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 산도가 먹고 싶었을 뿐

그림자를 찾는 시간

by 공작



딸기 산도


고등학생 때였다.


엄마가 운영하던 미용실 문을 밀고 들어가 말했다.

“엄마 나 소풍 가는데, 작은 가방 하나 사야는데.”

거울 앞에서 머리를 말리던 엄마의 손이 멈췄다. 바로 욕이 날아왔다.
“왜 나한테만 이래! 썩을 년이!”
엄마에게 욕을 먹으면 숨이 막혔다. 때로 독한 말은 귀에 꽂히는 게 아니라 심장에 꽂힌다. 거울 속 내 얼굴이 창백하게 떨렸던 것 같기도 하지만, 내 심장은 이미 바닥 아래로 꺼지고 있었다.

그날 나는 단지 소풍 가방 하나를 사달라고 했을 뿐이었다. 엄마의 미용실 안에는 드라이기 소리와 염색약 냄새가 뒤섞여 있었다. 손님이 있는 자리에서 쏟아진 욕설은 나를 한순간에 ‘미용실집 딸’에서 ‘불청객’으로 만들었다.


엄마는 서랍에서 천 원짜리 세 장을 꺼내 내게 던졌다.
“이걸로 알아서 해.”
나는 고개를 숙여 돈을 주워 들었다. 가방을 살 수는 없는 돈이었다. 근처 슈퍼에 들러 딸기맛 산도를 샀다. 비닐을 뜯자 인공적인 딸기 크림이 유난히 진하게 보였다. 곧 목이 메었다. 그래도 맛있었다. 자존심보다 허기가 더 컸던 여고생, 그게 그날의 나였다.


엄마의 분노는 뭐였을까. .버텨내야 했던 삶을 향한 절규였을까. .쌓여가는 대출과 밀린 월세, 가족들의 뒤치다꺼리.. 엄마는 그 무력함을 가장 가까운 나에게 쏟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 해도, 그 말은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다.


“썩어 죽을 년이.”
그 한 문장은 오래도록 나의 자존감을 흔들었다.


가끔 딸기 산도를 보면, 그 시절의 내가 떠오른다. 과자를 씹으며 울음을 삼키던 그 아이. 이제는 그 아이에게 다정히 말해주고 싶다.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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