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친구 부부 싸움 직관

말하지 않기로 결심한 부부

by 나의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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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시작은 좋았다.


일주일째 냉랭하다던 친구 부부가, 내 앞에서는 의외로 말이 잘 통하는 듯 보였다. 내 친구이자 아내인 A가 남편 B에게 화해의 신호로 제안한 게 "부부 버크만 디브리핑"이었고, 오늘이 바로 그 디브리핑 날이었다.


결혼 17년 차 아내 A는 남편과의 관계 개선을 원했다. 부부 상담을 한참 받을 때는 괜찮았는데, 요즘은 다시 어려움을 겪는다고 했다. 남편이 본인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아 답답하고, 조심하고 싶다고도 했다. 대화가 통하는 사람과 여행하고 맛있는 것 즐기면서 즐겁게 늙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남편 B는 담담했다. 노력을 해 봤으나 현실적으로 관계 회복이 어렵다 했다. 이유는 아내 A가 변할 생각이 없기 때문이란다. 아내 A가 원하는 대화의 주제는 꼭 '회사 욕'이거나 '본인 또는 가족 욕'으로 귀결되기에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고 했다. 싸우고 나면 결국 "화를 낸 나만 문제로 남는다"라고 답답해했다.


아내 A는 그들의 관계가 "각각 사는 부부", "단절된 부부", "무늬만 부부"라고 했다. 남편 B는 잠시 생각하다가 "눈치 보는 부부"라고 답했다. 아내가 자신을 늘 변명만 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다고 했다.


남편 B와 아내 A의 버크만 맵


이렇게 심리적 거리가 멀어진 이들 부부의 버크만 맵은 놀랍도록 비슷했다. 평소 행동은 둘 다 생각하는 사람(Thinker)였고, 흥미 영역은 분석하는 사람(Analyzer)에 가까웠다. 욕구는 다소 차이가 있었는데, 남편 B는 질서, 체계와 일관성을 더 원했고, 아내 A는 개인감정에 대한 존중을 바랐다.


관계요소에서 가장 큰 차이가 나타나는 영역은 감정 에너지(Emotional Energy).

아내 A는 본인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환경을 원하는 반면, 남편 B는 감정을 억제하면서 논리적이고 실용적으로 접근하고 싶어 했다. 이러한 욕구가 해소되지 않을 경우, 둘의 스트레스 행동은 의견이 지나치게 주관적이 된다거나, 우울해진다거나, 지나치게 민감해진다. 두 사람이 격하게 동의하며 이야기가 피크에 다다를 즈음, 남편은 아내가 마치 본인을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쓰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고 했다.


아내 A와 남편 B 모두 자기주장(Assertiveness)은 낮고 완고(Insistence)는 높은 패턴이었다. 상대방의 말을 듣고는 있지만, 둘 모두 각자가 원하는 특정 방식과 관점이 명확했다. 남편은 아내가 본인을 얘기할 때마다 "남편은 친구가 없어요.", "아이들이 아빠를 무서워해요." 등 마치 그것이 불변의 진실인 것 마냥 생각하고 얘기한다고 한숨을 쉬었다. 이런 문장들은 마치 불가침의 영역이어서, 그 무엇도 이런 아내의 생각을 바꾸지 못한다고도 덧붙였다.


그러고 보니, 흥미에 있어 둘 다 설득(Persuasion) 분야가 낮은 흥미로 나왔다. 말로 설득하거나 영향을 주는 것보다 각자의 생각 안에서 정리하려는 경향이 강하다고도 할 수 있으려나. 사고(Thought)의 관계요소 또한 둘 다 높은 욕구를 가지고 있기도 하니, 각자 자신만의 논리 안에서 머무르며 감정의 간극과 오해가 커질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러다 갑작스러운 감정의 대폭발이 일어났다. 부모님의 생신 행사 일정에 대한 얘기하던 남편 B의 감정이 한순간에 치솟았다. 강한 어조의 목소리만으로도 충분히 위압적이었다. 위협적으로 느껴지는다는 나의 말에 아내 A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고, 남편 B는 100분의 1, 아니 50분의 1은 좋아진 거라고 당당히 얘기했다. 본인이 싫어하는 주제, 하지 말라고 수십 번 말한 행동을 왜 반복하냐며, 스스로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나가버렸다.

하, 여기서 나는 어찌하란 말인가. 내가 보기엔 둘 다 대화법에 문제가 있어 보이는데, 조심스럽게 하지만 꾸준히도 서로를 자극하고 있었다.


얼마 후, 다시 대화를 이어나가기는 했으나, 이번에는 아내의 말이 툭툭 튀어나왔다. 이럴 거면 이혼을 할까 봐, 주말부부를 할까 봐라는 말. 안 그래도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던 남편 B가 다시금 화가 났다. 남편 B는 본인이 가끔은 가족을 위해서 돈만 벌어다주면 되는 기계 같다는 생각을 한다고 토로했다. 나는 이렇게 노력하는데 네가 노력하는 게 뭐냐고 했다. 아내 A는 남편 감정의 폭주를 민망해하면서도 담담하게 바라봤다.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상대방이 어떤 욕구를 가지고 있는지 알아보자며 시작한 디브리핑은 의도치 않은 확고한 체념으로 끝이 났다. "사람은 안 변해요.", "노력해도 좋아지지 않아요.", "저는 조언받은 것들을 노력하는데, 저 사람은 하지 않아요." "결국 해결책은 그냥 말을 하지 않고 사는 거예요."


사람은 진짜 변하지 않는 걸까.

서로의 욕구와 방식을 이해하려는 시도가 이어지는 만큼은, 관계가 다시 숨 쉴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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