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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오는 날이다. 가을이 깊다. 충남에서 이곳 진주까지 단풍을 보며 왔을 것이다. 오랜만에 백화점에 같이 갔다. 층마다 둘러보고 마음에 드는 예쁜 옷을 찾았다.
옷은 입어봐야 내 옷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 난 바로 탈의실 앞에 섰다. 내 옆으로 짧은 치마를 입은 사람이 보였다. 그녀가 말하는 순간 여성이 아닌 걸 알았다. 굵은 남성의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한데 왜 여성처럼 꾸몄을까. 얼굴은 곱게 화장까지 했다.
동생은 내가 잠깐 옷을 입어보는 사이에 대화를 나눴다고 했다. 요즘 당당하게 커밍아웃하며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고 나에게 별거 아니란다. 나는 고지식한 사람인지 약간의 거부감이 들었다.
밥을 먹지 못할 정도로 큰 시련이 찾아왔을 때 한의원에서 진료받은 적이 있다.
한의사 선생님은 내 창백한 손을 보시면서
"밥을 잘 안 먹나요?”
"부모님처럼 믿고 따르던 분이 돌아가셔서 힘듭니다.”
"진맥을 해보니 뇌 구조가 튼튼하여 정신은 강한데, 체력이 약하니 감성적 측면이 약하군요.”
마치 관상가처럼 내 몸 상태를 알려주셨다. 진찰은 금방 끝이 나고 3개월 동안 한약을 연하고 부드럽게 지어줄 테니 마셔보라 권하셨다.
“어떻게 진료하시기 전에 제 병과 처방을 내리시는 건가요? 신기하네요.”
“한방에서는 얼굴색과 관상으로 환자의 상태를 보는데 이를 망진*이라 해요. 관상 말고도 손가락의 길이로도 그 사람을 아는 방법이 있어요. 검지가 약지보다 길면 여성스럽고, 약지가 검지보다 길면 남성스러운 성향이 있지요.”
“민희 씨는 검지가 길더군요. 감각이 섬세할 가능성이 높아 보였지요. 그러니 슬픔의 감정이 깊었던 거고요.”
그녀의 손가락은 검지가 길었을까. 약지가 길었을까. 눈으로 흘깃 봤을 때 검지가 길었다. 그래서 그가 남성성을 버리고 여성처럼 꾸몄던 걸까. 단정 짓기는 어렵다. 살아온 삶의 방식은 우리 얼굴에 묻어난다. 마음도 손에 투영된다.
비영리 단체에서 활동하면서 교육을 받기 위해 오신 여성 회원님들이 오고 가실 때마다 한 가지 확인해 보는 것이 있었다. 바로 검지와 약지의 길이를 살피는 일이다. 여성의 98%가 약지(네 번째 손가락)가 길었다. 다만 여성의 손가락만 살핀 것이고 한국 여성의 전체를 관찰하고 내놓은 결과가 아니기에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은 분명 심상치 않아 보인다. 여성의 신체는 여성 호르몬의 비율이 높아야 인체 균형이 편안하다고 한다. 여성 호르몬과 남성 호르몬의 비율이 불균형한 까닭은 우리가 섭취하는 작물에 원인이 있다.
본래의 성별 근원을 바꾸는 사람이 많아진다는 것은 인류에게 경고의 신호를 보내는 것은 아닐까. 요즘 먹을거리가 화학 물질이 함유된 식품이 많아지면서 여성의 남성 호르몬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식물을 인위적으로 변형하면 그 식물을 섭취하는 사람도 변형된다. 심각하게는 신체의 변이도 가져올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변형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악화되어 언젠가 우리 사회 표면에 떠오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망진望診 의사가 눈으로 환자의 의식 상태, 얼굴의 빛깔과 윤기, 체격, 영양 상태, 몸가짐, 피부, 혀, 눈, 손톱 등 몸 겉면의 여러 부위와 빛깔과 성질, 형태를 살펴보는 진찰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