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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민희 Dec 21. 2023

박각시가 오는 해질녘


  우리 마당 입구에 무궁화 한 그루가 서 있다. 처음 나무를 심었을 땐 풀에 뒤덮여 잘 보이지 않았다. 어느샌가 보니 내 키를 넘어설 만큼 훌쩍 자라 있었다. 잘 자란 만큼 꽃봉오리도 여러 개 달렸다. 무궁화 한 송이가 활짝 피어나길래 스마트 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그 순간 꽃으로 향하는 녀석이 보였다. 

   벌 같기도 하고 새 같기도 하다. 먹이 사냥하는 방법은 벌. 날기는 새의 모습이다. 마치 벌새 같다. 사진에 담으려고 애써보지만 날쌔서 쉽사리 카메라 렌즈 안에 갇히지 않는다.

 그 녀석의 생김새를 말해보자면 길고 뾰족한 입이 유달리 눈에 띈다. 아마도 긴 뾰족한 입으로 꽃의 꿀을 먹는 것 같았다. 자세히 보니 날아다닐 때는 긴 입은 동그랗게 말려져 있기도 했다. 

  이 곤충의 이름은 뭘까 궁금해서 네이버 AI로 검색해 보았다. 다양한 곤충의 사진들이 나온다. 몇 개의 사진을 훑어보니 박각시 나방이란다. 무늬에 따라 작은검은꼬리박각시 나방이라 하거나 박고리박각시 나방이라고도 한다. 이 곤충은 기다란 입을 쭉 내밀어 꿀을 빨아들이는데 사진에 담기가 힘들다. 꿀을 냠냠 빨아 먹고 잽싸게 이동하기 때문이란다. 

  박각시는 나방으로 분류하는데 다른 나방과 다르게 생김새가 참 귀엽다. 보통 나방의 날개는 색이 어둡고 날개가 겹쳐 있어 호감형은 아니다. 한데 박각시는 나비처럼 날개가 곱고 화려해 보인다. 날갯짓이 여느 나방과는 다르다. 나방은 어둠 속에서 작은 불빛을 찾아 날아드는데 박각시는 각시란 명칭이 붙어 설까 늦은 오후에 활동한다. 어둠이 내려진 깜깜한 밤보다 해 질 녘 붉은빛을 좋아하나 보다. 박각시와 만나지는 나의 해 질 녘은 어떠한가. 빛이 늘어지는 오후가 되면 난 밥을 먹는다. 먹고 나선 바로 눕지 않고 책을 읽거나 소소하게 유튜브 영상을 본다. 그도 시들하면 잠시 작은 온실로 간다. 폴리카보네이트로 만들어진 온실에 들여보낸 꽃들을 따라 안으로 들어오기도 하는 박각시. 어제도 오늘도 온실에 들어서니 박각시와 마주친다. 날이 추워지니 밖에서 보질 못했는데 꽃들이 온실로 들어온 후론 날마다 만난다. 좁은 온실이 박각시에겐 넓은 세상처럼 보이나 보다. 움직임이 빨라 날개가 정지해 있는 걸 보기 어렵다. 초고속 날개 회전이 돌아가는 것 같다. 저렇게 움직이자면 엄청나게 먹고 비축해 두어야겠다. 무거우면 날기가 어려울 테니 말이다. 나는 곤충의 숙명이겠지.

  온실 안 담배꽃 화분 사이로 박각시가 쉴 새 없이 오고 간다. 담배꽃이라 불리는 이 꽃은 작고 좁은 꽃잎으로 앙다물어진 것처럼 생겼다. 박각시는 비행하면서 이 꽃도 정확하게 겨냥한다. 주둥이에 길게 나와 있는 빨대같이 생긴 것이 마치 손으로 꽃을 잡고 들이대는 것처럼 정확하게 꽂힌다. 나방도 꿀을 따러 꽃을 찾아오는구나. 왜 난 항상 나비와 벌만 꽃을 찾아온다는 관념에 사로잡혔던 것일까. 박각시의 해 질 녘은 자줏빛 구름처럼 아름답게 날아오르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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