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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리안 Jan 17. 2023

너무 빨라도, 너무 느려도 안 되는 법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는지 아리송한 40대 차장님들의 삶

한 달 사이에 동기 두 명이 육아 휴직을 선언했다. 사오 년 전보다는 남사원의 육아 휴직이 그렇게 낯선 풍경은 아니지만, 그것도 다 젊은 후배들이 한두 살 되는 아이들 키우다가 정말 힘들어서 내는 경우가 많지, 이렇게 40대 초반의 베테랑 아빠들이 쓰는 경우는 많지 않다. 대게는 이런 경우는 이면에 다른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동기 A는 박사 시절 같은 과 후배가 팀장이 되면서, 그 아래서 파트장을 잡은 케이스였다. 이전 팀부터 불통으로 유명했던 인사였기에 약간 걱정이 되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지난 2년 동안 그 아래에 있는 파트원들의 곡소리가 하늘을 찔렀고, 하루가 멀다 하고 팀장이 팀원들 티타임 요청에 시간을 다 보내야 했다. 그래도 팀장이 세운 파트장이었기에 소위 '실드'를 2년이나 세워주었는데, 작년 말에 나왔던 정기진단에서 본인의 '불통' 특기를 진단팀에게도 보여 주었다가, 제대로 걸려서 거의 징계 직전까지 상황을 끌고 같다. 문제는 팀장도 같이 끌려들어 가 버렸다는 것. 상무님이 구원투수 역할을 해주어 징계는 겨우 면했지만, 연말 고과 평가에서 B는 바닥에 가까운 고과를 받았고, 파트장에서도 내려오게 되었다. 연구소 내 몇몇 팀에 전배 요청을 내 보았지만 팀장 추천이 없는 그를 받아줄 팀이 없어 보였고, 결국은 2월부로 1년짜리 육아휴직을 가기로 하였다.


반면 동기 B는 기획팀에서 잘 나가는 에이스였다. 엔지니어에서 기획으로 옮긴 후 지난 십 년 동안 늘 성실했고, 본인이 모시던 팀장이 마침 담당으로 승진하게 되면서 중요한 프로젝트마다 참여하면서 커리어 패스를 잘 다지고 있었다. 담당의 추천으로 작년에는 팀장 후보에도 올랐기에, 올해는 잘 풀릴 줄 알았다. 그런데 밀어주시던 담당이 작년 말 임원인사에서 상무로의 진급에 실패하면서 분위기가 급랭을 타기 시작했다. 마침 꼴통으로 소문났던 팀장이 옆팀으로 물러나고 본사에서 새로 팀장이 왔고, 오랜만에 일 잘하는 팀장 만났다고 좋아했었는데, 불과 6개월 사이에 동기 B는 파트장 자리를 5살이나 어린 후배한테 내어주고 본인은 한직으로 보직 이동까지 당하게 되었다. 사정을 들어보니, 팀장이 보기에는 아무래도 자기 라인은 아닌 듯하고, 오히려 자기가 삐끗하면 자기 업무를 충분히 커버할 수 있는 동기 B님이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팀장이 정식 직책인 반면, 파트장은 비정규직인지라, 신규 선임도, 보직 해임도 쉬운 편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비정규직인 파트장도 감투는 감투인지라, 일정 시간을 지내고 나면, 파트원들과는 거리가 생길 수밖에 없다. 일을 시키는 자와 일을 받아야 하는 자가 사이좋기는 힘들지 않겠는가. 그러다 보니 동기 A와 B처럼 파트장에서 내려온 후의 회사 생활을 예전처럼 지내기는 쉽지 않다. 내가 일을 시켰던 후배와의 자리가 바뀌는 경우를 쿨하게 받아들이기 쉬운 사람이 어딨겠으며, 엎친데 덮친 격으로 그 후배가 평소에 억하심정이 좀 있었다면, 상황은 더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일을 잘해도 문제, 못해도 문제인 우리 40대들의 회사생활은 골치 아프다. 너무 잘해도 잘려나가고, 너무 못해도 잘려나간다니, 눈치껏 중간만 잘 달려야 하는 건가. 그런데, 그렇게 중간만 달리다 보면 팀장도 못해보고 늙어버리는 딜레마에 빠진다. 다음 달부터 인적쇄신 프로그램이 공개될 것인데, 45세 이상의 무직책자가 1순위 대상이라고 한다. 어설프게 중간을 달리다가는 이번엔 회사 인사팀에게 컷오프 당한다는 이야기이다.


나는 오늘도 묵묵히 일을 했다. 팀장과는 사이좋게, 후배들에게는 성안내고, 오늘 할 일은 오늘 다 끝내고, 내일 할 일은 내일로 남겨두고 퇴근을 했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뛰는 법은 솔직히 잘 모르겠다. 내 머리 위에서도 작두가 서걱서걱 오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매일 스트레스받아가며 살 수는 없지 않은가. 올라가다 보면 언젠간 내려와야 하는 법. 하루하루 즐겁게나 달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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