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막 위기의 시작
마흔쯤 되면 외제차 한 대 정도는 있을 줄 알았다. 십 년 세월을 이렇게 빨리 지나 줄 알았다면 그때 그런 헛된 꿈은 꾸지 않았을 것이다. 헛된 꿈을 꾸는 것보다 더 심각한 것은 부자가 된 듯한 착각 속에 살았다는 것이다. 어쩌다 보니 집을 두 채 샀고, 주식투자로 성공했다. 벼락거지라는 말이 탄생했을 때였다.
남편은 집값이 오를 것이 기정사실인양 분양받은 집에 들어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여보, 이사 간다고? 프리미엄 받고 팔자니까"
"아니, 두 배 더 올라. 지금 팔면 손해야. 그리고 거기로 들어가면 애들이 학교 가기도 더 좋고 거기가 훨씬 좋지"
남편은 미래를 이미 살아본 사람처럼 , 단정적으로 말했다. 마치 이제 우리에겐 레드카펫이 깔려있고,
나는 그냥 따라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는 듯.
나는 둘째가 세 살 때부터 일을 시작했다. 프리랜서 강사부터 시작해서, 나만의 교습소를 가질 때까지, 열심히 노력해서 제법 큰돈을 벌었다. 겉으로는 모든 것이 좋아 보였다. 그런데 나는 한 가지 큰 실수를 하고 있었다.
남편 명의로 집을 사면서 생활비와 사업장유지 비용을 빼고 전부 남편 통장에 송금한 것이다. 월 소득 이외에도 추가적인 소득이 있으면 남편에게 즉각 알렸고 남편이 모르는 돈은 없었다. 그리고 이사 가자고 주장할 때쯤 남편은 부동산 카페와 유튜브영상을 끼고 살았다.
지금 생각하면 부부 사이가 너무 좋은 것도 문제가 있다. 모든 것을 믿고 맡기게 되어버리니까.
그러니까 남편보다 더 많이 벌었지만 내가 관리할 수 있는 돈은 부족하지도 그렇다고 남지도 않는 생활비 정도였다.
둘째가 막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 나는 또 한 가지 실수를 했다. 바로 사업을 정리한 것이다. 남편은 이제 이사도 왔고 아이들 볼 사람도 없으니까 무턱대고 그만두라고 했다. 남편은 우리 집의 모든 현금을 주식에 넣었고 나모르게 대출을 받은 수천만 원도 주식에 넣었다. 석연치 않았다. 그때 말렸어야 했다. 남편의 주식창을 보고 나도 이러다가 정말 부자가 되는 것 아닌가 착각했다. 온통 빨간색이었다.
원래 남편은 주식에 주 자도 모르는 사람이었고, 부동산은커녕 블루베리잼 한통도 못 사 먹는 쫄보였다. 나의 경제력과 조금의 재테크 지식이 우리에게 이렇게 큰 파장을 가져올 줄 알았다면 나는 일하지 않았을 것이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은 우리의 희망을 내동댕이쳤다. 부동산은 얼어붙었고, 은행 이자는 솟구쳤고, 주식 그래프는 파란 선을 그리며 추락했다.
그 모든 것을 바로 앞에서 보고 있으면서도 남편은 마치 오래된 달력처럼 현실을 부정했다.
" 아니 조금만 버티면, 금방 원금 회복한다니까,
지금 어떻게 빼...?
조금 만더 버티면, 대출받아서 버티면 돼.."
남편의 음성은 떨리고 있었지만 정작 본인은 느끼지 못했다.
나는 그 희망이 부질없다는 것을 감으로 알 수 있었다. 밑 빠진 독에 물붓기였다.
우리는 집에서도 길거리에서도 격렬 하게 부딪쳤다.
"지금 상황 파악 안 돼? 다음 달부터 생활비는 , 이자는? 나 모르는 대출 또 나오면 진짜
이혼이라고 했지!"
남편은 시선을 피했다.
나는 처음으로 남편을 이해할 수 없다는 감정을 느꼈다. 한 집에 살면서도 서로 다른 행성에 사는 기분이었다.
남편의 미적거림으로, 우리는 더 빨리 빚을 정리하지 못했고 그 과정에서 불필요한 손실을 또 보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빨간불에 눈이 멀어 남편을 멈추지 못했던 나 역시 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결국 집 두 채를 손해 보고 팔았다.
남은 대출 일부만 겨우 메꿨을 뿐, 주식을 하느라 생긴 대출 빚은 고스란히 떠안았다.
경제적으로 풍족할 때는 매월 나가는 고정비가 아깝다는 생각을 못했다.
그런데 망하고 보니 매월 우리는 불필요한 돈을 너무 많이 내고 있었다.
특히 통신비를 26만 원이나 내고 있었다. 핸드폰부터 알뜰폰으로 바꾸기로 했다.
아이들 핸드폰이 남편 명의로 되어 있는데 남편은 위약금도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전 기계를 해지하는 바람에 갑자기 위약금 38만 원이 생겼다.
그랬다. 결혼한 지 13년 만에 남편과 내가 얼마나 어리숙하고 경제관념이 없는 사람인지 그제야 체감이 되었다.
본인도 힘든데 은행에 근무하는 지인의 대출부탁을 들어주는 사람.
남동생이 부탁하는 보험을 앞뒤생각 안 하고 몇 개나 들어주는 사람.
그런 사람이었다.
특히 남편은 이익을 먼저 계산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항상 배려심이 밴 사람이다. 누가 힘들다 하면 자기 불편을 뒤로 미뤄두는 사람이었다.
그건 집을 임대할 때도 똑같았다.
세입자가 한파 걱정을 하면 중문을 달아주었고, 입주 청소도 해주었다. 이사 비용까지 넉넉히 챙겨주며 "좋은 인연으로 남자고요"라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역할이 뒤바뀌어 우리가 임차인이 되었을 땐 다 소용없는 일이었다.
어린 집주인이 계약서를 바라보며 말했다.
" 월세를 제때 안내면 보증금 지급도 늦춰진다는 내용 넣겠습니다"
옆에 있던 공인중개사가 어차피 보증금을 못 받으면 이사를 못 나가는데 , 그런 특약은 안 써도 된다고 말렸지만 임대인은 고집을 부렸다.
남편은 불합리한 요구 앞에서도 소리를 높일 줄 몰랐다. 늘 누군가를 배려해 온 사람의 방식으로 이번에도 입을 다물었다.
나는 그 어린 집주인의 옆에서 세상모르는 척 순진하게 웃고 있는 와이프가 부러웠다. 남편이 남한테 그렇게 인정사정없다는 건, 반대로 가족의 안전망이 견고하다는 뜻이니까.
나는 2년 동안 한 번도 월세날짜를 어겨본 적이 없었다. 임대인이 그렇게 안 했더라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더 악을 물고 날짜를 지켰다. 보증금을 받기로 한 날. 새로 들어온 새 입자가 짐을 먼저 넣겠다고 부탁해서 열쇠를 먼저 주었다. 임대인은 우리를 한참 기다리게 하고 나서야 어슬렁어슬렁 나타나서 보증금을 이체했다.
나였다면 짐 빼고 집 상태 확인하자마자 보증금을 바로 돌려주었을 것이다.
세상은 내가 살아온 방식으로 돌아가고 있지 않았다.
남편은 애초에 주식을 하면 안 되는 사람이었다.
오르면 오른다고 더 쓰고, 내리면 내렸다고 못 파는 사람.
그랬다. 망했을 때도, 핸드폰 뒤처리도, 결국은 내가 감당해야 했다.
나는 사실 고민했다.
속으로는 이미 , 모든 것을 정리하고 싶었다.
이대로 다 같이 침몰하면 모든 것이 그냥 정지되는 , 정지버튼을 누르고 싶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