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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eun Min Jul 11. 2023

책 나와라 뚝딱! 이야기 나와라 뚝딱! (1)

- 책과 만들기와 이야기, 김지은 평론가 & 백희나 작가 대화록 첫번째 

작년에 이어 돌아온 2023 '책,풀,톱' 도서관과 작업실 컨퍼런스. 이번 컨퍼런스는 아동문학평론가 김지은 선생님과 백희나 작가님의 대화로 문을 열었습니다. <책 나와라 뚝딱! 이야기 나와라 뚝딱! - 책과 만들기와 이야기> 라는 제목을 통해 엿볼 수 있듯, 어린이의 삶에 있어 '뚝딱 뚝딱' 만드는 작업의 경험과 이야기의 관계에 대해 나누어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아래는 세션 기록 전문으로 김지은 선생님의 시작하는 발표를 첫번째 글에, 백희나 작가님과의 대화는 두 번째 글에 담았습니다. 

컨퍼런스 세션 영상 보러 가기 


어린이와 작업


안녕하세요. 저는 아동문학평론가이고 그림책을 연구하는 김지은입니다. 오늘 2023년 도서관과 작업실 컨퍼런스 ‘책, 풀,톱’의 첫 번째 세션을 시작하는 발표를 맡았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만들기에 대한 이야기,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어 기쁘고 반갑습니다. 저는 지금 모야 작업실에 앉아있는데요, 이 곳은 굉장히 많은 도구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많은 도구들을 어린이들이 만지고 그것을 활용해서 자기들만의 이야기를 실제 어떤 사물로 만들기도 하고 책으로 만들기도 하는 장소인데요. 이 공간의 천장은 밖으로부터 들어오는 햋빛이 투과되는 유리천장이어서, 지금 이 빛은 자연광입니다. 저는 자연광이 내리는 책상에 앉아서 자신이 원하는 이야기를 해보는 어린이들의 모습을 상상하면 기분이 너무 좋은데요, 저희들이 어린 시절부터 꿈꾸던 나만의 작업실이 실현된 듯한 느낌을 받기 때문이에요. 제가 백희나 작가님을 이 곳에 모시고 이야기를 나누자고 제안을 처음 했었는데, 그 이야기를 하게 된 계기는 이 곳에 들어오자마자 생각나는 한 분이 바로 백희나 선생님이었기 때문이에요. 딱 들어왔는데 “아, 이곳은 백희나 선생님이 너무나 좋아하실만한 장소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어린이들의 작업에 큰 영감을 주는 작가가 백희나 작가님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을 직접 모시기 전에 제가 어린이에게 작업이란 무엇인가 하는 이야기를 잠시 나누도록 하려합니다.

저희 컨퍼런스 세션 제목을 지은 분도 백희나 작가님이신데요, 제목을 지을 때 정말 2-3분 만에 나온 것 같아요. "음.. ‘책 나와라 뚝딱, 이야기 나와라 뚝딱’이라고 하면 어때요?" 하시며 정말 ‘뚝딱’ 나온 제목이었어요. 제가 이전에 학회 제목 같은 제목을 생각하며 ‘이건 아닌데…’ 하고 몸을 비비 틀고 있었는데, 작가님 제안에 ‘아 바로 이것이다!’ 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이렇게 근사한 제목을 주실 수 있었던 것도 만들기를 일상에서 꾸준히 해온 작가님의 순발력 덕분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린이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어린이에게 작업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그것이 어린이들의 마음 속에 있는 생각을 즉각적이고 입체적으로 꺼내놓게 만드는지, 손으로 만드는 작업이 어떻게 생각하고 연결되는지 그런 이야기를 나눠보려 합니다.


어린이가 자라나는 데에 이야기가 반드시 필요하다. 저의 주장입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그렇게 생각하실 거에요. 저는 어린시절 부드럽고 따뜻한 누군가의 무릎을 베고 누워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것은 할머니일 수도 있겠지만, 저의 경우는 제 무릎에 막내를 눕혀놓고 이야기를 들려준 적도 있거든요. 어떤 어린이가 다른 어린이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하고요, 어릴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어린이들은 인형을 가지고 노는데, 인형에게 이야기를 들려준 적도 있어요. 인형이 제 이야기를 들어주고 같이 울어주고 그러다 잠들고 그런 기억도 생생합니다.


어린이가 자라나는 데에는 이야기가 필요한데 그 크기는 몇 제곱미터인가? 하는 질문이 저의 첫 질문이에요. 오늘 좋은 질문을 주신 분들에게 <이렇게까지 아름다운 아이들을 위한 세계의 공간>이라는 책을 선물하신다는 이야길 들었는데, 이 책에는 ‘826 발렌시아(826 Valencia)’라는 공간이 나옵니다. 826 발렌시아는 그림책 작가인 데이브 에거스와 그의 동창이었던 바브 버슈라는 사람이 샌프란시스코의 미션 디스트릭트에 있는 한 가게를 빌리게 되면서 시작하는데요. 두 사람은 어린이들을 위한 글쓰기 센터를 운영하려고 했대요. 자기 출판사를 작게 내고 동네 어린이를 위해 작게 글쓰기 교습을 해주는 곳을 열려고 했는데, 그 지역이 상업지구여서 교육적 목적의 공간을 열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여기서 해야 할까 하니 소매상업지역이니 물건을 팔면 된다고 했대요. 그래서 ‘해적상점’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상상 속에서 꿈꿔왔던 물건을 팔면서 그곳에서 작업도 하고 글을 쓰는 곳을 만들게 된 것이 826 발렌시아의 시작이에요. 데이브 에거스는 어떻게 해적상점을 설계할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거기에 냅킨이 있었다는 거에요. 냅킨을 펼쳐두고 거기에 장소를 스케치했대요. 그것을 보고 목공하시는 분들이 오시고 철거하시고 자원봉사자들이 설계도를 보고 해적상점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샹들리에를 걸어야겠다고 했는데 살 돈이 없어서 중고상점에서 구해 걸고, 카펫은 자기 집에 굴러다니던 것을 가져다 놓고.. 그렇게 해서 공간을 열었다고 해요. 이곳이 오늘날 세계 곳곳에 자리잡고 있는, 어린이들의 글쓰기 작업실 첫번째 모태가 되었다고 해요. 저는 826 발렌시아가 냅킨 한 장으로 시작했다는 것에 주목했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이 아주 대담하고 웅장한 공간에 들어와서 환영받으며 작업하면 좋을 것 같은데 그러려면 그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느낄 수 있어야 하고, 사실 그 상상은 아주 작은 데에서 시작되었다는 거죠. 저는 이 냅킨 한 장에서 출발해서 근사한 해적상점이 등장하게 되는 과정, 그런 것이 어른들이 어린이들에게 할 수 있는 일 중에 아주 멋진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발렌시아 뿐 아니라 826 미시간 (애나버 앤 입실란티) 등의 장소들이 곳곳에 있는데요. 꼭 미국에만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나라에도 어린이를 위한 작업실이 만들어져 있죠. 이 공간도 바로 그런 곳입니다. 저희가 어린이가 이야기를 누리고, 책을 읽을 권리를 이야기하는데 도구를 사용할 권리에 대해서는 폐쇄적인 것이 사실입니다. 저는 대담하고 웅장한 공간에 와서 환영 받는 아이들이 자기만의 작업을 해보는 자유까지 누리게 될 때 정말 의미를 갖는다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대부분의 웅장한 공간들은 누군가가 어린이들을 위해 만들지만, 어린이 자신이 거기서 뭘 해보기는 어렵죠. 지금 여기가 826 미시건에 있는 ‘로봇수리점’이에요. 로봇수리점에 와서 아이들은 자기만의 재미있는 작업을 하고 고치기도 합니다.


아까 말씀드린 데이브 에거스의 그림책을 제가 번역한 적이 있거든요. 숀 해리스와 같이 작업한 <시민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하는 책인데, 이 책도 페이퍼컷으로 입체감을 주는 작업방식으로 이미지를 구성한 책입니다. 이 책을 보면 표지에 삽이 있어요. 우리가 도구를 사용하는 권리를 말할 때, 실제적인 도구를 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린이와 톱이라고 생각하면 위험하다고 생각하는데, 어린이가 그 위험을 통제하고 관리하도록 돕는 것이 어른의 역할이고, 좀 더 안전한 장소와 도구를 마련하는 것이 우리들의 역할이지 톱은 안된다고 말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아까 말씀드린 어린이작업실이 전 세계에 많은데, 아이들이 거기에 어떤 도구를 가져오면 좋을까 물어보면 베이글을 삶는 통이나 모래도 가져오고, 자기가 보석을 담을 삼나무 둥치를 가져오기도 하고 그랬다고 해요. 상상을 실현하고 그것을 실물화시킬 어린이 시민의 권리는 어디까지 유보되어야 하는가 하는 것이 제가 고민하는 문제입니다. 이 책에는 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곰도 시민이에요. 시민은 분홍바지를 입을 수 있어요.” 많은 독자들이 이게 무슨 소리지 싶을 수 있는데, 여기 그림에 보면 곰이 분홍색 작은 티팟에 차를 따르고 있어요. 곰은 몸집이 크고 둔감한 손 동작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상상되는데 여기 보면 곰은 조심스럽게 누군가를 대접하고 싶은 섬세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곰도 분홍바지를 입을 수 있어요. 여기서 분홍바지는 여기서 일종의 우리와 차이가 있는 삶의 양태를 가진 사람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요. 시민 중엔 비슷한 사람만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곰도 있는 거고, 어린이와 같은 작은 사람이 거대한 망치나 삽을 사용할 수도 있는 거죠. 이 책에서 또 “시민이 되는 건 무언가 하는 거에요” 라고 하는 말이 나오는데 저는 이 부분에 밑줄을 긋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삽을 들고 펜을 쥘 수도 있는데, 두 가지를 분리해서 생각한다는 거죠. 하지만 삽과 바느질, 그리고 펜을 드는 건 모두 연결된 작업이고 이야기를 만드는 작업의 일부라 생각합니다.



내려가기와 올라가기: Top-down과 Bottom-up


그렇다면 어떤 형태로 이야기를 만들고 실현할까 생각해볼게요. 유령 모양의 소금통과 후추통 사진을 보여드리는데, 제가 새얼문화재단에서 나오는 <새얼문예>에서 황혜신 어린이 (경기도 초림초 5학년)의 <유령>이라는 작품을 보았는데요, 거기서 보면 아이가 만화를 읽다가 유령을 보고 너무 무서워서 식탁에 가서 소금을 가져다가 그 책에 막 뿌립니다. 이야기 속 상상의 두려움이 실물의 소금 뿌리기로 해결되는 거죠. 두 가지가 어린이에게는 분리되는 일이 아닌 거에요. 우리는 만화를 읽는 건 상상의 작용, 소금을 뿌리는 건 실제 행동이기 때문에 두 가지가 다르다고 보지요. 그러다 어린이는 실제 식탁에 있는 소금병으로 자기 상상 속의 유령을 물리치는 데에 사용하는 거죠. 이야기라는 건, 자신의 두려움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고 사랑에 대한 이야기일 수 있는데요. 그런데 그 모든 것이 결국 텍스트로 정리가 되었을 때 타인에게 전달하기 좋은 형태로 가공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826 글쓰기 센터나 모야 어린이작업실 같은 곳에서 글쓰기를 위해 어린이들에게 뭐가 필요한지 물어보면, 자신이 작업할 수 있는 구체적인 사물들이 필요하다고 많이 이야기를 합니다. 발렌시아에서는 학생이 나무 요새를 만들어달라고 한 적이 있대요. 또 숲 속 생물상점 이런 곳에 가서 매혹적인 생물을 만나고 그 경험을 가지고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이야길 했다고 해요.


제가 내려가기와 작업이라는 말을 드리고 싶어요. 구체적인 사물로 내려갈수록, 구체적으로 사물을 정교하게 만들어볼수록 머릿속에 모호했던 이야기가 구현되는 걸 볼 수 있어요. 그건 창작의 기본적인 과정인데, 대부분의 어린이들에게 이 내려가기를 허용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다는 거죠. 실물과의 만남에 대해서요. 또 올라가기와 작업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은데요. 내가 구체적으로 뭘 만지고 만들었다 할 때, 그걸 추상화해서 이야기가 되는 과정은 올라가기라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을 탑다운, 보텀업 이라는 말도 쓰는데요. 올라가기를 위해서는 언어를 사용하는데, 언어는 추상적인 것이고 관념을 형상화 하는 것이죠. 관념을 가장 형상화하는 것이 시라고 볼 수 있는데요. 시를 쓸 때 보면, 내 마음에 어떤 생각이 있는데 그걸 시로 만들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기다려야 하죠. 시가 내 마음을 함축해줄 때까지 생각하며 기다리는 시간이 있는데요. 그 시간을 견뎌낼 수 있게 만드는 것도 작업입니다. 작업을 통해서 지루한 시간을 혼자서 꾸려가는 법을 배운 아이들은 이야기를 기다리는 법, 자기 안에 시간이 떠오르는 지연된 시간을 견디고 즐기는 법을 알게 돼요. 요즘은 뭐든 질문하면 답이 나와야 한다고 말하죠. 답이 바로 나오면 똑똑한 아이이고, 생각하고 있으면 별로 안 똑똑하다거나, 바로 바로 답이 나오는 질문을 하고 대답하는 사람이 좋은 교육이라고 생각해서 조금 생각하고 기다리고 지연되는 형태, 오랫동안 관념으로 만드는 형태의 교육은 쓸 데 없는 것이라 말하기도 합니다. 문학적인 작업은 대부분 이런 시간을 견뎌야 하거든요. 계속 길게 생각하는데 생각 안나면 “그만 생각해. 안되나 보지.” 하고 포기를 가르치기도 하고, 문제풀이라고 하는 요약된 형태의 답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그게 저는 어린이들에게 궁리할 시간과 권리를 빼앗는다는 생각을 합니다. 

제가 책을 하나 가져왔는데요. 송미영 작가의 <가정통신문 시쓰기 소동> 이라는 책이에요. 비둘기초등학교 라는 곳에서 가정통신문을 내보내는데, 시를 써서 발표하는 대회를 열겠다고 하는 겁니다. 그러자 동네 사람들이 아이들과 다같이 시를 쓰기 시작하고 무엇이든 재미있는 것만 보면 다 시로 만들어보는 장면을 그린 동화입니다. 지역의 어린이, 어른 모든 주민들이 시를 쓰기 위해 자세히 들여다보고 곰곰히 생각해요. 그러다가 심심해도 시를 쓰고, 재밌어도 시를 쓰고 시를 쓰기 위해 기다리는 법을 알게 되는 거에요. 우리는 담화와 소통의 욕구를 가지고 있는데 그러려면 자신의 내면에 대해 이해해야 합니다. 그건 쉽게 이해되지 않기 때문에, 어린이는 외연의 사물들을 만지면서 자기 내면과 비유할 수 있는 장면을 구체화시켜갑니다. 그리고 그 곳에 사물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있습니다. 그 시간은 대부분 묵음의 시간인 거죠.


처음에 소개드린 책에서는 전 세계 여러 작업공간들을 살펴볼 수 있는데, 그 중 영국 로더럼의 그림상회의 '인사이드 스토리(Inside Story)'라고 하는 프로젝트가 나와요. 그림상점을 외부로, 그리고 학교 안으로 가져갈 수 있는 몰입형 극장을 만들어야겠다고 하면서 '인사이드 스토리'라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죠. 교실을 대신해줄 이동식 간이극장. 어린이들은 자기가 만든 이야기 무대 안에서 직접 연기하고 작업해볼 권리를 가져보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에게도 이런 이야기의 무대가 있었습니다. 그게 구비문학의 무대, 옛 이야기의 무대였다고 생각하는데요. 어린이는 유난히 글보다 말에 대한 의존도가 높죠. 글이 술술 써지는 건 아무래도 초등 고학년이 올라가야지만 잘 쓰기 시작하고 대부분의 어린이는 말로 하지요. 말로 전승되는 이야기의 위상이 어린이들에게 큰데요, 그것이 그냥 나오는 게 아니라 작업을 하면서 중얼중얼 나오는 거죠. 그게 아이들에게 창작의 출발점이 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자르기와 붙이기:  부분의 합과 전체, 느낌과 생각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알려드릴게요. 시쓰기 소동에 나오는 지수라는 아이의 시인데요, ‘참기름 파도’라는 글이 있어요.

“뜨겁고 달콤한 흰쌀밥 한 덩이에 눈 내리는 소리
날달걀을 깨면 미끄럽게 밀려오는 파도
간장 한 스푼에 깊은 바다 냄새
숟가락 노 몇 번 젓고 나면 파도가 잔잔해진다.”
- 지수의 시, ‘참기름 파도’ 중에서


이런 시에요. 저희 계란밥 만들 때 참기름 붓는데 그것을 표현한 어린이의 시죠. 학생들이 글쓰기 연구실로 가기 위해서는 문학 작품으로 이루어진 책장 계단을 올라가서 자신의 글을 쓰는 것처럼, 또 계단을 내려가 작업을 하면서 생각을 구체화하는 것처럼, 우리에게는 이렇게 도서관과 작업실은 연결된 공간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이런 시를 읽으면서 하게 됩니다.


책에 파묻히는 시간은 어린이가 누군가하고 자기가 작업할 이야기를 고민하는 시간들이죠. 작업의 원칙은 사실은 일반적 규칙이 통하지 않는 공간이어야 하는 거에요. 일반적 규칙이 통하는 곳은 새로운 걸 만들기 어려운 곳이니까요. 또 대부분의 어린이들은 여러 종류의 디지털 화면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보고 만질 수 있는 조형물 같은 걸 통해서 매력적인 사물을 생각하는 시간이 부족하고, 이야기를 읽을 때 평면적으로 생각하게 되죠. 그래서 작업실과 이야기의 거리가 가까우면 내가 이야기를 생각하고 책에 파묻혀 있다가 그걸 만들어보고 다시 또 책에 돌아가고 그런 것이 수월하게 됩니다. 하나의 이야기를 쓰는 것과 하나의 사물을 만드는 것의 의미의 접점에 있는 사물이 책이라는 생각이 들고 바로 그런 책을 만드시는 분이 백희나 작가님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저희가 작업을 하면 스스로 작업을 분석하게 되는데, 그 작업을 통해 창의적이고 용감하게 됩니다. 저는 이 말이 참 좋아요. 만든다는 건 당연히 창의적인 것인데 용감하다는 말이 뒤에 붙어서요. 창의적이고 겁 많은 우리들이 창의적이고 용감한 사람들이 되는 것. 굉장히 축소된 세계에 위축된 사람이 대담하고 웅장한 공간에서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 톱을 들고 망치를 쓰는 과정에서 그 용기를 배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저는 내면적 용기를 키우는 시간이 분석의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잘 만들었나, 이대로 하면 잘 작동이 되나, 내가 이걸 만들면 무엇에 쓰이나 하는 것. 그 분석은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내가 만든 게 제대로 된 건가 하고 돌아보는 비평적 경험입니다. 이것은 책을 만드는 데에서도 포함되는 일이어서 글쓰기 워크숍의 마지막 단계는 항상 출판이잖아요. 그런데 어린이들에게 어른들은 이야기를 써보라고는 하지만 출판해보도록 하지는 않는데, 종이로 책을 만들어서 그 책을 출판해보고 독자를 만나는 경험을 하는 것까지가 글쓰기에서 상당히 중요한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독자로 생각하고 이용자가 되어보는 일들, 그래서 생산하고 공유하고. 그런데 요즘은 디지털 시대이기에 온라인에서도 생산과 공유의 경험을 나눌 수 있지요. 실제 그런 활동을 많이 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역시 책이란 건 결국 오프라인상에서 만져지는 것이기에 그 책의 실제 작업과 경험을 해보는 것은 더욱 소중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만들고 쓰는 사람으로서 나의 독립'을 경험하는 것. 이건 '내가 작가야, 내 작품이야'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게 그런 용기의 기본인 것 같거든요. 그런데 우린 '늘 니가 만든 거 맞아? 니가 만든 건 별개 아니야.' '애걔, 그런 조그만 걸 만들다니, 다음엔 더 큰 걸 만들어봐' 하고 아이를 위축시키죠. 하지만 '아니야, 내가 작가고 내가 원하는 걸 만들고 싶어' 하는 거죠. 그것이 바로 자아의 독립과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작업과 어린이


그래서 ‘상상의 시민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돼요. 최근 그림책선언문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책은 심지어 아이들에게 이상한 꿈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림책 선언문을 쓴 사람 중에는 지금 우리나라에 와있는 맥 바넷과 존 클라셋도 있는데요, 맥 바넷은 또 826 발렌시아에서 일했던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희가 이런 선언문을 우리 입장에서 쓴다면 어떤 내용을 쓰게 될까? 어린이와 책에 대한 선언문은 어떤 게 좋을까 이런 생각을 해보게 돼요. 

오늘 우리가 '뚝딱 뚝딱'이라는 제목으로 컨퍼런스를 열게 되는데, 도서관과 뚝딱 뚝딱, 책과 뚝딱 뚝딱, 풀과 뚝딱 뚝딱, 톱과 뚝딱 뚝딱. 이런 것이 우리들의 출발하는 슬로건이 되지 않는가 싶습니다. 아까 상상의 시민성이라는 말씀을 드렸는데 마음껏 상상하고 마음을 모아서 상상하는 것이 시민성의 기본이란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더 많은 뚝딱 소리가 들릴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도서관과 작업실, 어린이의 연결고리의 핵심이라는 생각이 들고요. 실물 작업을 통해 신체 감각을 환기하고 자연과 사회의 일원으로서 자신을 인식하게 되고 그것을 통해 책도 만들고 이야기도 사물도 만드는 그런 공간이 이 세계에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도서관의 어떤 21세기적인 새로운 모델이 '작업실과 도서관'이 아닐까 생각을 하면서 이 발제를 해보았습니다.  저희들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작가님을 모셔보겠습니다. 뚝딱 뚝딱의 실제 주인공이죠, 이 분이야말로 세계적 뚝딱 뚝딱, 월드 클래스 뚝딱 뚝딱, 뚝딱 뚝딱의 대마왕? 백희나 작가님을 모시겠습니다. 




두번째 글 : 백희나 작가 & 김지은 평론가 대화록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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