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의 연대
나는 1984년에 태어났다.
민주화의 물결이 막 지나간 거리의 공기가 아직 따뜻하게 남아 있던 시절이었다.
부모님은 종종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 세대는 다행이야. 그래도 이제는 말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으니까.”
그 말 속에는 안도와 슬픔이 함께 묻어 있었다.
텔레비전 뉴스에서는 노동자들의 파업 현장, 학생들의 외침이 매일같이 흘러나왔다.
어린 나는 그 뜻을 다 알지 못했지만,
어른들의 굳은 얼굴과 낮은 한숨 속에서
‘세상엔 쉽게 말할 수 없는 진심이 있다’는 것을 배웠다.
아버지는 평범한 직장인이었지만,
회사의 구조조정과 파업을 가까이서 겪으며
‘노동’이라는 단어가
가족의 밥상 위에 떨어지는 무게로 다가왔다.
어머니는 묵묵히 삶을 이어가며 한 번쯤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자도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
그 한마디는 내 마음속에 오래 남아,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되었다.
대학교에 들어가던 해, 나는 캠퍼스에서
‘자유’와 ‘평등’이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체감했다.
도서관 앞 현수막에 적힌 문장들이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누군가의 삶과 눈물로 적힌 진심임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깨달았다.
시대의 상처는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그건 늘 우리의 일상 속에서,
가족의 대화 속에서,
그리고 나의 성장 속에서 흐르고 있었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글을 쓴다.
나의 글 속에는 부모 세대가 지나온 상처의 흔적이 있고,
그 상처를 껴안고 자라난 나의 이야기가 있다.
민주화, 노동, 여성의 권리, 그리고 교육의 평등.
이 모든 단어는 나의 가족사를 관통하며
지금의 나를 만든 문장들이다.
이제 나는 그 시대의 상처를 치유하는 마음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써 내려간다.
상처는 아픔이지만, 동시에 방향이 된다.
그 눈물과 침묵이 있었기에,
나는 오늘 이렇게 쓰고, 말하고, 살아간다.
그리고 나는 ‘민힐러’로서 기록한다.
한 사람의 기억이 곧 한 시대의 이야기이기에,
이름과 시대를 잇는 마음으로 오늘의 글을 남긴다.
그 글이 누군가의 마음에 닿아,
또 다른 치유와 희망의 문장이 되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