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가 나를 방해하나?
아주 오래 꿈꿔왔던 순간은 뭔가 다를 줄 알았다. 하지만 출국을 준비하는 하루하루는 평소에 여행을 준비하는 날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여전히 짐 싸기는 귀찮고 막상 떠나려니 조금 머뭇거리게 되었다는 말이다. 가져가야 할 물건들 리스트는 진작 만들어 두었지만 정작 제대로 짐을 싸기 시작한 건 사나흘 전이었다. 압축팩으로 옷을 꾸역꾸역 압축하고, 리스트를 백 번도 넘게 들여다보며 정말 필요한 것만 빼고는 캐리어에서 꺼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추리고 추려도 터질 것 같은 캐리어 두 개와 백 팩 하나가 남았으니까.
나쁜 일은 짐을 다 싸고 출국만을 기다리던 출국 삼 일 전부터 시작되었다. 일 년 동안 탁묘를 맡기기로 한 고양이 목욕을 시키다가 미끄러져버린 것이다. 안 그래도 어깨가 안 좋아서 치료를 꽤 오래 받았었는데 물기에 미끄러져 어깨를 삐어버렸다. 캐리어는 무슨 고양이도 들 수 없을 만큼 통증이 심했다. 하필이면 연휴 끝나고 바로 떠나는 비행기 표를 사둔 탓에 병원은 출국 하루 전에나 겨우 갈 수 있는 상황. 어이없고 화가 났고 불안했지만, 심하게 다쳤다면 심하게 다친 걸까? 고민할 겨를도 없이 아팠을 거란 생각을 하면서 마음을 달랬다. 다행히도 출국 하루 전 찾은 병원에서 단순 염좌 처방을 받았다.
출국 이틀 전, 탁묘처에 고양이를 맡기러 갔다. 내 고양이는 아무것도 모르고 나는 아무것도 설명할 수가 없다는 것이 너무 야속했다. 죄책감도 밀려왔다. 출국을 결정하면서 각오한 일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엄마가 조금 울어서 나는 울지 않았다.
대망의 출국날, 우리 고양이가 밤새 울었단 연락을 받았다. 탁묘를 못 할 수도 있겠다는 말과 함께. 적응 기간에 많이 울 거라고 예상하긴 했지만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는 정도였던 것이고, 그 짧은 메시지가 나를 뒤흔들었다. 목이 쉬도록 울었을 내 새끼도 걱정되고 탁묘가 취소되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 혼란스러웠다. 나는 어깨를 다치고 내 고양이는 목이 쉬어라 울고 엄마의 건강도 걱정되고, 이 정도면 나 캐나다 가지 말라고 우주가 말리나? 여러모로 무리해서 나가는 것이 맞았기에 갑자기 불안해졌다. 불안함이 치솟으면 이미 예상했던 변수에도 흔들리게 된다. 누가 보면 억지로 출국하는 사람처럼 나는 공항에 가는 내내 울었다.
조금 더 고민했다면, 조금 더 막무가내가 아니었다면, 조금 덜 촉박했다면 어쩌면 포기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뭐 어떡하겠어. 당장 비행기표는 물론이고 며칠 간의 에어비앤비와 한 달의 단기 숙소까지 다 결제해뒀고, 당장 데리고 가야 할 해외 입양견 두 마리도 나에게 달려있었는데. 캐나다행을 결심했던 마음으로 목적 없는 목적을 떠올리면서 눈 앞의 일만 해결하자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그렇게 심란한 마음으로 비행을 마치고, 비자를 받고 강아지들도 인계하고 임시 숙소로 향하는 길. 북미는 여행으로도 와 본 적이 없어서 신기한 마음에 잔뜩 지친 와중에도 바깥 풍경을 눈에 담았다.
내가 일 년 동안 지낼 곳, 밴쿠버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