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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의계절 Jun 08. 2022

'안티프래질'한 삶의 여정을 향하여

인생의 불확실성, 무작위성, 혼란에 올라타 보자

나도 '안티프래질'한 삶을 살아야지. 

모든 것이 불확실한 인생의 긴 곡선에서, '일정 정도의 오차'와 '시간이라는 가변성'을 즐겁게 받아들이고, '예측'을 과하게 요구하거나 과신하지 않으며, '작은 실수를 여러 차례 저지르되' 여기서 오는 배움을 즐기고, 모든 '시도'는 그만의 '가치'있다고 생각하고,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유지하면서 '책'을 많이 읽고, 그러면서 결과적으로 '충격으로부터 더 성장하고 강해지는' '안티프래질'한 사람이 되고 싶다.

'불확실성과 무작위성이 없는 삶', 그래서 '날마다 벌어지는 일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면 내 삶은 죽도록 지겨울 것'이라는 나심 탈레브의 말에 적극 공감한다. 어차피 불확실한 인생의 롤러코스터를 타야 한다면,  이 여정을 즐기며 강해지는 방법을 택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인생은 관광이 아닌 탐험일 테니까. 


<안티프래질>이라는 '벽돌 책'을 읽었다. (여전히 읽고 있다...) 
보통의 나였다면 감히 엄두도 내지 않았을 책. 도저히 알 수 없는 누군가를 이해하고 싶어서 읽기 시작했다. 이상하고 그래서 흥미로웠던 누군가의 인생 책이며, 동시에 이 책을 쓴 '나심 탈레브'가 그의 인생철학의 5할 정도는 차지한다는 말에 호기심이 동했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길래, 어떤 프레임으로 삶을 바라보기에, 이렇게나 나와(보통의 사람과) 생각과 태도가 다를까. 그 다름의 시작점을 알고 싶었다. 

두꺼운 만큼이나 어려워서 읽기를 포기하고 싶은 몇 번의 순간을 넘기고 나니, 이상하게도 이 책으로 인해 당시 몹시나 혼란스러웠던 나의 상황이 여유롭고 충만하다고 느껴졌다. 나는 늘 혼란스럽고 불확실한 삶을 최대한 '예측'하고 '관리'하려 했던 사람이지, 이 파도에 올라타 '성장'하고자 했던 사람은 아니었다. '예측' 하고 '관리' 할 수 없음을 이해하고 오차와 실수를 용인하고 '성장'하려는, 이런 마음의 한 끗 차이는, 인생의 결과뿐만 아니라 삶의 즐거움도 결정짓는, 거의 모든 것 일 수 있겠다 싶었다. 


세상에는 충격으로부터 혜택을 보는 것들이 있다. 

이 문장이 이 책의 가장 핵심을 나타낸다고도 할 수 있다. 무질서, 모험, 불확실성 등에 노출되면서 더 성장하고 강해지는 것, 나심 탈레브가 '안티프래질'이라고 명명한 개념이다. 무작위성, 무질서, 스트레스에 노출될 때 번창하고 성장하며, 모험과 리스크, 불확실성을 좋아하는 것들이 혜택을 본다며, 이를 '안티프래질(antifragile)'이라고 정의한다. 이는 사실 긴 역사와 다방면의 분야에 걸쳐 우리의 삶에 존재해 왔으나, 모두가 행동으로만 인식했을 뿐 이름을 붙여 인지하지는 못했다고 했다. 안티프래질-강건함-프래질을 구분해서 설명을 하는데, 안티프래질과 프래질을 비교해서 설명하면 이렇다. 


'안티프래질'은, 

머리 하나를 자를 때마다 두 개가 다시 생기는 '히드라'

불꽃처럼 타오르는 사랑(또는 증오)을 예시로 들 수 있다. 

택시 운전사처럼 기능을 보유한 사람은 무작위성 덕분에 일정 수준의 안티프래질을 지니고 있다. 

충격으로부터 혜택을 보는 것. 무질, 모험, 불확실성 등에 노출되면서 더 성장하고 강해지는 것 

무작위성과 불확실성, 일정 정도의 스트레스와 오차를 좋아하며, 

우리에게 미지의 것을 다루도록 해 주고 무엇인가를 이해하지 않고도 잘 실행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인간의 몸처럼 살아 있는 유기체(또는 복잡계)와 스테이플러처럼 생명이 없는 대상 간의 경계를 정해주며,

가변성과 시간도 좋아하며, 비선형성과 끈끈한 관계를 갖는다. 

스트레스 요인과 손상에 과잉 반응해 과잉보상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며, 

일반적으로 안티프래질은 바람직하지만, 항상 그렇지는 않을 수도 있다. 

실수를 좋아하는 상황을 만들면 안티프래질 해 질 수 있다. 특히 작은 실수를 여러 번 저지르는 것이 유리

정보와 책은 안티프래질 한 특성을 지니는데, 정보는 알려져 할  때보다 덮으려 할수록 널리 전파된다. 

꾸물거림은 만물로 하여금 스스로 보살피도록 내버려 두면서 자신의 안티프래질을 행사하도록 하는 자연적인 방어 시스템이다. 꾸물거림은 생태학적 혹은 자연주의적 지혜로서 항상 나쁜 것만은 아니다. 

호기심은 중독과 마찬가지로 안티프래질 하다. 호기심은 충족시키려고 하면 할수록 더 생긴다. 


이와 반대로 '프래질'은, 

말총 하나에 매달린 칼 아래 앉아있는 다모클레스를 떠올릴 수 있으며, 

시간이 지나면 부서지고, 

고요하고, 

실수를 싫어하고,

측정 가능하며, 

개입하려는 전략을 구사하며,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측 가능성을 요구, 즉, 예측 가능한 시스템은 프래질을 초래하며, 

정밀하게 계획된 프로세스에서 최대한 이탈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 개념이 쭈욱 펼쳐지는 와중에, 되새기고 싶거나 생각지도 못한 관점이라 밑줄을 쳤던 구절도 많았다. 

글 자체에서 주는 영감과 깨달음이 깊기에, 인상 깊은 구절과 나의 생각을 나열해본다. 


서문 

나는 매우 똑똑하고 프래질 하기보다, 차라리 우둔하고 안티프래질 하기를 원한다. 
(→느리지만 충격에 견디고 더욱 성장한다면, 한 순간 부러지는 프래질보다 한참 낫겠지.) 

나는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고 싶다. 
(→ 나심 탈레브가 '가변성 전문가'로 불확실성을 탐구했던 이유, 이 맥락도 큰 이유이지 않을까) 

안티프래질이 살아남은 모든 자연적 시스템 혹은 복잡계의 특징이라면, 이런 시스템에서 가변성, 무작위성, 스트레스를 제거하면 시스템에 피해를 줄 것이다. 시스템은 약해지거나 소별 하거나 붕괴할 것이다.
(→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뿐, 모든 사람들은 누구나 각각의 특정 측면에서의 안티프래질함을 갖나 보다.) 

다른 사람들을 프래질 하게 만드는 대가로 자신이 안티프래질 해서는 안된다.
(→ 나심 탈레브는 금융 위기를 예로 들었던 것 같은데, 일상의 예시는 무엇이 있을까?) 

프래질은 측정이 가능하다. 그러나 리스크는 그렇지 않다. 
(→ 지금까지 나는 '리스크'는 관리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리스크는 '대응'해야 하는 대상. 주어진 환경에서 프래질함을 파악해 안티프래질 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기업 환경에서도 '프래질'을 구체적으로 정의하고 측정해서 나열해 볼 수 있을까.) 

리스크와 시행착오를 기꺼이 받아들인 사람들, 우리가 격려하고 보호하고 존경해야 할 사람들이다.
(→ 창업자들은 특히나 이런 특성을 가지는 것 같다. 리스크와 시행착오를 즐기고 받아들인다는 점) 

사람들은 잘 짜인 설계, 연구기관, 관료들의 자금 지원 덕분에 세상이 돌아간다는 환상을 갖는다.
(→ 어떤 조직의 '체계'를 바란다면, 이는 '프래질' 해지는 방향인 걸까? 어느 정도 레벨의 '체계'가 안티프래질을 이끄는 것일까?) 

미래의 확률을 예측하고 계산하기보다는 프래질에 관심을 두어야 하고, 프래질과 안티프래질은 스펙트럼에 나타나는 정도에 해당한다. 여기서 해야 할 일은 이런 스펙트럼의 지도를 그리는 것이다. 
(→ 나 자신, 또는 내가 몸 담고 있는 조직의 '스펙트럼 지도'를 그려보는 것도 인사이트를  도출하기에 흥미로운 방향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1권. 안티프래질 개론 

어떻게 혁신을 이루어내는가? 먼저 절망적이지 않더라도 심각하게 어려운 상황에 빠져보라. 나는 필요가 혁신과 발전을 낳는다고 믿는다. 곤경에 과잉 반응해 엄청나게 많은 에너지를 분출하는 것이 바로 혁신이다. 
(→ 개인과 조직이 모두 경험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지금 이 조직은 또는 대표는 '어떤 어려움'에 빠졌었길래 이런 제품을 생각해 낼 수 있었을까? 어려운 상황이 현재의 기술과 제품의 동력이 되었을까?) 

적응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고유의 환경이 갖는 역사에 정확하게 맞추는 것일까, 아니면 강력한 스트레스 요인을 지닌 환경을 추정하는 것일까. 사람들은 안티프래질의 개념은 간과한 채, 첫 번째 종류의 적응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선택에 관한 표준 모델을 수량적으로 표현한다면, 단순한 적응이 아니라 과잉 보상을 의미한다. 
(→ 현 조직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느꼈었는데, 이 조직에 정확하게 맞추지 못하는 것일 뿐- 단순한 적응을 못한 것일 뿐, 스트레스 요인에 과잉 보상을 유도하고 있을 수도?) 

최저임금을 받는 건설 노동자, 혹은 택시 운전기사는 평판으로부터 상당히 자유롭다. 이런 사람들은 안티 프래 질적 특성을 가진 예술가와 비교할 때 단순히 강건하다고 할 수 있다. 
(→ 프래질, 안티프래질은 상대적인 개념일 뿐이다. 평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음이 엄청난 안티프래질 요소가 될 수 있구나, 그렇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무작위성과 관련한 기분 좋은 감정이 하나 있다. 스포츠 관람에서부터 라스베이거스에서 숨을 죽여가면서 실제로 하는 도박에 이르기까지 적당한 게임의 세계를 좋아한다. 무작위성은 충실한 삶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엄청난 부자라도 극심한 갈증 뒤에 마시는 물보다 더 가치 있는 액체는 살 수 없다.
(→ 앞 길을 알 수 없는 내일이라는 매일매일의 선물) 

프래질 예측 가능성을 요구한다. 예측 가능한 시스템은 프래질을 초래한다. 


2권. 근대는 안티프래질을 거부한다. 

우리는 무작위성이란 위험한 것이고 나쁜 것이기 때문에 제거해야 한다는 잘못된 믿음을 갖고 산다.
(→ 나도 늘 이렇게 살았던 것 같다. 특히나 일에 대해서는 '예측 가능성'은 무엇보다 중요한 핵심이라고 생각했는데, 비즈니스나 일에 대해서도 이 철학이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하는 걸까?) 

실제로 사람들을 약간의 혼란에 빠뜨리는 것은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지난 15년 동안 매일같이 6시면 집에 도착하는, 지극히 시간 약속 잘 지키고 예측 가능한 사람을 상상해보자. 그가 집에 오는 시간으로 시계를 맞출 수 있을 정도다. 만약 이 사람이 어쩌다 몇 분이라도 늦게 온다면 가족들은 크게 걱정할 것이다. 약간의 변화가 있는 사람이라면 30분 정도 늦게 오더라도 가족들은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 
(→ 재미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또는 탐험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이런 '예측 가능성'에서 오는 것일 수도 있겠다.) 

변화는 환경 정화에도 도움이 된다. 작은 산불은 인화성 물질을 정기적으로 정화시켜서 이런 물질이 쌓이지 않도록 해준다. 따라서, 산불을 예방하기 위한 체계적인 노력은 큰 산불을 훨씬 더 나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다. 다시 한번 강조해서 말하자면, 작은 실수를 기피하면 훨씬 더 심각하고 커다란 실수를 범하게 된다.
(→ 내가 느끼는 현재 회사의 철학 중 하나가 '작은 실수를 장려'한다는 것으로 느껴지는데, 이 글을 읽으면서 그 취지나 맥락을 이해하게 된 것 같다.) 

오랫동안 좌절을 겪어보지 않고 성장만 거듭해온 기업은 결국 취약해진다. 그리고 기업의 약점은 드러나지 않고 조용히 쌓이기만 한다.
(→ 어떤 기업이 큰 이슈를 겪었다면 명성에 타격이 있을지언정, 더 큰 성장을 위해 움츠려 드는 단계일 수도 있겠다. 오히려 더 큰 성장만 남아있는 시기일 수도 있겠다.)

꾸물거림이 만물로 하여금 스스로 보살피도록 내버려 두면서 자신의 안티프래질을 행사하도록 하는 자연적인 방어 시스템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꾸물거림은 생태학적 혹은 자연주의적 지혜로서 항상 나쁜 것만은 아니다. 꾸물거림은 정보를 잘 걸러서 섣부른 판단을 하지 않도록 해준다. 일에 있어서 빠르게 행동하는 걸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보면, 꾸물거리고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해결되었던 경험도 꽤 있었던 듯. 모든 걸 바로바로 결정하고 매듭짓지 않아도 된다는 것. 
(→ 이건 정말 나에게 아주 큰 깨달음 중에 하나였다. 나는 정말 꾸물거림을 너무 싫어하는데, 이 내용을 읽고 빠르게 행동하지 않고 미루는 사람들을 이해하게 되었고, 나조차도 너무 빠르게 추진하는 것을 우선시하기보다 타이밍을 노리는 것으로 생각을 바꿔보게 되었다. 빠름이 정답은 아니다.) 

 시간은 프래질을 검증하는 최선의 수단이다. 시간은 엄청난 무질서를 포괄한다. 그리고 시간에 짓밟히더라도 강건함을 유지하는 것은 자연뿐이다. 

국가 원수나 부자들이 주치의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일반인과 마찬가지로 쉽게 죽는 것을 보면서 의아하게 생각한 적이 없는가? 그것은 약을 지나치게 많이 복용했거나 건강관리를 지나치게 많이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데이터 수집 부서로부터 엄청나게 많은 정보를 제때에 공급받는 경영자나 정책 담당자들도 과잉반응을 하거나 잡음을 정보로 잘못 인식할 가능성이 많다. 
(→ 나는 PR을 하면서 기자들에게 들었던 어떤 이야기들이, 신호인지, 잡음인지 제대로 파악 못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잡음에 불과한 데이터에 노출되면서 판단을 잘못하고 있었을 수도 있겠다.  잡음인지 정보인지 제대로 바라보고자 노력할 필요가 있다.) 

정보의 공급을 최대한 자연스럽게 제한하는 것이 개입을 완화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다. 사람들에게 데이터를 많이 확보할수록 상황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고, 의원성 질환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사람들은 여전히 과학은 더 많은 데이터를 의미한다는 환상에 사로잡혀 있다. 
(→ 분석을 제대로 한다면 여전히 유의미하지 않을까? 과연 환상일까?) 


3권 예측이 필요하지 않은 세상 

사람들은 외부 세계에서 인정받는 데 대해 건강을 잃을 정도로 신경 쓰는 성향이 있다. 다른 사람이 당신을 어떻게 평가하더라도 당당함을 잃지 말아야 한다.

좋은 행위에 힘쓰라는 의미에서 사회적 행위의 목록도 제공. 재산은 없어질 수 있다. 그러나 좋은 행위, 즉, 미덕의 행위는 그렇지 않다. 


이 책을 쓴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는 평생 무작위성, 불확실성에 대한 관심을 갖고 스스로를 '가변성 전문가'라고 일컫는 사상가다. 월가에서 금융 트레이더로 일했고, 2006년 철학 에세이스트로 전향해 <블랙 스완>, <행운에 속지 마라> 등을 썼다고 했다. 알랭 드 보통과 굉장히 닮았는데, '안티프래질'을 설명하면서도 역사, 철학, 의학, 금융, 통계 등의 다양한 분야를 종횡무진하면서 폭넓은 지식을 펼쳐 놓는 것이 그러했다. (내가 또 이런 박학다식함에 잘 빠지는데...)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며 투정 부리는 내가, 이 혼란의 터널을 지나감으로써 얼마나 '안티프래질'하게 변할 수 있을까. 아마도 2022년은 무작위성과 혼란을 받아들여 안티프래질에 가까워지는 시기로 기억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현 상황을 이렇게 인지할 수 있음이 얼마나 행운인지, 그래서 나는 요즘 이 책이 많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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