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셋증후군 May 19. 2023

9. 남자답지 못하다는 ‘너’

제1장 퇴사사유: ‘너’는 누구인가

남자답지 못하다는 ‘너’ 

연봉협상 결과에 너무 낙심한 뒤 이직을 하기로 했다. 


협상 테이블에서 나는 ‘돈’과 ‘일’ 둘 중 하나만이라도 얻어가고자 했다. 내가 소박한 연봉 인상액을 요청했을 때, 그는 회사에서 제시하는 '귀여운 연봉'에 동의해달라며 사뿐히 거절했다. 그렇다면 회사에서 진행하고 있는 중요한 프로젝트에 참여할 기회를 달라고 했는데, 회사가 필요한 곳에 적절히 배치해주겠다고 했다. 너 정도밖에 안 되는 짬밥이면 누구와도 일할 수 있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고. 


맞는 말이다. 


아무것도 얻은 것 없이 자리로 돌아오며 나는 ‘이직 하리라’ 다짐했다. 


며칠 뒤 이직할 회사를 결정하고 퇴사하겠노라 했더니 난리가 났다. 그는 퇴근하려던 나를 붙잡고 다섯 시간 동안 회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이야기 했다. 처음 듣는 이야기였지만 그의 모든 이야기 속에 내가 있었다. 그의 말대로라면 10년 뒤 나는 임원이 될 것이다. 15년 뒤에는 대표도 될 수 있다고 했다. 이 업무에 너무나도 적합한 나의 태도와 자질에 대한 얘기도 들었다. 매번 혼나기만 해서 항상 주눅들어 있었는데, 퇴사한다고 내가 유능한 인재가 돼버리는구나!   


돈 때문에 퇴사하려고 하는 것이면 당장 내가 원하던 인상액을 주겠다고도 했다. 그것 때문에 마음 상한 거 맞는데, 지금 달라고 하면 왠지 순수함이 훼손되는 것 같아 그냥 됐다고 했다. 


가장 가슴을 후벼 파는 얘기는 이것이었다. 


“남자가 왜 그래! 한번 같이 일하기로 했으면 같이 가는 거지!” 


그래 정말 나도 함께 일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때 나에게 해준 이야기들이 너무 감사했다. 

그런데 내 마음이 이미 떠났다.  


남자답지 못하게 퇴사한다. 

작가의 이전글 10. 네가 나한테 맞추라는 ‘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