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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셋증후군 May 23. 2023

14. 내가 프락치라는 ‘너’

제1장 퇴사사유: ‘너’는 누구인가

내가 프락치라는 ‘너’ 


마피아 게임을 하는 줄 알았다. 내가 범인이란다. 


윗사람에게 대놓고 ‘네가 프락치야’라는 말을 들어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참 직장생활 험하다. 이런 일을 겪으면 당연히 그 상사와 일하지 않는 것이 정상이다. 퇴사해야지. 부당한 것들을 잘 참고 이겨내 끝내 임원이 됐다는 것은 본인 혼자 좋아했으면 좋겠다. 상식적이지 않은 것을 이겨낸 것이 무슨 자랑인가. 단순히 이직 횟수만 보고 습관적으로 이직을 하니 어쩌니 평가질도 좀 그만. 


조언이랍시고 ‘상식적인 잣대를 들이대면 다닐 수 있는 회사가 몇이나 되겠냐’며 참고 다녀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아니 많다. 잠시만 생각해보라. 그 말이 정상적인가? 미친놈들의 소굴로 들어가기 위해 우리는 그렇게 열심히 꿈을 키워왔던가! 네 자식에게도 그러고 살라고 하게? 


완벽한 인간은 없고, 조직이 언제나 옳은 결정을 내릴 수도 없다. 그러나 상식선을 벗어났을 때 바로 잡는 기제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프락치’라는 말뿐만 아니라 그 앞뒤로 내게 했던 강압적이고 모욕적인 말들을 내뱉었다면, 내가 퇴사하는 것이 아니라 응당 그 말을 한 사람이 처벌받아야 한다. 그런 기제가 없으니까 내가 나가게 되는 것이다. 


그는 나에게 왜 ‘프락치’라는 말을 했을까? 그는 항상 본인은 미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이번에도 본인의 추론이 다 옳다고 생각한 것 같다. 관심법 대단해. 그가 회사 오너에게 예쁨 좀 받아 보겠다고 정치싸움을 한창하고 있는데, 상대방의 입에서 내 칭찬이 나온다. ‘어라? 이 놈 여기 붙었구나’ 의심한다. 나를 부른다. 몇 가지 말도 안 되는 질문을 툭툭 던진다. 내가 아니라고 말해봤자 소용없다. 그 놈과 어떤 모의를 했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으니 화가 난 김에 그냥 직설적으로 말한다. 


“아니라고 해도, 넌 내가 보기에 프락치야, 너 밖에 없어, 여기 다 내 밑에서 충성하는데, 갑자기 그 놈이 널 칭찬할 리가 없잖아? 그 전에 그 놈이 나 공격했던 소스를 제공한 것도 다 너야. 기대해라 내가 너희 둘 다 날려버릴 테니” 


내가 왜 아침부터 이런 소릴 듣고 있어야 하는지 모른 채, 그 방에서 나오자마자 인사팀으로 갔다. 그리고 퇴사 절차를 물어봤다. 


내가 퇴사한다고 했다는 소식을 들은 그가 화들짝 놀라 다음날 또 나를 불렀다. 그리고 장시간 사과를 했다. 본인이 너무 흥분해서 그런 말을 했단다. 그런데 이 사안이 주둥이로 퉁 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사과하는 과정도 가관이었는데, 디테일은 생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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