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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셋증후군 May 23. 2023

12. 비전에 공감해달라는 ‘너’

제1장 퇴사사유: ‘너’는 누구인가


비전에 공감해달라는 ‘너’ 


요즘은 ‘비전이 있다’는 말이 ‘월급이 적다’는 의미라는 것을 모두 알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사회생활 2-3년차 정도에 '스스로' 깨달았다. 그때만 해도 정말 신선한 생각이었다. 또, 그것이 내겐 경험을 통해 체득한 놀라운 인사이트였기 때문에 술 마실 때마다 친구들에게 떠들어댔다. 

"얘들아, 비전이 있다고 자랑하는 회사 가면 월급 적고 고생한다" 


내 사회생활 초기는 2000년 초 벤처붐이 꺼지는 시점이었다. ‘비전’ 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지금과는 사뭇 다를 수도 있겠다. 지금의 스타트업들은 실제로 공감할만한 비전을 품고, 돈이 되거나 돈이 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로 만들기 위해 꽤 고군분투하는 것 같다. 


내게 ‘비전에 공감해달라’고 말하는 그들의 눈빛은 대체로 두 가지로 갈렸다. 진짜 비전에 휩싸인 채 아우라를 뿜어내는 사람이 있었고, 반면 불투명한 눈빛으로 저렴하게 노동력을 착취하려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 봤자 어떤 쪽이든 비전에 공감한 나의 결과는 ‘적은 월급’으로 귀결됐다.  


비전은 꽤나 부정확하고 모호한 단어지만 그렇기 때문에 미래지향적인 느낌을 준다. 누군가 비전을 품고 있다고 하면 선견지명이 있어 보이고, 미래를 창조하고 있다는 사람처럼 보일 수 있다. 그래서 이 단어를 사용하면 노동을 착취하는데 활용하는 사람인지, 진짜 비전을 품고 있는 사람인지 잘 골라내야 한다. 


‘비전’을 산업적인 측면으로 보면 아직 성숙하지 않은 산업으로 지금은 큰 돈을 벌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앞으로 떠오를 산업에서 미리 들어와 경험을 쌓아가면 나중에 이 산업이 성장했을 때 앞서나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런데 막상 그 산업이 성장하면 기존의 비스므리한 산업에서 선수들을 대거 데리고 온다. 그렇게 한 직장인의 비전은 층층시하(層層侍下)에 가려 저 멀리 사라져간다. 


‘비전’과 비슷한 단어로 ‘열정’이라는 단어도 있다. 이 로맨스 넘치는 단어는 몇 년간 ‘열정페이’라는 단어로 더러워져 버렸다. 반면 ‘비전’은 아직 좀 긍정적인 느낌이 살아있는 편이다. ‘비전페이’라는 말은 없기 때문이다. 굳이 비슷한 단어를 하나 언급하자면 ‘희망고문’ 정도랄까. 


여하튼 ‘비전’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을 만나면 일단 경계하자. 그들은 진실을 왜곡하거나 숨기기를 좋아한다. 실제로 현실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니 ‘비전’으로 포장해서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이야기만을 한다. 하지만 그들 스스로도 ‘비전’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릴 때마다 두근두근한 것 같다. 본인 스스로에게 도취해서 모든 문제의 만능키처럼 ‘비전’을 입에 올린다. 


‘비전’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어떻게 임직원들과 공감할 수 있는 ‘비전’을 어떻게 전달해야 하냐고? 여러 회사에서 ‘비전 선포식’이라는 행사를 통해 임직원들과 비전을 공유하는데 왜 유난 떠냐고? 


우리의 비전이 10년뒤에 국내 최고이자 글로벌 5위 안에 들어가는 기업이 되는 것이라고 이야기 하면 공감이 되나? 영화 속에서나 등장하는 미래 사회를 영상으로 찍어서 보여주면 이것이 우리의 비전이라고 다들 감동받아서 로열티를 뿜어내나? 비싼 고기 먹이고 축하가수 불러서 한번 놀면 비전이 막 임직원 심장 구석구석에 박히나? 


혹시 그러면 다행이다. 할말 없지. 


그런데 생각처럼 잘 안 되는 것 같으면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 비전은 현재의 안정감에서 나오고, 현재의 안정감은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에서 나온다. 평상 시, 우리 회사나 조직은 어떤 내부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는지 돌아보라. 또 우리 회사나 조직은 우리의 고객들과 어떤 대화를 하고 있는지, 시장의 규칙을 정하는 정부는 우리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보라. 


비전은 2025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 있어야 한다. 오늘 임직원들 마음 속에 살아 숨쉬고 있어야 한다. 나는 정말 회사의 비전이 조직을 관통하는 회사를 보고 싶다. 그런 회사로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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