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PR을 하게 된 이유

제4장 자기소개서(2) 업무중심으로 기술

by 리셋증후군

면접에서 PR에 대한 원론적인 질문을 던지는 경우가 많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IMC에 대한 나의 생각을 물어봤던 모회사의 면접자리는 다시 한번 말하지만 매우 인상 깊었다. 회사에서 원하는 PR의 역할이 대부분 정해졌고 그 업무를 수행가능한지만 확인하면 되는 터라 묻지 않았을 수 있다. 혹은 PR을 글로 배우지 않고 몸소 경험하며 익혀왔던 터라 굳이 물어볼 필요가 없을 수도 있다.


그래도 PR담당자는 회사에서 바라는 역할을 넘어 훨씬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어떤 자세를 가지고 PR업무를 대하는지에 따라 법인의 인격이 달라질 수 있다. PR대행사를 제외하고 PR조직은 직접적인 매출부서가 아니기 때문에 조직 내 위상은 일반적으로 높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조직 안팎으로 비전을 담은 메시지를 쭉쭉 뿜어내는 사람들인 만큼 그들의 어떤 생각으로 PR업무를 바라보는지 확인해봐야 한다.


본 장에서는 그 동안 PR인의 되기까지의 경험과 PR, 광고, 마케팅, 영업 등을 거치며 스스로 정의 내려본 PR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을 나눠보고 싶다.


PR을 하게 된 이유


이게 다 에드워드 버네이즈(Edward Bernays) 할아버지 때문이다.


나도 광고홍보학과를 들어가면서 ‘광고’만 생각했다. 나도 한두 살 때부터 텔레비전에 광고만 나오면 집중에서 봤다. 기억나는 광고도 많고, 20년 살면서 수 많은 광고에 노출되어 살았기에 친숙했다. 반면, PR은 알듯 모를 듯했다. 언젠가 ‘지금은 PR시대’라는 말은 들어봤지만, 그건 ‘자기 잘난 거 자랑해야 한다’ 정도의 의미였다. 도대체 PR이 뭐야?


그렇다면 내가 지난 15년 동안 PR관련 일을 해오긴 했던가? 이것도 애매하다. 스스로 개념도 잡을 수 없었던 일을 제대로 해왔다고 하면 양심에 걸린다. 하지만 도대체 PR이라는 것을 어떻게 해야 제대로 하는 것인지 끊임없이 고민해 온 것은 사실이다. 기업에서 홍보팀의 역할이 무엇이고, 홍보담당자는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 고통(?) 받으며 고민해왔고, 홍보대행사에서도 존재가치에 대해 고민하느라 고통스러웠다.


한 동안은 광고 담당자로 PR과 광고가 어떻게 다른지, 혹은 어떻게 같은지 경험해보기도 했다. 광고와 홍보를 퉁 쳐서 ‘커뮤니케이션팀’으로 이름 붙인 팀에서도 일해보고, 콕 집어 ‘언론홍보팀’이라 명명한 팀에서도 일해봤다. 어떤 능력자가 홍보와 마케팅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지막으로 근무했던 조직의 이름은 ‘홍보마케팅실’이다.


PR이 아니라 Publicity라는 좀 더 편한 개념이 있다. 결과물이 눈에 보이기 때문에 KPI 잡기도 좋다. 그런데 굳이 PR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Publicity를 하면서도 PR을 꿈꿨다.


한창 광고홍보에 대해 배우던 학부 시절에 한국의 오길비(David Ogilvy)가 되겠다는 포부를 갖고, 본인도 본인 이름을 딴 광고회사 만들겠다며 열정을 불사르던 친구들이 많았다. 그 당시에는 홍보관련 커리큘럼도 별로 없고 해서 유명한 홍보인은 누가 있는지도 몰랐다가 3학년 2학기를 마치고서야 ‘에드워드 버네이즈’를 알게 됐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마음을 빼앗겨 직업 선택의 자유를 잃었다.


이제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버네이즈를 알고 있지만, 처음 그를 알게 된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다. PR이라는 단어를 만든 사람, 괴벨스의 스승, 여론 조작의 아버지 등 그를 표현하는 수식어도 너무나 많다. 그의 방법론들은 알게 모르게 우리가 일상으로 접하거나 기획하는 마케팅, 광고, 홍보 활동에 녹아 있다. 내가 문제를 해결을 위한 솔루션을 고안할 때도 그의 방식을 참고한다.


그를 알게 된 그때부터 마음속으로 ‘한국의 버네이즈’가 되는 것을 꿈꾸고 있다. 지금도 그 꿈은 유효하다. 버네이즈 할아버지는 103세까지 본인의 회사에서 PR서비스를 제공했다고 한다. 내 나이 이제 40세이니까 향후 70년, 시간은 충분하구만.


나는 오늘도 한국에서 태어난 가장 선한 거짓말쟁이를 꿈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