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자기소개서(1) 경험중심으로 기술
이건 너 잘되는 거잖아, 안 해
여유롭고 평화롭고 그래서 무료한 생활을 하던 무렵, 갑자기 일다운 일이 하고 싶어졌다. 뭔가 해 봤자 이러저러한 이유로 잘 안 된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한번 부딪혀 보고 싶었다. 그래서 연간 광고 예산을 가지고 있던 품목 중 매출 볼륨이 작아 뒷전으로 미뤄 논 품목을 찾아냈다. 예산이 작아 캠페인도 불가능하고 단발성 이벤트로는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품목들이었다.
담당PM을 만나 제품 베네핏을 정리했다. 어떤 점을 강조할지 명확한 제품이었다. 예산이 작아 광고대행사를 쓰지 않기로 했다. 매체 담당자를 직접 만나 협의를 했다. 당시 종합편성채널이 개국한지 얼마 되지 않아 발품을 팔면 비용을 적게 들이고도 노출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그렇게 매거진 두 페이지에 애드버토리얼을 싣고, 애드버토리얼을 네이버 검색에 걸리도록 했다. 그리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그 회사가 소유한 종합편성채널 70분 편성물에 PPL하기로 했다. 그리고 매거진 페이스북 페이지 내 이벤트까지 걸기로 협의를 마쳤다. 이렇게 구성한 총 예산은 1,500만원(vat별도).
이제 보고가 문제다. 내가 보고해야 할 라인은 광고파트장, 홍보팀장, 해당 PM팀장, 마케팅실장 이렇게 네 명이었다. 광고파트장은 내가 준비하는 과정을 다 지켜보았으니 당연히 컨펌을 받았다. 홍보팀장은 까다롭게 굴 줄 알았는데 의외로 잘했다며 PM에 얘기하고 진행하라고 했다. 해당 PM팀장에게는 담당 PM이 보고 하기로 했는데, 보고한지 며칠이 지나도 컨펌을 해주지 않았다. 며칠 뒤에 답답해서 찾아 내려갔다.
“부장님, 기획안 보셨습니까? 진행 어떻게 할까요?”
“응, 그거 안 할거야. 그냥 비용 이월하라고 했어, 다른데 쓸거야”
“아, 그런데 이 정도 기획에 이런 조건을 만들어 오기도 쉽지 않은데 진행 해보시면 어떨까요?”
“야, 내가 바보인줄 아냐. 이건 너 잘되는 거잖아. 안 한다고!”
도대체 어느 부분이 내가 잘되기 위해 기획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기획안은 빠그러졌다. 그리고 이 사건이 퇴사를 결심하는 데에도 꽤 큰 역할을 했다. 회사에 남아 마케팅이나 PM이나 다른 업무로 순환보직 해보고 싶었지만 그래 봤자 또 뭐가 있을까 싶었다. 이 분은 여전히 그 회사에서 승승장구 하고 있다.
내가 잘못된 건가? 그들은 알고 나는 모르는 것은 무엇일까?
사실 별로 알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