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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희 Nov 10. 2023

치즈 책을 만들자는 출판사가 나타났다.  

십 년 된 원고를  출판하시겠다고요?

지난달, 파주의 출판사 앞 카페에는 편집자와 디자이너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멋쩍은 인사를 하고 인쇄물이 가득한 테이블에 앉았다.

"이거.. 이건가 봐요?"

나는 두꺼운 집게가 꼽힌 종이 뭉치를 보고 심호흡을 가다 듬었다.

"네, 맞아요. 같아 보이지만 종이의 두께와 색이 달라요."


나는 책 속을 젖혀 보며 마침내, 결국은 이라는 말을 했다.

이 원고가 책이 되었다.

바라보고 있으니 많은 생각들이 스쳐갔다.

  

이담 출판사의 편집자에게 메일을 받은 건 올해 초였다.

봄을 말하기엔 겨울바람이 남은 1월과 2월의 사이였다.

우리는 겨우 한 번 통화했고 약속을 바로 잡았다.

"제가 파주로 갈게요. 네네 멀어도 괜찮아요."

파주라니, 파주에 가면 정말 그 출판사가 있는 것일까? 검색해 보니 규모가 큰 출판사던데

왜 나에게 연락을 했을까? 잘 못 연락한 건 아닐까? 실수로 연락한 건 아닐까?

나는 미팅날 아침까지도 혹여 취소한다는 연락이 올까 걱정을 했다.


파주에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출판사에 도착하자 편집자가 마중 나와 있었다.

우리는 회의실에서 책에 관해 이야기를 했고, 편집자는 이미 회사내부에서 승인이 떨어진  출판 기획서를 보여 주었다.

대화를 진행할수록 편집자가 실수로 연락한 건 아님이 확실했다.

그럼에도 혹시 내 원고의 내용을 착각할까 싶어 원고가 쓰인 시기를 정확히 말해 주었다.


"편집자님, 이 원고는 2013년 영국의 치즈 여행을 쓴 것이에요. 물론 트렌드와 상관없는 시골의 전통 치즈에

관한 내용이지만, 10년 된 원고인데 괜찮으시겠어요?"

나는 편집자가 그랬나요? 몰랐어요!!라고 할까 봐 두근거렸다.

하지만 안다고 했다. 다행히도 안다고 했다.


우리는 그 자리에서 계약서를 작성했고 나는 지난 시간 동안 50여 곳이 넘는 출판사에 연락했던 일, 이런 원고는 출판이 어렵다며 무시의 말을 들어야 했던 일, 독립 출판을 알아 보라며 많은 금액의 수수료를 제시받은 일, 유명한 음식책을 만든 사람들에게 머뭇 거리며 전화를 했다가 이상한 사람처럼 끊은 일들이 머릿속에서 필름처럼 지나갔다.

 

가제본이었지만 맨 뒷장에는 출판과 똑같이 책의 모든 정보가 표기되어 있었다.

담당 편집자와는 계약 이후 수 없이 많은 원고 수정과 사진 수정을 이메일로만 나누다가 봄과 여름의 두 계절을 보낸 가을이 되어서야 다시 만났다.


감동은 우선 미뤄두고 각 페이지에 들어간 사진의 크기, 제목, 글의 크기 등의 수정 사항에 관해 한 장 한 장 천천히 살폈다. 하지만 그날 우리가 나눠야 하는 가장 큰 주제는 표지였다.

책의 제목도 물론 정하지 못한 상태였다.

나는 간단하게 하고 싶었다.

"가제의 이야기를 빼고 그냥 치즈로 가죠. 어때요?"

나와 편집자와 디자이너는 쉽게 합의점을 찾았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이 책이 영국 치즈에 한정된 내용임을 알릴 수 없기에 꼭 영국 치즈 여행기라는 문구를 넣어 달라고 했다.


그럼 표지의 색상은요?

나는 무난하게 흰색이었으면 했다.

사실 다른 색은 생각할 수 없었다.

"편집장님의 의견은 노란색인데요. 아마 흰색은 안 될 것 같아요."

노란색이라.. 노란색이라니.. 나는 노란색 표지에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나의 생각보다 책을 만드는 이들이 더 트렌드에 민감할 테니

더 이상 이견을 달지 않았다.


유유자적이라는 시리즈물로 출간되는 이 책은 더군다나 앞으로 나올 다른 주제의 책들과

디자인이 일관적이어야 하기에 나는 표지의 사진 정도만 몇 개의 컷을 보내 주었다.

그리고 회의 후 2주 만에 출판사로부터 표지 디자인 이메일이 왔다.


이 쨍한 비비드 한 노란색이 내 책이라고?!

어..............

편집자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고 나는 아직 머릿속에서 어떻게 반응할지 결정을 못 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오!! 이건 정말 최고예요!!"


책이 치즈 그 자체였다.

편집자님 정말 감사합니다.

디자이너님께 머리 숙여 인사드리고 싶어요.


우리는 이제 다음 단계를 계획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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