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지지 않으려는 한 사람의 고백

by 공작

삶에 지지 않으려는 한 사람의 고백


아빠는 가끔 술을 먹고, 우리 남매를 마당에 불러 앉혔다.
잔소리의 시작이었다.
공부를 못해 서러운 어린 시절 이야기, 인생을 다시 살면 꼭 하고 싶은 일,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들.
나는 마당의 흙바닥 위에서 모기를 쫓으며 앉아 있었다.
아빠의 말은 길었고, 활동성 많은 어린이가 가만히 있기란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그때 아빠는 말했다.
“집을 팔아서 조그만 슈퍼를 할 거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내 머릿속엔 온갖 상상이 펼쳐졌다.
사탕과 과자들이 가득 쌓인 슈퍼,
그 안을 매일 드나드는 내 모습.


아빠가 그 약속을 지켰다면, 내 유년의 풍경은 조금 달랐을까.


하지만 슈퍼는 생기지 않았다.


대신 인테리어 사무실 명함이 집안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일이 잘 되지 않았고, 전화벨이 울리면 아빠를 찾는 전화였다.

얼마 후 우리 집엔 빨간 차압딱지가 붙었다.
어느 날, 큰 외숙모가 우리 집에 와서 고함을 치던 날도 있었다.
우리 집만 망한 것이 아니고, 다른 친척 집에도 피해가 갔던 것이다.


그때 나는 어른들의 싸움도 몰랐다.
다만 엄마가 아무 말 없이 울던 장면만 또렷이 기억난다.


아빠는 점점 늦게 들어왔다.
어쩌다 마당에 앉아 이야기를 하던 날이 줄고,
대신 나는 아빠의 빈자리를 기다리는 법을 배웠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의 아빠가 조금은 이해된다.
그는 잘 살아보려 애썼고, 실패 앞에서 자신을 다독이려 했을 것이다.
우리에게 하던 잔소리는 자기 자신에게 건넨 다짐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묻는다.
왜 하필 마당이었을까.
방바닥이 아니라,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눴다면,
그 기억이 그렇게 지루하지는 않았을 텐데.


이제는 안다.
그 마당은, 아빠가 마지막으로 ‘아빠’로 남아 있던 자리였다.
나는 그때의 마당을 떠올린다.

삶에 지지 않으려는 한 사람의 고백이 함께 했던, 우리의 마당 한 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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