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프와 약속한 시간에 강남 역삼역에서 만났다. 평일 오후에 회사 밖에서 만나는 일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약속한 5시가 되어, 8층에 있는 이민법인 사무실을 찾아갔다. 전화로 수차례 통화를 했던 임이사님과 인사를 하고 한 시간 정도 NIW에 대한 진행 절차를 설명받았다. 내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차분하고 신뢰감 가는 분이었고, 이 분과 진행해도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반적인 프로세스에서부터, 향후 생길 수 있는 일들, 영주권 취득 후의 상황, 계약에 필요한 비용과 환불 조건 등등의 설명을 모두 듣고 나서, 계약서에 사인을 하였다. 두 달에 걸쳐 고민해 오던 미국 영주권 취득을 위한 첫걸음을 떼었다.
NIW는 미국 영주권 취득에 매력적인 조건이었다. 초청이민이나 투자이민에 비하여 취득에 걸리는 시간이 매우 짧다는 점이 첫 번째였고, 취업이민의 경우 취업을 미리 하여 고용주의 보증 서류가 필요한데 비하여, NIW는 신청인의 성과나 이력에 의하여 승인을 결정하기 때문에, 미리 취업을 해두어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두 번째 장점이었다. 마침 내가 종사하는 분야가 NIW를 신청하기에 적합한 분야였고, 회사에서 R&D를 진행하면서 출원한 특허와 몇몇 논문들이 그런 이력을 증빙할 수 있어서, 승인 확률이 높다고 하였다.
작년에 와이프가 처음으로 영주권 이야기를 꺼냈을 때만 해도, 내 의견은 100% 반대였다. 30대에 꿈꾸었던 외국 생활에 대한 로망을 잊은 것은 아니지만, 40대 중반에 들어선 지금, 생활권을 옮기는 것이 너무도 무겁고 위험해 보였다. 돈은 어떻게 벌지? 취업을 한다고 해도 잘 자리 잡을 수 있을까? 교육은 어떻게 시키지? 아이들 적응은 괜찮을까? 병원 비용이 어마어마하다는데 괜찮을까? 한국에 계시는 부모님은 괜찮을까? 인종차별을 당하지는 않을까?
일 년이 지난 지금도 그 질문들과 걱정은 그대로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질러보기로' 결정하였다. 회사 생활이 15년을 지나고 보니 올라갈 곳과 내려올 곳의 윤곽이 드러나는데, 그다지 올라감에 매력이 없어진 점. 지금 직장보다 '더 나은 곳'으로 이직을 하여야 하는데, 그 시점은 적어도 40대 중반을 넘기고 싶지 않다는 심리적 저항감, 워크홀릭과 번아웃 증후군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와이프를 불의 소용돌이와도 같은 회사 생활에서 꺼내어 쉼표를 찍어주고 싶다는 소망, 큰 아이가 중학교에 들어서서 겪는 학업적 스트레스, 그리고 그것이 아이가 부족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이 나라의 교육시스템의 불합리가 빚어낸 것 같다는 생각 등등이 '질러보기'의 소스가 되었다.
요약하자면, 현재의 진로, 건강, 교육에 대한 우울함이 미래의 또 다른 진로, 건강, 교육에 대한 불안감을 이긴 듯하다.
그동안와이프와 이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세가지를 약속하였다. 영주권이 승인났을 경우 바로 떠나기, 한 사람만 경제활동을 하고 다른 한 사람은 가정을 안정화하기, 어떤 경우에도 네 가족이 같이 움직이기.
한 시간 정도의 상담을 마치고 야근을 위하여 사무실로 돌아가는 와이프와 간단하게 저녁을 먹었다. 계획대로 일이 잘 풀린다면 언제쯤 떠날 수 있을까, 그때 우리는 어디에서 시작해야 할까. 나는 어떤 일을 하게 될까. 큰 아이는 새로운 학교 생활을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정교한 틀에 맞추어져 모든 것이 명료한 지금의 삶과 너무나도 다른, 모든 것이 정해져 있지 않은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왠지 모를 기대감이 생겨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