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감정은 왜 하나로 설명되지 않을까

by 김민경



마음은 고체보다 액체에 가깝다. 단단하게 굳어 있어 명확한 모양을 가진 것이 아니라, 담기는 그릇과 흐르는 속도에 따라 매번 형질을 바꾼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감정을 단 하나의 단어로 표현하려다 실패한다. 누군가 “기분 어때?”라고 물어오면 슬프다, 기쁘다, 혹은 그냥 그렇다고 골라 대답하곤 한다. 마치 그 안에 지금의 나를 모두 담을 수 있는 것처럼. 하지만 그 짧은 단어가 입술 밖으로 나오기까지 우리 안에서는 단어 하나로 정할 수 없는 무수한 맥락이 요동치고 있다.


감정은 왜 단 하나의 명사로 설명되지 않을까. 그것은 인간의 내면이 일정한 선이 아니라 입체적인 층위로 이루어진 탓일 것이다. 하나의 사건이 마음의 수면을 때리면, 그 파동은 기억의 밑바닥까지 내려가 잠들어 있던 수많은 감각을 깨운다. 우리가 느끼는 실제의 감정은 원색이라기보다는 여러 색이 뒤섞인 얼룩에 가깝다. 선명한 빨강도, 투명한 파랑도 아닌, 그 사이 어디쯤에 머물러 있는 이름 모를 색들이야말로 우리가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진짜 얼굴이다.


얼마 전, 연재 중이던 ‘조언의 민낯’ 글로 발간 제의 메일을 받았다. 누군가에게는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일 것이고, 객관적으로 보더라도 분명 ‘기쁜 일’이었다. 가족에게 이 소식을 전달했을 때, 약속이라도 한 듯 축하의 말을 건넸다. “정말 잘됐다.” 그들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내 마음의 풍경은 그들의 기대만큼 화창하지만은 않았다. 쏟아지는 축하의 말들은 내 마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겉돌았다.


메일을 받고 고민하던 며칠 동안의 순간, 짧은 환희가 스쳐 지나간 뒤를 이은 것은 형용할 수 없는 무게감이었다. 내가 쌓아온 글이 누군가의 시선 앞에 발가벗겨진다는 두려움, 그리고 이제는 내 글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압박감이 함께 밀려왔다. 기쁨이라는 단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긴장감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잘 해내야 한다는 다짐은 뭉그러지면 안 된다는 경고가 되어 귓가를 맴돌았다.


이 순간 내가 느낀 감정을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기쁨일까, 아니면 공포일까, 정말 하나의 이름으로 묶을 수 있는 종류의 것이긴 할까. 분명한 것은 ‘축하’라는 보편적인 언어로는 이 내밀한 소란함을 조금도 담아낼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가장 뜨거운 포옹 속에서 아쉬운 이별을 예감하는 것이 인간의 마음인 것처럼, 사건이 가져온 다양한 감정들은 결코 차례대로 찾아오는 손님이 아님을 말해준다.


감정이 단어로 정의되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우리 각자가 가진 개별적인 서사, 즉 맥락 때문이다. 언어는 보편적이지만 경험은 지극히 사적이다. 우리가 쓰는 단어들은 소통을 위해 매끄럽게 다듬어졌다. 그러나 그 단어가 내려앉는 개인의 내면은 저마다 다른 지형을 가진다. 누군가에게 ‘안정’이라는 말은 따뜻한 집의 온기를 떠올리게 하지만, 결핍을 통과해 온 누군가에게 그것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담장 위를 걷는 듯한 긴장과 압박으로 다가온다.


같은 언어를 쓰면서도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단어 아래에는 각자의 경험이 겹겹이 쌓여 있고, 그 경험은 같은 말도 전혀 다른 감정으로 바꿔 놓는다.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는 말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불안을 남기는 것처럼.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다르게 느끼며 살아간다.


이 차이는 관계 속에서 필연적인 오해를 낳는다. 동일한 음절을 공유하면서도 각자가 떠올리는 장면은 조금씩 다르기에, 나의 진심이 타인에게는 가벼운 위로 혹은 서운한 참견으로 도착하곤 한다. 우리는 종종 이해받지 못했다는 사실에 상처 입지만, 그것은 누군가의 부족함 때문이라기보다 서로 다른 시간과 경험이 만들어낸 자연스러운 간극에 가깝다. 우리는 각자의 문맥 안에 살며, 서로의 언어라는 외벽을 더듬으며 살아갈 뿐이다.


나를 당혹스럽게 만드는 건 타인의 시선보다도, 정작 나 자신조차 지금 내 기분이 무엇인지 한마디로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분명 마음속에 무언가 꽉 차 있는데 그것을 끄집어낼 적당한 이름을 찾지 못한다. 기쁜 것 같으면서도 명치끝이 무겁고,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돌연 도망치고 싶은 기분. 이런 상태를 마주할 때면 우리는 스스로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불안해지기도 한다. 왜 남들처럼 즐거워하거나 슬퍼하지 못하는지 스스로를 다그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내 안의 압박감이나 긴장을 억지로 ‘기쁨’이라는 단어로 바꿔낼 필요는 없다. 설명되지 않는 마음은 그저 설명되지 않는 상태 그대로 두면 된다. 발간 제의를 받은 날 내가 느꼈던 그 무거운 기분은 기쁨의 결핍이 아니라, 내가 써온 글들과 내 삶의 맥락들을 그만큼 무겁게 대하고 있다는 정직한 반응이었을 뿐이다. 잘 닦인 단어가 매끄러운 표면을 가졌다면, 내 안의 이름 없는 속사정들은 투박한 질감을 가진 채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명확하게 정의되는 감정은 명료할지는 몰라도, 삶의 구체적인 부피를 다 담아내지는 못하는 법이다.


책상 위에 앉아 그 무게를 응시하다 문득 떠올랐다. 나를 잠 못 들게 했던 그 수많은 감정의 소란은, 결국 내게 주어진 이 상황과 내 곁의 존재들을 가벼이 여길 수 없다는 애정에서 기인했다는 것을. 소중하지 않은 것에는 공포가 깃들지 않고, 지키고 싶지 않은 것 앞에서 압박감을 느낄 이유도 없다. 기쁨과 긴장이, 환희와 두려움이 한데 뒤섞여 명치를 묵직하게 누르던 그 모든 순간은 내가 마주한 이 순간이 나를 뒤흔들 만큼 소중하다는 물증이었다.


결국 감정이 하나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건, 내 마음이 그만큼 단순하지 않다는 뜻이다. 굳이 밝은 색으로 포장하지 않아도, 이름 붙일 수 없는 이 소란스러운 상태 그대로가 나의 진짜 얼굴이다. 나는 이제 내 기분을 묻는 말 앞에 선뜻 대답을 내놓는 대신, 마음에 내려앉은 그 모호한 무게를 온전히 느껴본다. 정답이 없는 감정들을 억지로 정리하지 않고 그저 안고 가는 것. 그것이 내 마음을 이해하는 하나의 방식일지도 모른다.


이제야 내 안의 소란스러움을 기쁘게 받아들인다. 이름 없는 감정들이 서성이는 소리를 들으며, 내 삶에 진심을 다하고 있다고 믿는다. 굳이 마침표를 찍지 않아도 괜찮다. 이 모호하고도 벅찬 무게가 또 다른 과정을 향해 가는 것임을 알기에.

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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