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키는 선

이제는 무너지지 않는 쪽으로

by 민힐러

예전의 나는 선을 잘 긋지 못했다. 어디까지가 내 몫이고 어디서부터가 타인의 몫인지, 그 경계를 굳이 나누지 않아도 괜찮다고 믿었다. 조금 더 이해하면 되고, 한 번 더 참으면 되고, 내가 한 발 물러서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게 관계를 지키는 방법이라고 배웠으니까. 그렇게 나는 점점 둥글어졌고, 부드러워졌고, 웬만한 일에는 모서리를 세우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관계는 유지되고 있는데 마음은 자꾸 닳아갔다.


누군가의 부탁이 겹치던 날, 이미 지쳐 있으면서도 괜찮다고 말하던 순간, 속으로는 벅차오르면서도 웃으며 넘기던 말들. 그 모든 장면 속에서 나는 늘 ‘좋은 사람’ 쪽을 선택했다. 대신 ‘편안한 나’는 자주 포기했다. 그렇게 반복하다 보니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지. 왜 나는 늘 이해하는 쪽이고, 맞추는 쪽이고, 참는 쪽일까. 그 질문은 누군가를 향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향한 것이었다.




나를 지키는 선은 사실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관계를 끊어내는 결단도 아니고, 차갑게 돌아서는 태도도 아니었다. 그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감당하겠다는 마음이었다. 내가 책임질 수 있는 감정만 책임지겠다는 다짐이었다. 상대의 기분이 가라앉아 있다고 해서 모두 내 탓으로 돌리지 않기, 누군가의 기대가 크다고 해서 그 무게를 전부 떠안지 않기. 어쩌면 나는 이제야 알게 된 것 같다. 모든 상황에서 이해심 많은 사람이 되는 것이 성숙은 아니라는 걸.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민힐러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두 개의 이름으로 살아가며 글과 기록을 통해 정체성과 감정을 탐구하는 민힐러입니다. 감성 콘텐츠와 퍼스널 브랜딩을 다루며, 진심 어린 문장으로 삶을 치유하는 힘을 전합니다.

202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8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58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이전 07화무너지지 않으려고 애쓴 날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