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민희 Jan 22. 2022

치즈 책은 멈추지 않고 있답니다.

이렇게 시간이 흘러도 될까 ….

아침에 눈을 뜨면 나는 아직 정착을 하지 못한 나의 치즈 원고 걱정부터 한다.

하지만 그럴 여유 없이 아이 둘이 차례로 일어나고 큰아이 유치원 등원 준비를 하면서 집을 먼저 치우기 시작한다.

식기세척기의 그릇들을 제자리에 넣고, 물을 끓여 보리차를 우려 두 아이에게 나눠 주고, 아침으로 먹을 것들을 챙겨 식탁에 둔다.

그사이 둘째의 기저귀를 빼고 엉덩이를 씻기고, 첫째의 머리를 묶고 세수를 해 주고,  첫째에게 입을 옷을 챙겨 놓으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제야 한 템포 쉬는 마음으로 커피를 내린다.

위잉ㅡ 그라인더에서 커피가 갈리면 그 향 만으로도 휴식이 온다.

에스프레소의 크레마가 오늘은 잘 나왔는지 보고, 포타 필터를 빼서 물퍽은 아닌지 확인한다.

같은 커피콩이고 매일 같은 환경임에도 에스프레소는 내릴 때마다 맛이 바뀐다. 참으로 신기하게도.

고작 3분 정도 커피에 신경을 쏟아 휴식을 하면 어김없이 두 아이의 저지레가 방이던 거실이던 가득 쌓인다.

분명 6시 반에 일어났는데 시간은 벌써 9시다.  

"유치원 늦었어 얼른 먹고 얼른 가자, 이러다 오늘도 늦겠어"

이 말을 열 번쯤 반복하며 첫째 양말을 신기고, 마스크를 씌우고, 머플러를 채워주고, 점퍼를 입힌다.

그리고 얼굴 가득 음식을 묻힌 둘째를 붙잡아서 얼굴을 씻기고, 응가라도 했으면 모든 게 리셋되어 벗기고 다시 씻기고 숨을 헉헉대며 욕실에서 안고 나오면 나의 에너지가 다 빠져나간다.

둘째를 유모차에 앉히고 첫째가 유모차에 달린 휠 보드에 올라타면 빨라야 9시 반.

우리 셋은 비로소 집을 나설 수 있다.

둘째는 유모차에서 내리겠다고 소리 지르고 나는 휴대폰으로 뽀로로를 틀어 손에 쥐여준다.

첫째는 동네 고양이를 구경할 수 있는 골목으로 가자고 하고 나는 빠르게 갈 수 있는 학교 운동장으로

가자고 서로 의견을 내지만 웬만하면 첫째 의견대로 좀 돌아가더라도 고양이가 보이는 골목으로 걸어간다.

첫째는 초등학교에 있는 단설 유치원에 다니는데 우리집 거실에서도 보이는  건너에 있음에도  막상 유모차를 밀고 걸어가면 10분이 걸린다. 길도 오르막 내리막이 반복되어 도착하면 숨이  헉헉거린다.

이렇게 아침 등원 일정이 끝나고 집에 오면 10시가 다 된다. 바로 집에 들어가기엔 마음이 헛헛해서 아파트 주차장을 슬슬 몇 바퀴 돌거나  아파트 뒤편에 있는 공원을 돌다가 마음이 좀 편해지면 집에 들어간다.


집이 정남향인 덕택에  그 시간 즈음이면 집안 가득 햇살이 들어와 한 겨울임을 못 느낄 만큼 따뜻하게 데워져 있다.

둘째와 둘이 있지만 오붓하지만은 않다.

아직 못 치운 거실을 정리해야 하고 아침 먹은 식탁은 위고 아래고 난리다. 하지만 체력이 바닥나서 잠시 그냥 쉰다. 뽀로로에 심취한 둘째도 한동안은 조용하다.


나는 뭐 하고 있는 걸까…. 생각들이 다시 몰려온다.

출판사들을 찾아 연락을 해 보고 이메일을 보내 보고 답이 없는 곳은 분명 거절임에도 큰 숨 한번 쉬고 전화를 해 본다. 며칠 내로 답을 주겠다는 통화를 끝내면 "여기도 거절이구나"라는 결론이 난다.

엄마로 살기 시작한 지 7년 차.

나는 참 정성스레 아이들을 키우고 집안을 돌봤다. 다시 시간을 되돌린다 해도 나는 엄마로의 삶을 택하고 싶을 만큼 나의 일상에 감사한다. 그러나 언제나 시간은 유한하고 능력도 유한해서 무언가에 집중을 하면 다른 건 놓치기 마련이다.

길을 찾지 못한 나의 원고에게 너무 미안하고 이렇게 지내다 자아를 잃어버리고 내가 사라지는 건 아닌지 무서움이 몰려오는 요즘이다. 어찌해야 나의 원고들을 세상에 보일 수 있을까. 치즈가 만들어지는 이 다양한 과정들을 나는 얼마나 열심히 촬영하고 취재했었나. 이 내용들이 분명 누군가에게는 필요한 자료가 될 텐데.


남편에게 나의 고민들을 이야기했다.

나는 마음이 무거운 일들을 대부분 남편과 상의하는데 남편은 항상 고민을 아주 신중하게 들어준다.

멈추지 말란다. 그럼에도 원고는 세상에 나와야 하지 않겠냐고. 진척이 없는 이 일이 그럼에도 멈추면 안 된다는 그의 말에 힘을 얻었다.

언제 어디선가 빛을 볼 나의 치즈 원고를 위해 멈추지는 말자. 정말 누군가에게는 필요한 자료일 수 있으니

방향을 다시 바라보고 멈추지는 말자.  

마음을 다잡아 본다.

작가의 이전글 월간 샘터 11월 호,  치즈 탐험'신비의 세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