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의계절 Jul 25. 2021

나는 절대 저렇게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

심너울 작가의 SF소설을 읽었다


또 였다. 또. 

토요일 오후, 선배와 만나 밥을 먹고 자리를 마무리할 무렵, 핸드폰이 울렸다. 나는 진동이 울려대는 핸드폰을  응시했다가 내 마음이 멋대로 거부권을 행사하기 전에, 서둘러 핸드폰을 냅따 귀에 가져다 댔다.

"여보세요? 아 네, 네... 네... 네네.. 네. 네에....."  

이따금씩, 큰아빠는 내게 그렇게 전화를 했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서 시작되었는데, 요지는 큰아빠가 너희를 많이 사랑하니 전화를 한 번씩 하라고 하거나 집으로 한 번 놀라오라는 것이었다. 


엄마에게 지나가는 말로 요즘은 큰 아빠 전화 안 받았었다고 말했다. 

그래도 너네 어렸을 때는 많이 오가고 예뻐해 주고 그랬었어.  


그리고 나는 지난주 언젠가 사랑해 마지않는 조카들에게 전화를 걸었더랬다. 

태어났을 때부터 내 마음과 지갑이 키우는데 쪼금 일조했던 조카.  곧 있으면 여름방학일 테니, 이모 집에 오지 않겠냐는 얘기를 하려고 했는데, 큰 조카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다음 날 전화해도 신호만 울릴 뿐, 그 뒤에도 어떤 연락도 오지 않았다. 이후 나는 시간이 좀 지나고 통화가 연결된 큰 조카에게 따져 말했다. 

이모가 두 번 전화했는데, 왜 안 받았어? 부재중 전화가 찍혔을 텐데, 왜 카톡도 안 했던 거야? 




우리는 이렇게 늙어간다. 

나는 늙으면 다를 것이라고 웅얼거리지만, 다르지 않은 비슷한 풍경이 펼쳐지기 마련. 

시대가 달라졌다 해도, 강도는 다를지언정 변하지 않는 모습일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을 할 무렵, 나는 이 책을 제목에 이끌려 사버렸다. 

<나는 절대 저렇게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라는 SF 소설집. 


순전히 제목 때문에 끌렸고, 이 끌림은 저항할 수가 없었다. 

이 책을 거부하면, 나는 '추하게' 늙어갈 것 같은 말도 안 되는 주문에 걸릴 것 같은 느낌이었다. 


SF 장르 하면 매트릭스나 공각기동대, 스타워즈 같이 지금 현재의 관점으로는 생각해 볼 수 없는, 그래서 작가의 상상력에 감탄을 하는 그런 시공간을 떠올렸는데, 심너울 작가의 SF소설은 달랐다. 대부분은 상상해 볼 수 있는 몇십 년 뒤의 세상에서, 어떤 때는 가볍고 유쾌했고 엉뚱했으며, 어떤 때는 나를 되돌아볼 정도의 울림이 있는 소설이었다.  이 책에는 총 9가지의 단편 SF소설이 있는데, '나는 저렇게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는 이 중 가장 재미있게 본 이야기 중 하나였다. 


1980년-90년에 태어난 세대가 늙어 보청기를 낄 무렵의 나이가 되었을 때가 배경이다. '에어 팟'이 시니어용 레트로 제품으로 다시 나오고, 주인의 귀가 아니면 작동하지 않고, 청각 보조 기능도 있단다. 


주인공이 이 기기를 사고 '내가 70대여도 이 정도면 품위 있고 트렌드를 따라가는 모습이지.'라고 하며, '소비 하나로 자존감이 무럭무럭 자랐다'라고 느낄 때, 친구를 만났다. 소리를 지르며 이름을 부르는 친구에게 '민폐라며 점잖을 수 없겠냐고 나무랐고', 갑자기 생각 난 한참 젊었던 2018년의 아득한 기억을 얘기하게 된다. 얘기의 포인트는 '세상이 바뀌는 거 잘 따라가고, 지금 사는 데 안주하지 않고' ' 그 노인네처럼 살고 싶지 않다'는 의미로 얘기했다고 했다. 본인은 확실히 '그 노인네'처럼 살고 있지 않다고 생각했나 보다. 


이런 얘기였다. 


버스에서 쏟을 수 있거나 냄새나는 음식을 들고 타면 버스 기사가 탑승을 거부할 수 있다는 조례가 막 시행되던 때, 웬 노인 한 명이 도시 버스 기사랑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 생선을 가지고 버스를 타려는 노인과 기사의 대치 상태, 그러다  박스에 있던 생선들이 몇 마리 쏟아졌고, 노인은 뜨거운 바닥에 앉아 곡을 했다고. 이를 보던 지나가던 사람이 말했다. 

"나는 절대 저렇게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 
"맞아. 진짜로"


이런 이야기를 주제로 삼은 친구와의 만남이 끝나고, 주인공은 가상현실 게임방에 들어갔다.

어찌어찌 주인공이 익숙지 않아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일이 생겼고, 아르바이트생들이 주인공을 보며 이런 얘기를 하게 된다. 

"아유 어쩜 이리 늙은이들은 죄다 진상들이냐" 
"나는 절대 저렇게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
"맞아, 맞아, 나도.


어떤 사람이든, 특히 어르신들에게 그 분들이 그동안 살아온 나날에 존경과 배려를 표해야 하는 이유는 이래 서다.우리도 곧 머지않아 늙을 테니까. 늙는다는 건 젊은이와 비교해 시대에 뒤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고, 나이가 들수록 더 많은 배려와 관심이 필요할 테니까. 


아니 이상하다. SF소설이 갑자기 삶을 철학하게 만든다. 




 아, 정말 에세이 같은 SF소설이자, 몇십 년 후에 곧 다가올 듯한 근거리 상상력이라 더 멋진 책이다. 

나는 이제부터 심너울 작가를,  SF소설을 좋아하게 될 것 같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