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셋증후군 May 23. 2023

13. 사람은 좀 살아야 한다는 ‘너’

제1장 퇴사사유: ‘너’는 누구인가

사람은 좀 살아야 한다는 ‘너’ 


어릴 적에 상처가 된 말이었다. 내가 다니던 회사는 실제로 집안에 돈 좀 있는 애들이 수두룩하고 해외 여기저기서 대학을 나온 애들이 많았다. 샤로수길 맛집 소개하듯 뉴욕 어디에 자주 가던 맛집이 있다는 얘기를 툭툭 던지는 그런 분위기랄까. 가뜩이나 흙수저라 주눅들어 있는데, 그는 그런 ‘있는 집’ 아이들을 매우 선호했다. 


한번은 다 같이 모여 회의를 하는데 해외에서 인턴쉽을 했던 친구가 이러저러한 아이디어를 냈다. 아이디어를 좋고 나쁨을 떠나 그는 감탄했다.  


“이래서 사람은 좀 살아야 해” 


생각하기에 따라서 급이 맞지 않은 명품 브랜드와의 콜라보 이벤트 아이디어에 동의도 부정도 아닌 단순 반응일 수도 있지만, 그 말을 듣고 나는 심장이 얼어 붙었다. 


그 회사에는 두 종류의 직원이 존재하는 듯 했다. 대외에 보여주기 위한 학벌 좋은 직원과 일만 하는 직원. 나는 후자였다. 일은 뭐 잘했나, 그 당시 일이 손에 익지 않아 매일 밤 11시나 돼야 퇴근을 할 수 있었다. 주눅들어 있고 과로도 하는데 그다지 성과는 없는, 그런 회사 생활이 계속됐다. 


그렇게 움츠려 든 것은 자존감이 낮았던 나의 문제일 수도 있다. 자칫 원망을 부모님께 돌리는 바보 짓을 할 수도 있는 터였다. 이런 상태를 회복한 것은 이보다 훨씬 뒤다. 금수저, 흙수저가 사회적인 이슈로 부각되고, 마음을 다스리는데 도움이 되는 이야기들을 많이 접한 후였다. 그 뒤 빈부의 격차 심화 등의 문제에 대해 이러저러한 정보를 접하고, 대학원에서 정치적인 해법들을 알게 되면서 더욱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하기도 했다. 


‘너는 부유한 집안에 태어나기 위한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상황에 기대여 사는 너를 내가 인정할 수는 없다.’ 


물론 타고난 좋은 조건에 대해 균형감 있게 인지하고 겸손하며 그것을 활용하고 좋은 역량을 갖추고 좋은 일하는 애들도 있다. 내가 문제를 삼는 것은 금수저가 아니라, 금수저, 흙수저를 가르고 차별하는 사람이다. 


페이스북에 최동석 인사조직연구소장님이 올리시는 글을 좋아한다. 소장님의 글 중에서 금수저에 대한 글을 일부 옮기면,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들의 세 가지 경향적 수준이 있다고 한다. 



첫째 수준, 자신들이 물고 있는 금수저를 신분적 특권의 표상으로 이해하는 수준이다. 이 경우 사익과 특권만을 향유하는 모항공사 지배대주주 가문과 같이 교양이라고는 1도 없는 애들이 된다. 이런 천방지축의 애들에 대해서는 여기서 언급할 가치조차 없다. 

.

둘째 수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어도 약간의 교양이라는 것을 쌓아서 겉으로는 타인에게 해코지 하지는 않는 수준이다. 그러나 금수저의 첫 번째 속성(타고난 신분적 우월감에 쩌는)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사회 전체적 시각에서 세상을 보지 못한다. 시야가 좁고 자기중심적이라는 말이다.

.

셋째 수준, 금수저를 물고 있으면서도 그것에 대한 사회적 책임감을 실천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본 적이 없는데, 서양에서는 이른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실천하는 사례를 자주 본다.



나도 돈을 많이 벌고 싶다. 내 아들은 아니더라도 내 손주는 금수저 집안에서 태어나게 하고 싶다. 그리고 손주들에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도록 교육하는 할아버지가 되고 싶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돈으로 사람을 차등하는 천박함은 우리 집안에 없도록 하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12. 비전에 공감해달라는 ‘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