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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의계절 Jan 19. 2022

사랑한다고 말할 용기

오늘의 나도 그럴 수 있을까 

황선우 작가의 책은 항상 타이틀부터가 힘이 세다. 손을 꼭 잡아 이끌어 주는 느낌이랄까, 공기 속에 만연하지만 그게 무엇인지 알지 못했던 기운을 응집해서 전해주는 에너지랄까, 내 앞에서 걷고 있는 선배 '언니'들의 다정한 수다랄까.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가 그랬고, <멋있으면 다 언니> 또한 그러했다. 그녀의 세 번째 책이 나왔다는데, 안 읽을 수가 없지. 그렇게 오늘은 <사랑한다고 말할 용기>를 펼쳤다. 


작가는 '들어가는 말'에서 '우리가 일과 맺는 관계는 사랑과 닮았다'라고 얘기한다. '애정이나 호감의 동력'만으로는 안되고, '성실과 노력, 몸과 마음'을 함께 써야 한다고 하며, 이 과정에서 '인격까지 성장시킬 수 있다'라고 말한다. '지나치게 동일시하거나 일방적인 헌신을 바치다가는 어느새 내가 사라지고', '오래 지키려면 매번 새로워져야 하는 것'도 '일'과 '사랑'의 닮은 구석이라는 거다. 거 참, 말이 되는군 싶었다. 사랑하기에 더욱더, 내가 상대방에 스며들어 없어지면 안 되는 일, 적당한 거리와 핑퐁이 필요한 일. 끄덕끄덕하며 제일 집중해서 읽은 부분이 바로 이 책의 콘셉트이자 핵심인 이 서문 인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다보면 나중에는 이런 얘기도 이어진다.

유한하고 허무한 삶 속에서 우리가 진짜 살아 있음을 실감하는 건, 어떤 환경 속에 나를 내던져보고 깊숙이 들어가 밀도 높게 몰입감을 느낄 때다. 대표적으로 그런 경험이 사랑, 그리고 일이다. 때로 실패할지라도 그 속에 성숙하고 또 새로워지는 경험이 쌓여서 각자 삶의 고유한 이야기를 만든다. <사랑한다고 말할 용기>


사실을 고백건대, 요즘 내 삶에 '사랑한다고 말할 용기'가 사라져 버린 것 같다. 그간 일의 어떤 부분을 사랑했는지, 일을 하면서 얻었던 몰입감과 삶의 충만함이 어떤 느낌이었는지 도통 제대로 떠올릴 수가 없다. 작가가 서문에 써둔 대로 '퇴사'와 '워라밸'이 자주 회자되면서, '자기 일에 대한 긍정보다 일하기 싫다는 한숨이 쉽게 공감을 얻는', 곧 '일과 건강한 관계를 맺기 어려운 시대'의 영향이 큰 걸까. 주 52시간 시대, 심지어 주 35시간의 화두가 솟구치는 이 와중에 감히 '일'을 '사랑한다고 말할 용기 라니'. (뭐, 사실, 사랑한다고 해서, 내내'일의 시간' 속에 파묻혀 있지 않을 수도 있긴 하지만.) 


이 책에서는 여러 이야기를 다룬다. '일하기', '프리랜서로 일하기', '여성으로 일하기',  그러면서 '단단한 마음', '튼튼한 몸', '넓어지는 삶'까지. 의례 본인이 가장 관심 있고 고민인 지점의 글귀가 가장 잘 들어오기 마련인지라, 2022년 현재의 나는 '일의 의미'에 대한 내용이 가장 좋았다. 인문학적 사색이나 철학적인 얘기를 하지 않고, '그냥 내가 해 보니, 이렇더라'라고 툭 던지는 경험에서 오는 공감과 위로. 겪어보니, 나도 경험해 보니, 이렇다더라는, 어떤 말보다 강력한 힘과 영향력을 갖는다. 황선우 작가 에세이의 힘은 바로 이런 지점에 있는 것 같다. 


<사랑한다고 말할 용기> 책을 덮으면서, 결국 나는 사랑한다고 말할 용기만큼이나, 잠깐의 시간이 필요해 거리두기 하자고 말할 용기도 위대하다면서, 스스로를 합리화하고 현재의 나를 토닥이기로 했다. 그 어떤 이유가 되었건, 권태기는 늘 찾아오기 마련이고, 이 시기는 어떤 방법으로든 풀리게 되어 있으니까. 


위안이 되었던 문단을 다시 읽으면서 잠을 청해야겠다. 

완벽한 계획을 세우고 얼마나 잘 실행에 옮겼는지에서 의미를 찾을 수도 있겠지만, 다양하게 시도하다가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을 나는 응원한다. 우리 삶에 고유한 개성과 이야기를 부여하는 건 매끈한 단면보다는 울퉁불퉁한 굴곡들이다. 적어도 더 많은 질문을 해본 사람의 인생에는, 더 많은 추억이 만드는 다채로운 무늬가 생긴다. 실패해도 다시 해볼 수 있는 회복 탄력성이란 그런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받는 축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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