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가장 설레게 하는 목표

나에게 어긋나지 않는 삶을 사는 것

by 민힐러

내년을 떠올리며 이루고 싶은 목표를 생각해보았을 때, 의외로 아주 구체적인 성취나 숫자가 가장 먼저 떠오르지는 않았다. 몇 권의 책을 더 내고 싶다거나, 어느 정도의 결과를 만들어내고 싶다는 계산보다 먼저, 마음이 반응하는 장면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아침에 일어나 오늘을 어떻게 살아도 괜찮을 것 같은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나의 모습이었다. 억지로 마음을 다잡지 않아도 되고, 스스로를 몰아붙이지 않아도 괜찮은 상태. 하루를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지쳐 있지 않은 나. 그래서 내가 내년을 떠올리며 가장 설레는 목표는 결국 하나로 정리되었다. ‘나에게 어긋나지 않는 삶을 사는 것.’


이 목표가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지금까지의 내가 늘 나보다 앞에 무언가를 두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일의 기준, 관계의 균형, 타인의 기대, 그리고 ‘이 정도는 해야 한다’는 보이지 않는 기준들. 나는 그 기준들을 외면하지 않았고, 꽤 성실하게 살아왔다. 해야 할 일은 해냈고, 맡은 역할도 책임지려 애썼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자주 지쳤고, 지친 이유를 정확히 들여다볼 여유는 없었다. 내 마음을 확인하는 일은 늘 마지막 순서였고, 괜찮은 척하는 태도는 어느새 습관처럼 굳어 있었다.


그래서 내년의 나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살고 싶다. 잘 해내는 사람보다는 내 마음을 자주 확인하는 사람이 되고 싶고, 남들이 보기 좋은 목표보다 내가 오래 끌고 갈 수 있는 목표를 선택하고 싶다. 결과가 빠르게 드러나지 않아도, 설명하기 쉽지 않아도 괜찮은 방향. 그래서 이 목표가 설레는 이유는, 나를 더 바쁘게 만들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덜 소모시키고 더 나답게 만들어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마음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일이 지금, 내 삶 한가운데에 있다. 나는 현재 공저로 종이책을 쓰고 있고, 이 책은 다음 달에 출간될 예정이다. 혼자 조용히 써 내려가던 글이 아니라, 각자의 이야기가 모여 하나의 책이 되어가는 과정 속에 있다. 처음 이 제안을 받았을 때는 설렘보다 부담이 앞섰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이름을 올리는 일, 하나의 방향 안에서 글을 맞춰간다는 일은 결코 가볍지 않게 느껴졌다. 하지만 막상 글을 쓰기 시작하고, 초고를 쓰고 반복되는 퇴고의 시간을 보내다 보니 이상하게도 부담보다 설렘이 더 커졌다.


그 이유는 분명했다. 이 목표가 나를 증명하게 만들기보다, 나를 드러나게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책을 낸다’는 결과보다도, 글을 매개로 누군가와 생각을 나누고, 각자의 결을 존중하며 하나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과정 자체가 지금의 나에게 꼭 필요한 경험처럼 느껴졌다. 공저라는 형식은 완벽해야만 시작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각자의 진심을 들고 조심스럽게 함께 걸어가는 일이라는 점에서 지금의 나와 닮아 있었다.


서로 다른 속도와 목소리가 모여 하나의 책이 되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혼자서 모든 것을 잘 해내지 않아도 괜찮다는 사실을 배운다. 누군가의 문장이 나보다 먼저 완성될 때 느끼던 조급함 대신, 그 문장이 책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는 모습을 보며 안도하게 되는 순간도 생겼다. 비교보다는 연결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이 경험은 내가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일하고, 어떤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싶은지에 대한 힌트를 건네주고 있다.


이 책을 쓰는 동안, 나는 내년의 나에게 미리 몇 가지 약속을 하고 있다. 잘 쓰려 애쓰기보다 꾸준히 쓰는 사람이 되겠다는 약속. 남의 속도에 흔들리지 않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분량과 리듬을 지키겠다는 약속. 그리고 무엇보다, 내 이야기를 축소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꺼내놓겠다는 약속이다. 조심스럽지만 솔직하게, 과장하지도 숨기지도 않은 문장으로 나를 남겨보겠다는 다짐.




이 과정을 지나며 나는 이미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내 생각을 더 또렷하게 정리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고, 타인의 문장을 존중하며 내 문장을 다시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완성될 책 한 권보다 더 큰 변화는, 아마도 이 시간을 통과하며 만들어지고 있는 나의 태도일 것이다. 원고를 고치며 몇 번이고 같은 문장을 들여다보는 밤들, 마음에 들지 않는 문장을 지우고 다시 쓰는 순간들조차 예전처럼 버겁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이 일이 나를 소모시키는 방향이 아니라 나를 살아 있게 하는 방향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설렘을 조급함으로 바꾸지 않으려 한다. 다음 달 책이 나온 이후의 반응이나 결과보다, 지금 이 시간을 어떻게 통과하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믿고 싶다. ‘책을 냈다’는 말보다 ‘책을 만들어가는 사람이었다’는 기억으로 한 해를 남기고 싶다. 문장 하나에 마음을 담고, 그 마음이 누군가에게 닿을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믿어보며.


내년의 나는 더 많은 것을 이루기보다, 나에게 더 가까워지는 한 해를 살고 싶다. 이미 쓰고 있는 이 공저 책처럼, 나에게 어긋나지 않는 선택들을 하나씩 이어가며. 잘 버텼다는 말 대신 잘 살았다는 말을 나에게 해줄 수 있는 밤들을 조금 더 늘리며. 그 마음으로, 조용하지만 분명한 방향을 향해 다가오는 새해를 천천히 맞이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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