 속 수많은 고통과 상처는 결코 하나의 원인에서 생겨나지 않고, 해결되지도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원망할만한 핑겟거리를 찾는다.
부모가 편안하고 안정적일 때 아이들은 가족을 걱정 안 하고 자유로이 세상을 탐구한다. 그리고 나중에 부모에게 도움을 줄 정도로 강인하게 자라난다. 하지만 부모가 나약하게 느껴지면, 자신감, 자존감, 탐구력, 강인함이 발달하지 않는다.
< 아이가 열 살이 넘으면 하지 말아야 할 말, 해야 할 말>
그래도 돌이켜 보면, 작년에 비해서는 아이들을 대하는 내 태도가 많이 유해졌고, 일관성을 지키려 노력한 것 같다. 큰 애의 심리 검사 결과가 준 충격과 다짐이 한몫을 하였다. 위에 인용한 책에서 저자가 말하는 부분도 내 마음에 큰 울림이 되었다. 아이는 아이일 뿐인데 나를 알아주기를 너무 기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대부분 웃으며 대하려 노력하고, 아이가 결점을 보여도 비난하기보다는, 잘못을 알려주고 고쳐가려 노력하고 있다.
지난해 5월 서울로 회사를 옮기면서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을 많이 늘렸다. 아침에 큰 애를 깨우고, 아침을 챙겨주고 학교를 보내는 일상을 3학기 정도 같이 해왔다. 요즘 회사를 다시 옮기게 되어, 이제 더 이상은 아이 등교를 챙겨주지 못하게 되었는데, 큰 애가 울면서 내게 말했다. "아빠와 손잡고 등교하는 길에 하루를 버티는 큰 힘을 얻었었어" 마음속으로 엉엉 울어 버렸다. 그래도 지난 1년을 노력해왔는데 헛수고는 아니었던 것 같아 다행이었고, 앞으로 더 해주지 못함이 미안했다.
누군가 말했듯이,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내 안의 나를 키우는 것과 같다. 간장 종지 보다도 작았던 내 마음의 그릇이 이제 육아 10년 정도 되니 밥그릇 정도는 된 듯하다. 큰 애는 미숙했던 부모 밑에서 성장을 하며 이래 저래 힘들게 산 셈이다. 녀석이 20대가 되기 전까진 함지박 만한 마음 그릇이 되어야 할 텐데 잘 될지는 모르겠다. 그때가 되면 나를 성장하게 해 준 녀석에게 고맙다고 술 한잔 사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