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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하 Oct 07. 2016

길바닥에 나앉을 뻔했던 잘츠부르크

숙소 예약할 때 날짜를 꼭 제대로 확인합시다..

네 번째 도시 잘츠부르크. 

프라하에서 체스키 크룸로프로 넘어가고, 체스키에서 잘츠부르크로 넘어가는 일정이었다. 잘츠부르크를 베이스캠프 삼아 잘츠캄머굿과 독일의 베르히테스가덴을 다녀올 생각이었다. 


그러나 계획은 역시 어그러지기 마련. 체스키에 도착한 순간부터 한국 장마 같은 장대비가 쏟아지더니 결국 잘츠부르크로 떠나기 직전에야 겨우 멈췄다. 당일치기라 인포메이션 센터에 캐리어를 맡겨야 했는데, 비는 미친 듯이 내리고, 돌바닥은 프라하보다 심각해서 도저히 캐리어를 끌 수가 없어 들고 내려가야 했다. 겨우겨우 도착한 인포메이션 센터는 하필 또 점심시간ㅋ 


체스키 구경은 단념하고, 그냥 쉬기로 했다. 한 번 더 캐리어를 끌고(거의 들고) 가까운 음식점으로 들어가 느긋하게 밥을 먹었다. 밥을 먹고는 다시 옆 디저트 가게로 쏙 들어가 디저트를 먹었다. 빗소리를 들으며 일기를 쓰고 정산을 하고 수다를 떨며 체스키에 할당한 하루를 보냈다. 정말 정말 아름다운 곳이라는 얘기를 많이 들어 많이 기대했던 곳이지만, 꽤 괜찮은 카페에서 꽤 맛있는 디저트를 먹으며 쉬다 보니 이런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 한 장 안 남았지만 :)




그리고 빈셔틀을 타고 세네 시간 달려 도착한 잘츠부르크에서는 이번 여행 최대의 실수를 저질렀다. 그 고생을 하며 힘겹게 도착했건만 숙소에 예약 내역이 없다고. 뭐라고..? 


여행 떠나기 직전에 정신없이 숙소를 바꾸는 바람에 날짜를 하루 미뤄 예약했던 것이다. 머릿속이 새카매지는 기분으로 호텔 직원이 준 와이파이로 다른 숙소를 급히 예약했다. 꽤 성수기라 남은 숙소가 없을까 봐 조마조마했다. 진짜 길바닥에서 자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고.


다행히 방은 있었다. 엄청 비쌌지만. 또 다행히도 그때 혼자가 아니었고,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전부 친절했고, 거리도 깔끔하고 안전했다. 만약 나 혼자, 로마 같은 도시에서 이런 일을 겪었으면 어땠을까. 뭐 어떻게든 방법을 찾았겠지만, 아찔하다.


새로 잡은 방에 들어오자마자 긴장이 풀려 눈물이 났고, 온몸에 힘이 다 빠졌다. 좀 쉬기로 하고, 꽤 빡세게 잡아두었던 일정을 바꿨다. 베르히테스가덴 안녕, 쾨니히 호수 안녕. 다음에 또 볼 일이 있겠지.... 샤프베르크 산악열차 일정만 살리고, 잘츠부르크에서는 그냥 요양하기로 결정.



그날 푹 자고, 다음날 느지막이 샤프베르크 산악열차를 타러 갔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잘츠부르크 풍경으로 멘붕 치유




고니. 실은 꽤 사납다고 해서 가까이 가진 않았다.




잘츠부르크에서 샤프베르크 산악열차를 타러 가는 방법은 버스와 유람선 두 가지가 있었다. 좀 더 비쌌지만 당연히 유람선 선택. 잘츠부르크 최고의 선택이었지, 암.



역시 자연이구나, 언젠가는 이런 곳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하며 넋 놓고 산과 호수를 바라보았다. 부자들의 별장이 많았다. 부럽.


















유람선 풍경. 사진을 찍는 나를 돌아보며 씩 웃으며 사진 찍으라는 듯 자리를 비켜주었지만 실은 당신이 있는 풍경을 더 찍고 싶었는데. 그냥 마주 씩 웃어주었다.



그러나, 샤프베르크에서 운은 썩 좋지 않았다. 유람선을 타고 갈 깨까지만 해도, 그리고 기차를 타고 정상에 올라가는 내내 맑고 예쁘더니만 도착하기 5분 전부터 우박이 내렸다. 결국 눈 앞까지 안개가 차올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던 샤프베르크 ^_T


이번에도 그냥 체념하고 허허 웃으며 그래, 안개 낀 것도 괜찮네 하며 안갯속을 헤집고 다니다가 막차를 타러 가는데 갑자기 해가 났다. 구름 속에서 쏟아진 빛이 그대로 호수로 내려갔다. 아, 왜 이제야. 영 타이밍 안 맞아 아쉬웠지만 그 쏟아지는 빛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속상한 맘 달래기에 충분할 정도로.  



너도 안녕, 언젠가 맑은 날 또 볼 수 있겠지.





잘츠부르크는 샤프베르크와 쾨니히 호수를 가기 위한 베이스캠프 정도로만 생각해서 여기선 뭘 할지 전혀 생각하지 않았는데, 일정을 바꾸는 바람에 하루를 꽉 채워 머물게 되었다. 


강가 벤치에서 다리를 베고 누워선 낮잠을 늘어지게 자기도 하고, 반짝이는 강물을 보며 하염없이 걷기도 하고. 또 자고, 사람들을 구경하며 시간을 마구마구 흘려보냈다. 



유난히 가족들, 유모차, 자전거가 많았던 잘츠부르크. 자전거를 탄 사람들은 방향을 꺾을 때 손을 쭉 뻗어 표시를 했다. 손 깜빡이를 켜는 것 같아 신기하다며 한참을 구경했었다.



이 나라 사람들은 좋겠다. 여행자의 푸념.




잘츠부르크는 딱 이런 분위기. 강물이 반짝이고 사람들은 햇볕을 쬔다.




가장 유명한 미라벨 정원에도 가기는 갔다. 예쁘긴 했지만, 내 스타일은 역시 아니었던 걸로. 



딩굴딩굴 잘츠부르크를 즐기고, 정말 맛있었던 수도원 맥주까지 잔뜩 마시고, 베네치아행 야간열차 타러 가는 길. 야간열차를 타러 가는 길도 무섭지 않다니, 오스트리아 치안 최고!



instagram @minami.foto


ⓒ 2016. 민하(mano/minami) All pictures cannot be copied without permi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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