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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민희 Aug 10. 2024

반딧불이의 추억

8월 8일 질문 : 당신의 삶에서 가장 감동한 순간은 언제인가요?



2022년 6월 중순 어느 날 직장 동료들과 산양큰엉곶으로 반딧불이를 만나러 갔어. 곶자왈* 초입에서 만난 안내자들의 평화로운 목소리가 ‘이곳에서 존재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려주는 듯했지. 인간이 자연을 대하는 태도는 본래 부드럽고 겸허했을 거라는 것을.

40여 분간 검은 숲길을 스마트폰도 끄고 걸었어. 함께 걷는 발자국 소리는 어느새 낮아지고 맞춰졌어. 숨소리도 차분해졌어. 마음 안의 거친 것들이 부드러워졌어. 어둠이 짙어질수록 별처럼 반짝반짝 반딧불이들이 나타났어. 어딘가에서는 반딧불이 한 마리와 한참을 함께 걸었지.

일상의 관계에서 보풀처럼 일어났던 마음은 차차 순해지고 따뜻하게 어우러져, 잊었던 친구도 생각나고 동화 속 주인공이 된 듯했어. 무엇보다 숲 속 내음이 정갈하고 향그러워 몸과 마음이 맑아졌어. 마음의 속상함, 불편함, 어려움이 있을 때 그저 숲길을 걸어보길 권해. 반딧불이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다른 곳에 와 있음을 알게 될 거야.

온 마을 사람들이 맞아주고 배웅하는 모든 과정도 좋았어. 일 년 중 아주 짧은 기간, 정성껏 예약을 해서 느낄 수 있는 귀한 경험이었어. 그 후로 매년 6월이면 지상에서 반짝이는 별, 반딧불이가 생각나 마음이 밝아져.

2022년 5월 서울에 볼 일을 보러 왔다가 리쿠르팅 내용을 보고 용기 내서 이력서를 보내고, 논산에서 군산을 거쳐 비행기로 제주를 오가며 면접을 했어. 6월부터 캐리어 두 개를 끌고 내려가서 제주에서 살며 일을 했지.

회사의 경영난으로 12월에 이직을 하게 되었어. 그때는 아쉬웠지만, 제주에서 일하며 살았던 모든 시간이 돌아보니 감동이었어.

퇴근하고 이호테우 해수욕장으로, 도두 해안에 가면 고민이 씻겼어. 추석에 함덕에서 선흘에서 보냈던 시간도 너무나 좋았어. 탑동 메토이소노에서도 한 달 넘게 지냈지. 멋진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자매처럼 지내는 동생들도 만났지.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을 마음껏 운전하고, 걷고 누렸던 그 시간은 내 생애 잊지 못할 도전이었어. 감동은 도전의 결과물 혹은 부산물이 분명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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