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계절을 기다려준 이의 서체

09. 종이의 이면

by 김민경


종이의 이면


부고도 아닌데

흰 봉투가 왔다.


생애 단 한 번뿐인 고백이

기한이 정해진 고지서로 도착했다.


축복이라는 문구 아래

가지런히 놓인 무례함.


봉투를 열면

당신의 계절이 쏟아질까

서둘러 우편함에 가을을 버린다.


낙엽은 밟으면 소리라도 나건만,

나는 당신의 잔치에 갈 수가 없다.



-




비워내지 못한 계절은 종종 짐이 된다. 나무가 겨울을 나기 위해 제 몸의 옷을 미련 없이 벗어내듯, 사람의 삶에도 ‘낙하’의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버리지 못한 관계들이 쌓여 내 삶의 입구는 언제나 소란스러웠다.


우편함 입구가 꽉 막혀 더 이상 종이가 들어가지 않을 때, 사람들은 그것을 풍요가 아니라 방치라고 부른다. 내 삶에 너무 많은 타인을 방치하느라 정작 나만의 침묵이 들어올 틈을 잃었다. 흰 봉투를 버리는 것은 그 비좁은 입구에 숨구멍을 내는 일이다. 잉크 냄새가 진동하는 타인의 소식들 너머,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깨끗한 공기를 들이마시고 싶었다.


이것은 비단 우편함만의 문제가 아니다. 내 마음의 저장 용량은 이미 오래전에 한계치에 도달해 있었다. 미용사로 일하던 시절, 내 손을 거쳐 간 수백 명의 고객과 수십 명의 동료. 스마트폰 화면 위로 쉴 새 없이 떠오르는 붉은 숫자들, 지워도 지워도 다시 쌓이는 광고 같은 안부들.


정작 소중한 기억을 담아야 할 자리는 기한이 정해진 초대와 답장해야 할 의무들로 가득 차, 나의 시스템은 수시로 멈춰 서곤 했다. 모든 연결이 능력이라 추앙받는 세상에서, 나의 삶은 그 과잉된 연결의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매일 비명을 지르며 멈춰 서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수많은 연결은 신기루처럼 가벼웠다. 우울증이 깊어져 더 이상 가위를 잡을 수 없게 되었을 때, 나는 도망치듯 일터를 떠났다. 그리고 거짓말 같은 정적이 찾아왔다. 매일 아침 안부를 묻고 농담을 주고받던 동료들 중, 그 누구도 나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잘 지내느냐는 사소한 문자 한 통 없었다.


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니었다. 우리는 '일'이라는 종이 한 장을 사이에 둔 관계였고, 그 종이가 찢어지는 순간 서로의 영역은 타인이 되었다. 그러나 그 명백한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은 차가운 우체통 바닥에 손을 집어넣는 것처럼 시렸다.


어느 날, 십수 년간 침묵하던 이름 하나가 스마트폰 화면 위에 떠올랐다. 반가움이 스칠 틈도 없이 도착한 것은 다정한 회포가 아닌 그의 청첩장이었다. 그 붉은 숫자 앞에서 나는 당혹스러운 부채감에 사로잡혔다. 그에게 내어줄 적당한 마음의 거리가 얼마인지, 이제는 희미해진 관계의 성의를 어디까지 증명해야 하는지를 가늠하며 보내는 며칠 동안, 나는 우리가 공유했던 유년의 기억마저 그 종이 한 장에 저당 잡힌 것 같은 지독한 실망감을 느꼈다.


단 한 번의 진심 어린 안부도 없이 필요의 순간에만 나를 목록에서 호출하는 행위는, 관계에서 가장 잔인한 감정의 소모였다. 그것은 연결이 아니라 침범이었고, 축복이라는 문구 아래 놓인 노골적인 무례함이었다.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모든 이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다는 선의가, '가짜 연결'에 나를 무방비하게 노출시키고 있었다는 것을.


사실 모든 고지서가 불필요한 것은 아니다. 반드시 확인해야 하는 삶의 연체료가 있고, 놓쳐서는 안 될 생의 중요한 신호들도 섞여 있다. 문제는 그 ‘절박한 신호’들이 무분별하게 날아오는 불필요한 고지서들과 뒤섞여 버릴 때 발생한다. 기어이 자신의 목적을 전달하고야 마는 가벼운 관계들. 안부라는 허울을 빌려 자신의 필요를 나에게 투척하는 행위는, 연결이라기보다 일방적인 통보에 가깝다.


그 질량 없는 요구의 더미 속에서 나는 매일 파지(破紙)를 헤치듯 위태로운 수색을 이어갔다. 나를 수단으로 삼는 수많은 소음 사이에서, 오로지 나의 안부만을 궁금해하는 단 한 줄의 진심을 건져 올리기 위해서다. 내 삶에 들어온 타인의 용건들이 많아질수록, 정작 내가 마땅히 응답해야 할 다정한 목소리는 소음 속에 휘말려 자꾸만 작아졌다.


가벼운 관계들에 이토록 마음을 앓았던 건, 결국 내 삶의 주권을 타인의 목적지에 내어주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나의 안부를 묻는 척하며 실은 자신의 필요를 내 집 마당에 던져두고 떠났다. 나는 그것이 무례인 줄 알면서도 예의라는 이름으로 묵묵히 치워내곤 했다.


나를 타인의 목적지에 방치하는 일, 그것은 가장 먼저 챙겼어야 할 나 자신을 맨 뒷줄에 세워두는 미안한 일이었다. 정작 내가 사랑하는 이들의 낮은 숨소리를 돌볼 기력마저 그 무의미한 노동에 다 써버리고 나서야, 내가 무엇을 잃어왔는지 알게 되었다.


물론 그 봉투들에 담긴 마음들이 모두 불순할 리 없다는 것을 안다. 누군가는 떨리는 손으로 명단을 정리했을 것이고, 누군가는 잊고 싶지 않은 진심을 담아 내 이름을 적었을 것이다. 그들은 그저 각자의 생에서 가장 빛나는 계절을 지나며, 성실하게 자신의 소식을 전했을 뿐이다. 세상이 말하는 예의와 축복의 문법에 충실하게 말이다.


다만 비극은 그들의 빛나는 계절과 나의 무너진 계절이 만나는 지점에서 발생한다. 의도가 어떠했든, 받아낼 용량이 바닥난 나에게 그 정중한 안부들은 소화되지 못한 채 자꾸만 체기가 되어 얹혔다. 상대가 내 마당에 던져두고 간 것이 아름다운 꽃다발일지라도, 그것을 받아 들고 웃어줄 기력조차 없는 사람에겐 그 향기마저 무거운 짐이 된다는 사실을 그들은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그저 우리가 서로 다른 계절을 살고 있다는, 속수무책인 시차의 문제였을 뿐이다.


우편함을 꽉 채우고 있던 흰 봉투들을 하나씩 걷어낸다. 요란한 소동을 다 치우고 난 우편함 바닥은 생각보다 차갑고 고요했다. 모두가 떠들썩한 잔치로 나를 초대할 때, 나를 진심으로 아끼는 이들은 내 우편함에 아무것도 집어넣지 않았다. 그들은 나의 계절이 어디쯤 지나가고 있는지, 지금 내가 어떤 소음을 견디고 있는지 묵묵히 지켜보며 자리를 지켰다.


화려한 수식어도, 기한이 정해진 요구도 없이 그저 내 옆의 공백을 함께 채워주던 사람.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내 무너진 계절을 함께 앓아준 이는 말이 없었다. 그 대답 없는 동행이 소음이 사라진 자리에 그제야 선명하게 와닿았다.


종이의 이면에 숨겨져 있던 여백은 내가 쉴 수 있는 배려의 결과물이었다. 진심은 때로 무언가를 건네는 행위가 아니라, 상대가 숨 쉴 자리를 위해 곁을 내어주는 마음에서 온다. 나는 이제 내 우편함을 꽉 채우고 있던 파지들을 기꺼이 비워낸다.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기를 포기하는 대신, 내 곁의 낮은 숨소리에 귀를 기울일 여백을 만든다. 삶의 입구가 비워지자 비로소 차갑고 맑은 공기가 스며든다. 이제는 안다. 관계의 깊이는 종이의 두께나 숫자의 크기에 있지 않다는 것을.


소음이 걷힌 자리에 남은, 내 곁을 지키는 말 없는 온기. 그것이면 충분하다. 나는 이제 그 고요를 길잡이 삼아, 다시는 나를 타인의 목적지에 방치하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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