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것에서 한 번은 도망쳐야 한다

by 공작



이전과 달라지려면 익숙한 것에서 도망쳐야 한다. 그것이 관계든, 환경이든.


둘째가 한 살 때부터 어린이집에 보냈다. 취업준비에 필요한 자격증을 취득하고

취업을 준비할 시간이 필요해서였다.

그런데 어린이집에서 알게 된 아이친구 엄마가 문제였다.


처음 어린이집을 보낼 때는 처음부터 긴 시간을 맡기지 않는다.

적응기간을 위해 한 시간씩만 어린이집에 맡기고 점차 익숙해지면 시간을 늘린다. 어린이집에 맡기고 단 한 시간의 자유가 주어진 날. 뒤따라 나오던 다른 엄마가 나를 붙잡았다.


" 안녕하세요,

우리 시간도 짧은데, 요 앞에 카페에서 대기하다가 같이 애들 데리고 가요"


길어야 일주일 이겠거니 생각했던 나는 그 부탁에 응하고 말았다.


내 옷자락을 붙잡고 울던 첫날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났다. 아이들은 어린이집의 낮은 의자와 미끄럼틀에 익숙해졌다.

그 사이 나는 그 엄마를 <언니>라고 부르고 있었다.

그때 내 나이는 서른셋이었고, 그 언니는 서른여덟이었다. 아이를 기다리며 나눈 짧은 대화는 어느새 긴 이야기가 되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언니는 사업을 하느라 결혼을 늦게 했다. 젊은 나이에 청년기업가 상도 받고 모든 사업을 일으켜 놓았으며, 이젠 남편이 회사를 맡아 운영하고 있었다. 그 언니는 먹고살 걱정은 이제 없다고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영혼 없는 대답을 하고 있었지만 속은 메말라갔다. 물론 이야기를 너무 좋아하고, 더군다나 나와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의 이야기는 웬만한 드라마 보다 꽤 중독성 있었다. 동시에 숨이 막혔다.


하필 돈 많고 시간 많은 사람과 친해진 것이다.


"여기 동네 답답하지 않아?, 우리 바람 쐬러 갈까?~"


"와, 그동안 답답했는데 좋아요~언니~~! 같이 가요 , 이번엔 제가 살게요~"


만나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얻어먹는 것도 한두 번이지,.. 그래도 나는 꼭 얻어먹은 다음은 내가 냈다. 거기까진 좋았다. 그런데 문제는 라이프 스타일이 너무 다른 것이었다. 나는 뚜벅이인 반면, 그 언니는 차가 K9이었다. 나는 외식해 봤자 짜장면인데 그 언니는 피자도 브랜드피자만 먹었다. 나는 아이 생일선물로 간식꾸러미를 준비했지만 그 언니는 랄프로렌 원피스를 우리 아이 선물로 줬다. 달갑지 않고 부담스러운 고마움이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젠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오래 있을 수 있게 되자, 거의 매일 나를 부르는 것이었다. 나는 이제 연락을 받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헬스장까지 같이 다녀서 운동하는 날이 겹치는 날은 꼼짝없이 같이 밥을 먹거나 차를 마셨다. 문제는 또 그 언니가 다른 엄마를 데리고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젠 두 명이 아닌 세 명이 같이 움직였다.


핑계도 한계가 있었다. 점차 피곤해지기 시작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얻은 귀한 시간이었다.

그 시간을 동네 카페에서 흘려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불안했다.

나는 그 시간을 공부에 쓰고 싶었다.


전화가 울렸다.

표시창엔 <도영맘>이 떴다.


나는 받지 않았다.

잠시 뒤, 다시 전화가 왔다.


받지 않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내가 전화를 걸었다.


"저 이제 공부해야 해요.. 죄송해요... 언니.."


언니에겐 미안했지만,

묘한 해방감이 느껴졌다.



비로소 내 시간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때 나는 내 시간을 지키기 위해 내 시간을 뺏는 사람들로부터 도망친 것일까.

아니면 나와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에 대한 불편함에서 도망친 것일까.



그리도 또..

다시 도망쳐야 할 일이 생겼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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