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나마 글로 쓰지 않는다면

안 쓰는 사람이 쓰는 사람이 되는 기적을 위하여 <쓰기의 말들>

그나마 글로 쓰지 않는다면 
우리는 자신의 변덕스러움, 나약함, 얄팍함, 불확실성을 어디서 확인할까. 
이토록 오락가락하면서 과연 어디로 가는지 궤적을 어떻게 그려 볼까. 
흔들리지 않는 게 아니라 흔들리는 상태를 인식하는 것. 
글이 주는 선물 같다. - <쓰기의 말들> p167

본인을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정의하는 사람, '미련'했기에 '나만의 속도로 하고 싶은 말을 안전하게 하는 수단'으로 글을 쓰게 된 것 같다는 사람. '마른 김 굽고 하얀 밥 지어먹고 커피 내려서 글 쓰려고 노트북 앞에 앉을 때 가장 생이 평화롭다'라고 말하는 작가. '찬찬히 오래 보고',  '간결한 언어'로 기록하는 '시적인 글'을 쓰고 싶다는 분. 

작가가 프롤로그에서 '모두가 글을 쓰고 싶어 하지만 누구나 글을 쓰지는 못한다.'라고 말했는데, 여기에 속해있지 않은 사람이 어디 흔하랴. 나 또한 글과 비교적 친해야만 하는 일을 했지만, 업무의 대부분은 '메시지 중심의 글쓰기'였던지라, 이렇게 '스타일 중심'의 글쓰기는 늘 주눅부터 들기 시작하는, 못할까 봐 부끄럽고 '망설여지는' 일이었다. 

그래도 써보고 싶어 용감하게 브런치를 열었지만, 첫 문단마저도 끝내지 못한 글들은 여전히 쌓여만 가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그야말로 어떤 결정이나 결단도 내리지 못한 '망설임으로 꽉 찬 시간'들만 쌓이는 셈이다. 은유 작가 왈 '아무것도 안 하는 것과 안 하는 거 '같은 것'의 차이'는 다르고, '어떤 불확실성의 구간을 넘겨야 근육이 생기는 것은 몸이나 글이나 같은 이치'라고 하니, 이 시간들은 나의 글쓰기 근육을 단련하고 있는 중이겠구나 생각해보기로 했다. 어떤 근육이든 축적의 시간이 필요할 테니까. 

'쓰기의 말들'은 전문 작가에게도 '쓰기'가 얼마나 여전 어려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기'가 삶에 더해줄 수 있는 가치가 무엇인지 다정하게 얘기해준다. '예고 없는 고통의 시간대를 글을 붙들고 통과했기에',  '욕하거나 탓하지 않고 한 사람을 이해하는 괜찮은 방법'이기에, '진흙탕 같은 세상에서 뒹굴더라도 연꽃 같은 언어를 피워 올린다면 삶의 풍경이 바뀔 수도 있다는 것' 때문에. '글쓰기는 잠시 몸을 들이고 힘을 모으고 일어나는, 내가 지은 긴급 대피소'이기 때문에, 그 누구든 '자기가 발 디딘 삶을 근거해서 한 줄씩 쓰면' 되니까, '지금까지 살아왔다는 것은 누구나 글감이 있다는 것'이니까. '기억 복구 작업인 글쓰기는 과거의 회상이면서 현재의 보호막이 되어' 주니까. 

나는 나를 알고 싶고, 사람들과 공감하며 살고 싶어서, 오늘도 오랜 망설임의 시간을 거치 글을 쓴다. 구글닥을 열어 '문장 수집'이라는 문서를 만들었다. 프롤로그에서 작가가 예고한 대로 '글쓰기로 들어가는 여러 갈래의 진입로'로 본격적으로 들어섰으면 좋겠다, 오늘이 그날이었으면 좋겠다, 하면서. 

글쓰기란 생각의 과정을 담는 일이다. 생각을 완성하는 게 아니라 중지하는 것이다. 글쓰기에는 충분한 시간이 아니라 정해진 시간이 필요하다. p203 

생각을 중지하고, 정해진 시간을 내는 것. 

이것부터 시작해야겠다. 

'좋은 글은 자기 몸을 뚫고 나오고 남의 몸에 스민다'더니, 은유 작가의 글은 늘 내게 스며든다. 

*이 글에 작은따옴표로 표시한 글은 <쓰기의 말들>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