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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희 Aug 20. 2022

유럽 캠핑 여행, 세 번째에 비로소 끝이 났다.

 텐트 밖은 유럽이 끝도 없이 반복되었던 나의캠핑

 텐트 밖은 유럽이라는 프로그램을 처음 보던 날,

늦은 밤 12시 고요한 거실에 오롯이 앉아 화면을 우러르듯 티브이를 마주 보고 앉았다.

비행기에서 내려 바로 들리던 공항의 소란스러움, 길을 알려주는 낯선 언어의 이정표, 어설픈 영어, 모든 것이 불안해 보이는 여행자의 모습. 그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 내가 여행을 시작하는 듯 바로 동화되었다.

 렌터카의 열쇠를 받아 들고 익숙하지도 않은 차를 살펴보고 시동을 걸고 아직 마음의 준비도 안 되어 있는데 펼쳐지는 숨 막히는 풍경. 나는 점점 티브이 화면 앞으로 몸을 당겨 앉았다. 낮아졌다 높아지다 넓게 퍼지는 능선, 서울과 다른 색의 하늘, 아직 익숙하지 않은 자동차는 어쨌든 굴러가기 시작했다.

아.. 탄식과 같은 소리를 냈다. 저기 내가 수 없이 다녔던 나라들인데 눈이 그렁그렁해졌다. 너무 익숙해서 너무 가보고 싶은 곳 이어서 반가움이 감동이 되어 울컥했다.




텐트를 치며 여행을 시작한 건 물론 치즈 때문이었다.

치즈를 보려면 산골 농장을 가야 했고 농장 근처는 대부분 인적이 드물었다. 도심의 관광이 아니었기에 어느 지역에서 며칠을 머물지 시간을 계산할 수 없었고, 찾아갈 치즈 농장에서 촬영 허락을 해주는 날까지 대기하듯 기다려야 했다. 이러하다 보니 이동수단은 당연히 자동차가 되었다.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 캠핑장, 내비게이션이 없을 때여서 미쉐린 지도와 나침반이 도구였던 때 2006.

  

 봉주르 하고 내가 캠핑장에 들어서면 캠핑장 주인은 속사포처럼 질문을 쏟아냈다.

"몇 명인가요? 며칠 머물 건가요? 차는 있나요? 텐트는요? 전기는 사용하나요? 여권 주세요."

첫 캠핑장에선 어찌할지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질문의 순서대로 대답을 했다.

그리고 더 원하는 질문이 있을지 자동차에 있는 물건이라도 모두 꺼내 보여 줘야 하는지 공항의 입국심사 같은 긴장감이 들었다.

 그 캠핑장은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 지역에 있었다.

까망베르 치즈의 원산지 마을을 찾아 파리에서 약 200km를 북쪽으로 올라가 찾은 캠핑장은

넓은 잔디밭에 캠핑할 구역이 직사각형으로 가지런히 정비되어 있었다. 주인은 나에게 차를 잔디 위에 주차해도 된다고 했다. 너무도 고른 잔디 위를 자동차 바퀴가 누른다는 게 익숙하지 않아 정말 차를 여기에 올려도 되는지 물었다. 우리나라에선 잔디는 밟는 것이 아닌 관상용 이기에 주차하다 바퀴에 눌린 잔디가 죽을까 봐 걱정이 되었던 게다.


 이 전에 한 번도 텐트를 쳐 본 적 없었기에 우선 텐트의 모양 예측이 그러하듯 폴대를 연결해 텐트의 겉 부분 구멍마다에 끼워 넣었다. 텐트는 다행히도 모양을 잡아갔다. 차에서 물건들을 꺼내 텐트 앞에 늘어놓느라 몇 번을 왔다 갔다 해 본 뒤에 자동차의 트렁크가 텐트와 마주 보고 있어야 동선이 짧아 짐을 깨달았다. 차를 다시 주차하고 전기를 끌어와 물을 끓이고 밥을 해결하고 첫 캠핑은 어떻게 보냈는지 세세한 기억은 잘 안 난다.

 단지 다음날 아침, 그렇게 고생하며 설치한 텐트를 다시 접어야 하고 그보다 먼저 아침 식사와 샤워를 끝내야 하고 갈 곳의 위치를 지도에 표기해 뒀어야 하고 캠핑 자리를 깨끗이 치운 뒤에 내가 그곳을 떠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텐트를 펼치는 것도 힘들었는데 흔적도 없이 깨끗하게 텐트를 접고 자리를 정리해야 함이 캠핑임을 몰랐다.

모든 일을 정리하는데 세 시간이 소모되었고 그 뒤 탈진이 되어 캠핑장을 떠날 수가 없었다. 이걸 매일 해야 한다니 앞날이 아득했다.

캠핑이 익숙해지자 텐트는 집이 되었고 밥도 먹고 일기도 쓰고 일정도 정리하는 아늑한 공간이 되었다. 하지만 알프스 근교에서는 텐트가 얼어 버릴 만큼  추위에 약했다. 2006.
프랑스 어느 국도에서 목적지에 근접한 뒤의 여유 2006.
체력을 많이 소모해서 인지 파스타를 팬에 가득해도 고작 저녁 한 끼에 끝났다. 정말 많이 먹으며 지냈다.

 캠핑장 생활은 생각보다 빠르게 익숙해졌다.

나의 여행 순서는 전통 치즈 원산지 마을을 먼저 찾고 그 마을 근처의 캠핑장을 찾는 방식이었기에 인적이 드문 산골에서 캠핑장을 수월하게 발견할 수 있는 프랑스는 최적화된 나라였다.  프랑스의 캠핑장은 땅의 질이 좋아 텐트를 설치 후 팩을 단단하지만 부드럽게 박을 수 있었다. 텐트 사이트가 잔디로 되어 있어 푹신하기도 했고 더구나 혼자 캠핑할 경우 15유로(2만 원) 이내로 할 수 있을 만큼 시설 대비 다른 나라보다 저렴했다. (물론 20km를 돌아도 못 찾는 곳이 있긴 했다.)


 두 달을 넘게 했던 2006년의 프랑스, 스위스 캠핑을 끝낸 뒤 더 이상의 유럽 여행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여행 시작 때와 달리 뼈만 앙상하게 남고 시커멓게 타버린 내 모습은 어느 나라의 난민이라 믿을 만큼 초췌함 자체였다. 더구나 텐트로 하는 캠핑은 안전의 방어 능력이 전혀 없었다. 텐트는 밖의 소리를 흡수해서 더 크게 들렸는데 그 때문에 텐트 주변을 지나가는 옆 캠퍼의 발자국 소리에도 나는 소스라치며 잠을 깨곤 했다. 시골의 한적한 캠핑장에서 체구가 작은 여자의 텐트는 마음만 먹으면 금세 손상시킬 수 있었다. 비가 오면 폭우처럼 내리는 스위스는 이러다 텐트가 떠내려 갈까 텐트 주변에 물길을 내야 했다. 그렇게 불안했던 텐트 캠핑은 2008년 이탈리아 파스타 여행에선 자동차로 바뀌었다. 방법을 달리했다는 이유로 여행은 또 시작되었다.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레스토랑에서 운영하는 캠핑장 2008.
자동차 캠핑은 무엇보다 텐트를 아침저녁으로 펼치지 않아도 그 안을 작업장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2008.
이탈리아 시칠리아 남부 캠핑장. 바닷가 앞이어서 밤에 파도 소리가 들렸다. 2008.
햇살이 좋은 시칠리아 답게 빨래를 기분 좋게 말릴 수 있었다. 2008.


 이탈리아 캠핑은 자동차 덕분에 많이 수월했다. 매번 텐트를 펴고 접고 하는 수고로움 대신 자동차의 짐을 한쪽으로 밀고 의자를 눕히고 자동차 창문에 기다란 원단을 커튼처럼 붙이면  차 안이 아늑한 방으로 바뀌었다. 늦은 밤 한적한 캠핑장에서도 차 문만 단단하게 잠그면 누구도 쉽게 침입할 수 없었다. 이탈리아의 거친 운전, 도심 주변의 흔한 차량 도둑들 때문에 했던 긴장 말고는 자동차 캠핑은 아주 성공적이었다.




'텐트 밖은 유럽' 방송에서 나온 곳과 같은 풍경이 멋진 캠핑장은 거의 가본 적이 없다. 그저 취재를 하는 동네의 가까운 캠핑장이 목적지였다. 그래서 방송을 보며 저렇게 좋은 캠핑장들이 수 없이 다녔던 지역에 있었구나 하는 안타까움이 일어났다. 여행 자체가 목적이었다면 절경의 좋은 곳들을 찾아낼 수 있었을 텐데 나의 캠핑이 운치가 아닌 서바이벌이었음이 아쉬웠다.

tvn 텐트 밖은 유럽  방송 화면

 여행을 하면 방송에서 처럼 드론으로 보이는 풍경은 볼 수가 없다. 그저 낯선 산길을 운전하느라 혹시 모를 도로 교통을 위반 하지나 않을까 매번 긴장하는 탓에 앞만 보고 달린다. 하지만 방송에선 그들에겐 곤욕이었던 구불구불한 길이 멋진 드라이브 코스였음을 드론의 시선 덕에 감탄하며 보게 되었다.

나의 여행이 아니라 남의 여행이어서 긴장감도 필요 없고 마음 놓고 즐길 수 있어서  3회까지 본 지금도 매번 티브이 앞으로 몸을 당겨 방송에 혼이 나간 듯 바라본다.




 2013년 세 번째 캠핑여행이었던 영국에서도 나의 캠핑장들은 그다지 멋스럽지는 못했다. 영국 여행 또한 자동차에서 숙박을 해결했는데 영국은 텐트가 없이 차에서 숙박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캠핑장이 많아 일일이 캠핑장에 전화를 해 보고 허락을 받은 후에 방문할 수 있었다. 스마트폰이 이미 일상화된 내비게이션이 당연히 된 시대에 캠핑 여행을 했지만 지도와 나침반으로 여행하며 가장 고생한 첫 캠핑이 오히려 운치 있었다.

수확 시기인 가을의 캠핑장에선 마음껏 농작물을 이용해도 된다는 넉넉함이 있었다. 영국 서식스 2013.
캠핑장 근처에는 농가를 따라 산책로가 표기되어 있어 숨어 있는 숲길을 걸어 볼 수도 있다.
캠핑장 근처 산책로는 종종 철문으로 막혀 있는데 젖소의 이탈을 방지하기 위함 이기에 문을 닫아 달라는 안내도 붙어 있다.
잔디로 드넓은 캠핑장에는 캐러밴 몇 대뿐이 없는  영국 남서부 랭포트 캠핑장.

 매번 치즈를 찾아 파스타를 찾아 자동차 여행을 끝낼 때마다 나는 다시는 여행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 위험한 혼자의 여행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세 번의 유럽 여행 동안 대략 40,000 킬로미터를 운전했던 나의 경험들은 이젠 차곡차곡 쌓여 아까울 만큼 좋은 기억이 되었다. 텐트 밖은 유럽이 끝도 없이 반복되었던 그 시간들을 감동스러운 기억으로 끄집어 내준 방송이 너무도 고맙다. 언젠간 다시 유럽에 간다면 그때는 여유롭게 유럽을 봐야지 정말 그런 꿈같은 일이 생기기를 바라본다.

 프랑스 콩테 마을.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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