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몸에 새겨둔 지도

08. 이주

by 김민경


이주


단 한 칸의 통로를 사이에 두고

이곳과 저곳의 계절은 어긋나 있다.


한때 팽팽한 생의 한복판을

가로질렀을 굽어진 허리들이

객차의 막다른 구석으로 밀려와 앉았다.


날 선 침묵으로

속도에 몸을 맡긴 채 앞만 볼 때,

구석에 고인 시간들은

해진 손마디를 만지며 지나온 길을 복기한다.


누구도 원하지 않은 이주였으나

몸에 새겨진 굽이진 문양들은

그곳이 그들의 정박지임을 증명했다.


일반 좌석에 앉아 건너편을 바라보는 일은

머지않은 나의 뒷모습을 마주하는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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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객차의 양 끝단, 일반석이 끝나는 지점과 노약자석이 시작되는 그 좁은 통로를 사이에 두고 세계의 기압은 급격히 변한다. 물리적인 유리벽은 없지만, 그곳에는 누구도 함부로 넘지 않는 투명한 경계선이 흐른다. 일반석 쪽은 끊임없이 쏟아지는 스마트폰의 소음과 누군가의 이어폰 너머로 새어 나오는 빠른 음악으로 소란스럽지만, 그 경계선을 넘는 순간 소리는 필터를 거친 듯 낮고 뭉툭하게 가라앉는다. 한 걸음만 내디디면 닿을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이곳과 저곳의 계절은 수십 년의 시차를 두고 완연히 어긋나 있다.


한때 팽팽한 생의 한복판을 가로질렀을 굽어진 허리들이 객차의 가장 깊은 구석으로 밀려와 앉아 있다. 그것은 자발적인 이동이라기보다 밀려남에 가까웠다. 젊은이들이 뿜어내는 찬란하고도 날카로운 기세에 떠밀려, 혹은 세상의 속도를 이기지 못한 이들이 거대한 해류에 떠밀려 섬의 가장자리에 가닿듯 그곳에 정박해 있다.


누구도 원하지 않은 이주였으나, 그들의 몸에 새겨진 굽이진 주름들은 그곳이 이제 그들이 지켜내야 할 유일한 영토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곳의 노인들은 창밖으로 흐르는 어둠을 응시하거나, 이미 지나온 역의 이름을 입안으로 가만히 되뇌곤 한다.


미용사로서 수많은 머리카락을 만지며 깨달은 것이 있다. 가위 끝에 걸리는 노년의 머리카락은 젊은이의 그것처럼 탄력 있게 튀어 오르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오래된 고서의 종이처럼 얇고 힘이 없어서, 조심스럽게 다루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것만 같았다. 염색약을 바르기 위해 두피를 만지면 수분이 다 빠져나간 마른 논바닥 같은 건조함이 손가락에 닿았다.


손님들은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보며 "이제는 아무리 공들여 깎아도 예전의 그 결이 안 나오네"라며 쓰게 웃곤 했다. 그럴 때면 나는 어떤 위로도 건네지 못한 채, 그들의 손등을 가만히 응시했다. 불거진 힘줄과 마디마디 패인 깊은 골짜기들. 그것은 단순한 노화가 아니라, 지나온 길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제 몸에 새겨둔 지도라는 것을 나는 그때 직감했다.


날 선 침묵 속에서 젊은이들이 스마트폰의 푸른빛에 눈을 맞추며 앞만 볼 때, 구석에 고인 시간들은 자신의 해진 손마디를 가만히 만지작거린다. 그들은 눈앞의 빠르게 스쳐 가는 풍경 대신, 제 손에 적힌 과거를 복기하며 속도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그 뭉툭해진 손가락 끝에 얼마나 많은 밥벌이의 고단함과 자식의 눈물을 닦아낸 흔적이 묻어있는지를 가늠해 보는 일은 숭고하기까지 했다. 그들은 더 이상 어딘가에 빠르게 가닿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 그저 지금 앉아 있는 그 자리가 흔들리지 않기를, 내일도 이 열차에 몸을 실을 수 있는 기운이 남아 있기를 바랄 뿐이다.


일반석에 앉아 비스듬히 건너편 구석을 바라보는 일은 더 이상 낯선 타인의 풍경이 아니었다. 그것은 도망칠 수 없는 나의 뒷모습을 미리 마주하는 일과 같다. 지금 내가 누리는 이 매끄러운 속도와 팽팽한 근육, 풍성한 머리칼은 잠시 빌려온 것일 뿐, 나 역시 시간이라는 외길 위에서 저 끝 칸의 구석을 향해 부지런히 이주하고 있는 중이다. 타인의 노화는 먼 나라의 불행이 아니라, 내가 반드시 도착하게 될 필연적인 정박지였다.


나 또한 언젠가는 가위를 쥐던 손목의 힘이 빠지고, 내가 쓴 문장들을 다시 읽으려 돋보기를 고쳐 쓰는 날이 올 것이다. 그때의 나는 어떤 표정으로 이 지하철의 구석을 지키고 있을까.


우리는 모두 청춘이라는 화려한 대륙을 지나 노년이라는 고요한 외곽으로 자리를 옮겨가는 여행자들이다. 이주(移住)는 단순히 공간을 옮기는 것만이 아니라, 주류에서 비주류로, 중심에서 가장자리로, 뜨거움에서 서늘함으로 자신의 무게중심을 옮기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필연적으로 외로워진다. 내가 서 있던 자리를 누군가에게 내어주고 스스로 구석을 찾아 들어가야 한다는 그 당연한 섭리를 받아들이는 일은, 세상 그 어떤 작별보다도 고독한 일이기 때문이다.


오늘 내가 일반석에서 저들을 바라보듯, 훗날 누군가는 저 구석에 앉아 있는 나의 해진 손마디를 보며 자신의 다가올 계절을 짐작할 것이다. 그리고 그때의 나 역시 지금의 저들처럼, 젊은이들의 찬란한 속도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기꺼이 창밖의 정적만을 응시하고 있을 것이다. 지하철 끝단의 비좁은 한 칸이 내가 점유한 영토의 전부가 되더라도, 그곳에서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존엄을 증명하고 싶다. 닳아버린 구두 굽과 거칠어진 손마디는 부끄러움이 아니라, 한 생애를 온몸으로 통과해 왔다는 정직한 훈장임을 잊지 않으면서 말이다.


결국 우리 중 누구도 이 거대한 이주에서 제외될 수는 없다. 삶은 결국 가장자리로 밀려나는 과정이 아니라, 비로소 고요하게 정착할 자신만의 영토를 찾아가는 기나긴 여정이다. 열차가 멈추고 문이 열린다. 승강장으로 내려서는 굽은 등을 향해 나는 마음속으로 조용한 인사를 건넨다. 당신이 도착한 그곳이 훗날 나의 정박지와 크게 다르지 않기를 바라며, 그 시린 외로움 속에서도 당신의 손등에 새겨진 지도가 여전히 선명하기를 바라며.


열차는 다시 속도를 내고, 나는 아직 오지 않은 나의 정박지를 향해 오늘의 여행을 계속한다. 기차의 끝단, 그 투명한 경계선 너머의 풍경이 더 이상 차갑게만 느껴지지 않는 것은, 나 역시 그 길 위에 선 같은 운명의 이주민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모두 같은 방향으로 흐르고 있고, 그 끝에 기다리는 정적은 우리 모두가 공평하게 나누어 가질 마지막 위로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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