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기다림의 부피
기다림의 부피
접힌 귀, 나를 읽어내는 눈.
검은 코, 마주치면 파동을 그리는 꼬리.
서로의 생이 교차하기까지
우리는 얼마나 먼 길을 돌아왔을까.
그 짧고도 긴 사이에서
너는 언제나 나를 기다렸고,
나는 그 기다림으로 하루를 건너왔다.
내 곁에서 고르는 낮은 숨소리.
나는 그 고요 속에서
언젠가 닥칠 이별의 무게를 느낀다.
이제는 내가 너의 잠을 지킨다.
느려진 네 발걸음에 보폭을 맞추며,
서로의 계절을 나누어 갖는다.
모든 것이 나를 살게 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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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그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결정한다. 반려견에게 ‘동동’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특별한 뜻을 담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처음 마주한 날, 짧은 다리로 거실을 동동거리며 걷던 그 서툰 발걸음이 그대로 이름이 되었다. 이름이 붙여진 순간부터 녀석은 내 삶의 배경에서 벗어나 하나의 구체적인 움직임이 되었다. 어떤 정의를 내리지 않아도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 마음 어딘가 녀석의 걸음처럼 동동거리며 흔들리는 것, 그것이 이 사소한 이름이 가진 힘이다.
한때 바닥에 바짝 붙은 채 주춤거리던 녀석의 낮은 보폭은, 사실 녀석이 감당해온 거대한 공백의 크기였을지도 모른다. 모두가 가족을 찾아 떠나던 어느 명절날, 아파트 단지의 차가운 바닥에서 녀석을 처음 만났다. 가장 풍요로워야 할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가장 무거운 유기의 순간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녀석은 어린 몸으로 겪어내고 있었다.
그때 녀석이 적막 속에서 견뎠을 기다림은, 자신이 버려진 줄도 모른 채 익숙한 냄새가 돌아오기만을 바라며 제자리를 지키던 끝없는 외로움이었다. 돌아오지 않을 이를 기약 없이 기다리던 절망적인 시간은, 이제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반드시 완성될 것을 아는 평온한 기다림이 되었다. 녀석은 이제 살아남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시 만날 나를 확신하며 기꺼이 제 몫의 시간을 비워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내 마음은 이미 문 너머의 시간을 앞지른다. 현관문에 채 닿기도 전, 안쪽에서는 벌써 ‘탁, 탁, 탁’ 소리가 시작된다. 아직 문은 굳게 닫혀 있는데, 녀석은 발톱이 장판에 닿는 마찰음만으로 제 몸을 흔들어 반가움을 예보하고 있다. 기척에 마음이 급해져 서둘러 번호키를 누른다. 녀석이 홀로 지켜온 고요 속으로 얼른 섞여 들어가고 싶은 마음에 짧은 신호음이 울리는 그 찰나조차 평소보다 길게 느껴진다.
문을 열면 밖에서 묻어온 서늘한 공기가 녀석의 눅눅한 온기와 뒤섞인다. 어둠 속에 가만히 멈춰 서 있으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꼬리가 바닥을 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녀석의 거친 숨소리가 공기 중에 파동을 만든다.
불 꺼진 거실에서 유독 눈에 띄는 건 소파 한 구석, 녀석의 무게만큼 낮게 가라앉은 쿠션의 굴곡이다. 내가 없는 동안 그 오목한 틈에 몸을 구겨 넣고 시간을 견뎠을 것이다. 아직 온기가 가시지 않은 소파의 패인 자리를 가만히 쓸어본다. 녀석의 웅크림이 머물다 간 자리는 내가 비운 자리를 메우려 애쓴 작은 흔적 중 하나다.
나의 사랑은 녀석이 남긴 부스러기들을 뒤처리하는 사소하고 번거로운 소음들로 채워진다. 매일 산책을 하고, 엉킨 털을 빗겨내며, 바닥 구석에 굴러다니는 털 뭉치들을 주워 담는 일 같은 것들. 빗질 한 번에 공중으로 흩날리는 솜털들은 녀석이 집에서 보낸 시간의 조각들이다. 한데 모아봐야 손바닥 위에서 아무런 무게도 느껴지지 않는 이 가벼운 털 뭉치들을 보며, 우리가 함께 통과해 온 계절의 부피를 짐작해 볼 뿐이다.
동동이가 내게 건네는 사랑의 형상은 조금 다르다. 말이 없는 존재와 산다는 것은 마음의 가장 밑바닥을 가감 없이 내보이는 일이다. 세상의 무례한 말들에 치여 돌아온 밤, 몰래 눈물을 훔치고 있으면 동동이는 소리 없이 주위를 맴돈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나의 슬픔을 관찰하던 녀석은, 내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을 때 비로소 뺨에 젖은 코를 갖다 댄다. 눈물이 흐르는 길목을 따라 조용히 혀를 내밀어 그것을 핥아내는 행위. 어쩌면 이것은 말이 없는 존재가 타인에게 건넬 수 있는 가장 지극한 사랑의 방식일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동물을 거두는 일을 동정을 베푸는 일이라 부르기도 하지만, 실은 그 작은 생명이 나를 구원한 것에 가깝다. 내가 녀석을 살린 것이 아니라, 도리어 녀석이 나를 살게 했다. 벼랑 끝 같던 시간 속에서 무너진 내 삶의 지지대를 다시 세운 건 매일 아침 내 손가락 사이를 파고드는 녀석의 눅눅한 콧등이었다. 동동이는 나를 살렸고, 나는 그의 늙어감을 견디며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완성해 가고 있었다.
인간의 위로가 종종 불필요한 언어를 보태어 상처를 덧나게 한다면, 동동이의 위로는 오직 침묵과 온기라는 본질에 충실하다. "괜찮아"라는 값싼 말도, 이유를 묻는 피로한 질문도 없다. 그저 내 안의 소란이 잦아들 때까지 자신의 곁을 기꺼이 내어줄 뿐이다. 버려졌던 과거를 가진 작은 생명이 오히려 타인의 생을 보듬는다는 역설이, 묵묵한 온기가 되어 나의 패인 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하지만 봄의 채도가 높아질수록 녀석의 시간은 자꾸만 투명해진다. 거실을 동동거리며 가로지르던 생동감은 이제 깊은 잠 속에서 가느다랗게 떨리는 숨소리로 남았다. 쌕쌕거리는 낮은 기척을 들으며 잠든 녀석의 등을 가만히 바라볼 때, 이별의 예감은 예고 없이 발등 위로 떨어진다. 녀석의 시계가 나보다 훨씬 빠르게 흐른다는 자명한 사실이 마음을 울렁거리게 한다.
어떤 진심은 눈동자 하나로 전해지며, 어떤 위로는 소리 없이 도착한다. 녀석은 서두르는 법이 없다. 그저 지금 이 순간 내 발치에 머물며 자신의 존재를 온기로 증명할 뿐이다. 이별의 그림자가 두렵다고 해서 지금의 온기를 덜어낼 수는 없다. 따뜻함은 본래 잠시 머물다 가는 것이며, 그 유한함 때문에 존재는 비로소 소중해진다.
사라질 것을 알면서도 온 마음을 다해 머무는 것. 그것이 동동이가 가르쳐준, 부피를 가늠할 수 없는 유일한 사랑의 형태였다.
현관문을 열 때마다 들려오던 그 조급한 발소리는 이제 조금씩 느려지겠지만, 우리가 서로를 향해 내어준 기다림의 부피만큼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밖은 여전히 소란스럽고 계절이 정신없이 옷을 갈아입어도 이 방 안에서만큼은 녀석의 온기가 만드는 고요한 숨소리에 나를 맡기고 싶다. 녀석이 내 눈물을 핥아주었듯, 나 또한 녀석의 느려진 시간 틈에 나의 속도를 기꺼이 포개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