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이 감정의 이름을 나는 아직 모른다

by 김민경



우리는 많은 것에 너무 빨리 이름을 붙인다. 태어나자마자 성씨 뒤에 두 글자의 함자가 붙고, 상태에 따라 ‘학생’이나 ‘직장인’같은 사회적 명칭이 따라 붙는다. 마음조차 예외는 아니다. 얼굴이 조금 붉어지면 기쁨이라 하고, 눈시울이 뜨거워지면 슬픔이라 정의한다. 하지만 언어는 언제나 마음보다 한 발 늦고, 그 그릇은 마음의 부피를 담아내기에 늘 비좁다. 단어라는 껍데기 아래에서 요동치는, 이름 붙지 못한 무수한 마음의 파편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나는 그 정체 모를 덩어리들을 ‘이름 없는 감정’이라 부르기로 했다. 정의하지 않음으로써 비로소 온전해 지는 것들에 대하여.


내게 가장 거대한 ‘이름 없는 방’이 생긴 것은 할머니의 죽음 이후였다.


할머니는 내 어린 시절의 전부였다. 부모님이 맞벌이로 바쁘던 시절, 나를 업어키우고 당신의 가슴팍을 내어주던 분이었다. 그러나 부모님의 이혼이라는 급류는 어린 나를 할머니의 품에서 강제로 떼어놓았다. 가정의 불화와 어른들의 사정이라는 복잡한 문장들 사이에서 ‘할머니’라는 단어는 점점 잊혀갔다. 나는 그렇게 가장 사랑하던 세계와 작별인사도 없이 단절되었다. 십수 년의 세월동안 할머니는 내게 기억의 저편에 놓인, 희미하게 풍화된 조각상 같은 존재였다.


성인이 되어 다시 만나게 된 할머니는 내가 기억하던 거대한 산이 아니었다. 주름진 손은 나뭇가지처럼 가늘었고, 나를 보며 흘리던 눈물은 얼마나 쏟아냈는지 뺨에 메마른 자국이 남았다. 할머니는 나를 만날 때면 과거의 파편들을 하나씩 꺼내어 놓으셨다. 내가 얼마나 예뻤는지, 얼마나 그리웠는지, 그리고 미안했다는 말을 반복했다.


하지만 그 절절한 고백 앞에서 나는 자주 길을 잃었다. 내 안에는 분명 할머니를 향한 그리움이 있었지만, 그 위로 공백이 덧칠해놓은 낯섦과 원망, 그리고 이제야 다시 만났다는 안도감이 뒤섞여 있었다. 할머니가 눈물을 흘릴 때, 나는 그 손을 잡아야 할지, 아니면 그저 바라봐야 할지 몰라 망설였다. 그 마음은 ‘애틋함’이라는 예쁜 단어 하나로 포장하기에는 너무나도 울퉁불퉁하고 투박한 질감이었다. 우리는 서로를 사랑했지만, 서로의 공백을 어떻게 매워야 할지 모르는 채로 몇 년의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작별의 말도 없이 그 끝이 찾아왔다.


코로나가 창궐하던 시기였다. 병원의 문은 굳게 닫혔고, 면회는커녕 마지막 숨소리조차 들을 수 없었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온 할머니의 부재 소식은 이상할 정도로 실감이 나지 않았다. 누군가의 마지막을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보다, 그 마지막이 ‘전화 한 통’으로 요약되었다는 사실이 나를 더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장례식장에 도착해 친척들과 인사를 나눌때까지도 나는 내가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없었다. 국화꽃이 놓여있는 제단 위에 놓인 할머니의 영정 사진은 생전의 눈물 젖은 모습과는 달리 너무나 평온했다. 마치 그 모든 공백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분향을 하고 절을 올리며 나는 내 안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자, 이제 슬퍼해야 할 시간이야.’ 머리는 그렇게 명령하고 있었지만, 가슴은 기묘할 정도로 평온했다. 눈물은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데, 그것이 상실에 대한 순수한 슬픔인지, 아니면 마지막을 지키지 못한 자책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나는 마치 그 자리에 서 있는 나 자신을 멀리서 바라보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향이 타들어 가며 내는 가느다란 연기와 냄새, 조문객들의 웅성거림은 선명하게 느껴지는데, 정작 내 마음의 중심은 텅 빈 채 고요했다.


장례식장 식당에 앉아 육개장을 한 술 떴을 때, 건너편에서는 친척들의 낮은 웃음소리가 들려왔고, 술병이 빈 잔을 채우는 매끄러운 소리와 젓가락이 그릇에 부딪히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울렸다. 삶과 죽음이 종이 한 장 차이로 붙어있는 그 공간에서,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지금 슬픈건가?’


슬픔이라는 단어는 그날 내가 느낀 감정의 가장자리조차 다 훑지 못했다. 사진 속 할머니의 낯선 표정을 가만히 응시하다가, 문득 이제 할머니가 더는 아프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나를 발견했다. 그 찰나의 안도감이 비겁하게 느껴져 고개를 숙이면,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공백이 등 뒤를 짓눌렀다. 그 모든 것이 한데 섞여 나를 집어삼길 때, 사람들은 그저 그것을 ‘상주의 슬픔’이라 명명하고 나를 위로했다. 나는 그 위로를 받으며 이름 없는 마음들을 속으로 꾹꾹 눌러 담아야 했다. 단어로 정의되지 못한 내 진심이 어디에도 발붙이지 못할까 봐 겁이 났다.


그날 이후로 나는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일을 멈췄다.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어쩌면 이해하기 위함이 아니라, 감당할 수 있는 크기로 줄이기 위한 방식일지도 모른다. ‘우울’이라 명명하는 순간 그 감정은 치료해야 할 대상이 되고, ‘분노’라 부르는 순간 그것은 해소해야 할 숙제가 된다. 하지만 이름 붙지 않은 감정은 그 자체로 나의 일부가 되어 내 안에 머문다. 그것은 때로 창틀에 맺힌 차가운 이슬의 촉각으로, 때로는 해 질 녘 거실에 길게 늘어진 그림자의 농도로 나타난다.


할머니의 죽음이 남긴 그 정체 모를 마음을 나는 여전히 품고 산다. 그것을 억지로 ‘그리움’이나 ‘회한’의 칸에 밀어넣지 않는다. 비가 오는 날 문득 코끝을 스치는 흙내음에서 할머니의 낡은 집 방안의 냄새를 맡을 때, 혹은 길을 걷다 우연히 마주친 노인의 뒷모습에서 익숙한 구부정함을 발견할 때, 내 안의 그 이름 없는 방은 조용히 문을 연다. 그 방 안에는 여전히 미처 전하지 못한 말들과, 할머니가 끝내 쏟아내지 못한 눈물들이 뒤섞여 출렁이고 있다.


이 글은 바로 그 방에 대한 기록이다. 설명하려 할수록 멀어지고, 이해하려 할수록 어긋나던 마음들의 흔적이다. 나는 사람들에게 “당신의 감정을 정의하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오히려 당신이 느끼는 그 모호하고 불쾌하며, 때로는 황홀할 정도로 낯선 그 기분들에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이름을 모른다는 것은, 아직 그 마음과 헤어질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나는 오늘도 내 안의 수많은 익명의 마음들과 나란히 앉아 있다. 그저 이름 없는 채로 흐르는 내면의 강물에 가만히 손을 담가보는 일. 어디로든 흐를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그 막막한 자유를, 나는 이제 두려워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이 감정의 이름을 아직 모른다. 그리고 아마, 영원히 모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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